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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피시케이크를 찾아서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 + @

<새우와 관자>

동해안 다이닝을 하면서 옛날 서울에서 세발자전거 하던 시절에 하던 요리를 재현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때는 '어선'이라고 했던, 일종의 피시케이크다. 선이란 속재료를 채워서 쪄낸 요리로  호박선 같은 경우는 비교적 흔한 요리. 비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류의 요리는 손이 많이 가고 내 기준으론 좀 쓸데 없이 예쁘게 만들려고 해서 먹기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는 것.


어선은 본래 명태나 민어 같은 대형 흰살 생선의 살을 포뜨고 그 안에 채소와 버섯 등을 채워 쪄내는 요리인데 세발자전거에서 하던 시절의 어선은 사실 피시케이크에 더 가깝다. 그래서 앞으론 피시케이크나 뭐 그런 이름을 붙여보려 한다. 이름이야 어쨌든, 우선 오리지널 레시피를 최대한 재현해본다.


피시케이크라지만 사실 생선살은 들어가지 않고 새우와 관자가 들어간다. 오징어도 넉넉히. 거기에 소금후추간 정도. 관자는 중사이즈, 새우는 두절탈각 21/25 정도를 썼는데 사실 사이즈는 큰 상관은 없다. 다들 박박 갈아서 쓸 거니까. 관자는 클수록 가격이 지수적으로(exponentially) 비싸진다.

<소금은 게랑드 소금>

소금의 양이 많이 들어가진 않는다. 게랑드 굵은 소금 사용. 게랑드소금은 국내산 천일염에 비해서 짠 맛은 조금 덜한 편이고 부드러워서 오리지널 레시피보다 살짝 더 넣었는데 결과는 역시 좀 짜다 싶은...


<새우살은 다지고>


들어가는 새우 양의 절반은 관자와 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칼로 다져서 섞어넣는다. 씹히는 식감을 위해서다. 새우, 관자살이 톡톡 씹히는 재미.


<섞어서>


믹서로 상당히 열심히 갈아야 한다. 관자 해동은 잘 시켜서 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퉁퉁 튀어다닐 뿐 잘 갈리지 않는다. 관자는 문어다리에 비하면 문제가 아니다. 어찌나 회전축에 감겨대는지, 분쇄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계속 문어다리와 껍질을 다시 벗겨내면서 갈아야 했다.


우여곡절이라기보단 천신만고 끝에 갈아낸 결과물은 상당히 끈끈한 반죽이고 재료 원가가 엄청나니까 스패츌러로 깔끔히 긁어내야 한다. 이럴 땐 믹서기 칼날분리가 안 되는 것이 원망스럽다. 내가 돈 벌면 날분리 되는 대형 믹서기 하나 꼭 산다.


<진공포장>


진공포장을 하는데 가정용 포장기는 진공중 자꾸 물기가 빨려나와서... 이것도 명색이 pro 버젼이지만 가정용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이래서 요리를 하다보면 장비 욕심이 계속 늘게 되는 것.

새우살은 투명하게, 관자살은 하얗게. 이게 식감을 보장해주는 알갱이들이다.


<60도에 40분>


진공포장한 것은 수비드기에 넣고 생선 익히기의 정석인 50도에 40분으로 해보았는데 영 불만족스럽다.

사실 서울에선 일단 찜기에 찌고(그러니 100도 이상 올라갔겠지) 데울 때만 수비드를 썼는데 저온에서 익히니까 텍스쳐가 너무 녹는 느낌이다. 좀 더 씹히는 게 있었으면 하는 느낌.



맛은 나쁘지 않다. 약간 짠 것을 제외하면.

아니 사실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는 없다. 새우와 관자가 듬뿍 들어갔는데 어떻게? 이날 재료 사용량이 1.2Kg 정도 되었는데 혼자 다 먹으래도 먹을 수 있을 것같다.


피시케이크를 위해서 청귤드레싱을 만들었는데 산미가 있는 소스류와는 대략 궁합이 맞는 편. 그나저나 이 청귤드레싱은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맛있어서 샐러드에 두루 쓰고 있다.


<피시케이크 샐러드와 페타치즈>


이것은 샐러드 버젼. 페타치즈를 올리고 청귤드레싱을 얹었다. 피시케이크의 텍스쳐만 아니면 무척 만족스러웠을 것인데, 사실 페타치즈는 굳이 안 올라가고 계란 같은 것을 활용해도 좋겠다 싶다.


<생명의 탄생>


이것이 세발자전거 시절의 요리. 이 레시피를 기본으로 연구 중이다.

당시 '사람의 일생'을 주제로 시즌을 꾸렸는데 그 중 생명의 탄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차민욱 셰프의 창작요리. 마침 둘 째 딸 시윤이를 가졌을 때라 그랬는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피시케이크 위에 올린 다양한 가니쉬로 표현했다. 초석잠 피클은 지금도 만들어 써볼까 싶네.


동해안다이닝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음식이다. 관자도 새우도 전부 수입산. 명태가 사라진 요즘은 대체할 흰살 생선도 딱히 없다. 이걸 대게나 홍게살을 이용해서 게살케이크로 응용을 하면 동해안다이닝에 맞긴 하다. 그래야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연구를 해볼 것이다. 워낙 맛있는 음식이라 포기가 잘 안 된다. 향신료를 입히기도 편한 음식이니 제법 여러 버젼의 실험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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