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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식 박나물 요리

묘하게 관능적인 식재료

<박, 고지, 박고지>

파머스마켓에서 박을 득템. 박은 좋아하는 식재료는 아니지만 제철이기도 하고 요리를 안 해봤으니 경험치 증진 차원에서 한 번.


연곡의 김윤옥 농부님 출품. 고지는 박고지의 줄임말인 듯. 그런데 고지는 박을 타서 속을 파내어 썰어 말린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걸 '고지'라고 부르는 건 좀 이상한데... 나중에 농부님께 확인해볼 문제다.



<통영식을 위해선 홍합이 필수>

오늘의 메뉴는 '통영식 박나물'. 이유는 대개 간장과 설탕 넣고 볶기나 비슷한 양념에 참기름 떨구고 무치기는 좀 식상해서(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음식들). 검색에서 나온 것 중에 가장 신선한 요리법인 데다가 해산물을 이용한다니 여기 강릉에서도 응용이 많을 것 같아서다.


통영식엔 홍합살이 필수. 냉동 홍합살(중국산)은 일단 해동 모드로. 강릉엔 자연산 섭이 유명하니까 나중에 레시피 좀 잡히면 섭으로 해볼 양이다.


<박손질하기>

박 손질하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아직 덜 여문 박이라 칼이 삭삭 잘 들어간다.

껍질도 감자 깎는 칼로 밀면 될 정도의 상태. 푸른 것이 안 보이도록 여러 번 밀어준다.

그리곤 썰기. 유튜브의 통영 할매는 얇게 써는 것을 강조하셔서 나도 그렇게. 일부만 좀 두껍게 깍둑썰기를 해보았는데 요리법에 따라서는 이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

<냉동실로>

반만 오늘 요리하고 나머지 반은 냉동실로.

<청담글 것>

이게 멜론보단 덜 달고 참외보단 고상한 그런 향이 있어서 청을 담궈보기로 했다.

본래 다 여문 박은 씨앗이 굵고 단단한데 이건 좀 큰 참외씨 정도라 그냥 다 넣고 설탕 투하. 지금 서늘하고 풋풋한 향으로 잘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홍합다지기>

대략 얼음기가 가셔 가는 홍합살은 칼로 다진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굳이 안 다져도 되겠다 싶다.

<기름에 볶다가>

기름에 넣고 좀 볶는다. 기름은 포도씨유를 썼다. 유럽산 포도씨유는 유전자조작 염려가 없어서 범용으로 애용 중이다. 올리브유를 쓴다면 굳이 엑스트라 버진은 권하지 않고 콩기름도 비추다. 유전자조작 여부를 떠나 박은 향이 미묘해서 강한 향의 기름은 쓰고 싶지 않은 기분.


하지만 모든 것은 취향의 문제로 코코넛 기름 같은 것은 의외로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 이럴 땐 홍합 대신 새우를 넣으면 뭔가 동남아 느낌 나고.


기름은 뭘 써도 상관은 없겠지만 참기름을 어느 시점에서 좀 넣어주는 게 필수. 한국인의 입맛으론 말이다.

<쌀뜨물 붓고 끓이기>

볶아서 먹어도 전혀 문제는 없겠으나 통영식으론 쌀뜨물이 들어가야 한다. 첫물은 버리고 세 번째 정도부터 쓰는데 내가 술 배우고는 쌀을 매우 꼼꼼히 씻는 모양이다. 뜨물이 멀겋다.


물을 붓고 끓일 때 주의점은 첫째도 둘째도 박의 식감. 박은 청상과부를 상징한다는데(밤마다 달바라기 하면서 피는 하얀 꽃 때문에 그렇단다) 이 색이며 향이며 매끈하면서도 사각한 식감들이 어딘가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느낌. 그래서 박이 퍼지지 않도록 너무 볶고 끓이지 않는다. 간도 향이 강하고 색이 진한 간장은 금물. 사실 홍합살의 짠 기운만으로도 간은 충분하다. 참기름도 옛날 식으로 방울 단위로만.

이렇게 나온 통영식 박나물 요리.

맛있다. 감칠맛에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표면, 사각하는 느낌인가 싶게 탄력이 있는 속살. 조심스런 고소함. 후추는 더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의 상위호환으로 조림이나 국에 넣어도 좋겠다. 그럴 땐 아무래도 큼직하게 써는 것이 식감도 좋을 것 같다. 이 통영식 박요리도 국물을 더 넉넉히 해서 국처럼 먹어도 된다.


박의 재발견. 마침 여친님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해주시던 요리라 박 좋아하신다고 하네.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다.


통영식 박나물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 참조


https://youtu.be/dT66yoJjE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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