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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케 VS 한국 청주

무테무카 나마겐슈와 미담 송화주 비교시음

<무테무카와 미담 송화주, 그리고 병어돔 회>

살균주와 생주를 비교하면 거의 무조건 생주가 맛이 좋다.

살균의 방법은 여러가지지만 일본의 사케나 한국의 청주(약주)는 대개 열처리 살균을 한다. 술을 한 번(혹은 그 이상)데워서 미생물을 다 죽이는 방법이다.

미생물이 사라진 술은 탄산도 날아가고 여러가지 성분이 열에 변성되었으며 결과로 밋밋한 느낌이 난다. 살아있는 술의 신선함이 없는 것이다.


대체로 일본 사케는 살균주가 주류다. 일본 여행 가서 동네 술집에 가보면 어디나 댓병(1.8L 잇쇼빙)이 카운터 뒷편에 즐비하고 단골손님이 와서 한두 잔씩 마시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반 년이든 일 년이든 그 자리에 키핑해두고 손님이 오면 수시로 한두 잔씩 따라낸다. 살균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한주는 살균하지 않은 생주라서 냉장보관이 필수고, 병을 한 번 개봉하면 되도록 빨리 마시는 것이 좋다.


오늘의 사케는 살균이 아닌 생주(生酒), 그것도 생원주(生原酒)이다. 일본 양조업계에서 가열 살균은 두 번을 한다. 처음 술이 나왔을 때, 그리고 숙성 기간이 지나서 병입을 하기 전에. 생주, 혹은 나마자케라고 할 때 둘 중 후자만 안 해도 생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술은 어떤 경우인지 라벨만으론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원주. 겐슈는 가수조정을 하지 않은 술이라는 것이다. 즉 양조해서 나온 상태 그대로의 술이다. 거꾸로 말하면 대개의 술은 가수조정을 한다는 것. 가수조정은 꼭 양을 늘리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술맛의 조정 등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도 있다.


오늘은 우연찮게 일본 나마자케와 한국 청주의 비교시음이다. 안주는 찰진 식감과 감칠맛이 극에 달한 병어돔 회. 비교시음을 하는 사람은 5명, 1 명은 전문가고 4명은 그냥 술 좋아하는 애호가들이다.


시고쿠 고치현의 무테무카 양조장의 제품. 무테무카(無手無冠)이란 이름은 굳이 현란한 테크닉도 쓰지 않고(無手), 다이긴조니 토구센이니 하는 등급도 필요없는(無冠) 술이라는 패기 넘치는 이름.  

정미보합율은 70%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유기비료를 사용해서 계약재배한 쌀이라니 많이 깎기는 아깝기도 한 듯. 알코올 도수는 18.5%로 상당히 높은 편. 도쿄의 어느 사케 보틀숍에서 "한국인은 독한 술을 좋아하니까..." 같은 뭔가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듣고 추천 받은 술이라고.


마셔본 결과로는 다들 평이 그럭저럭한 정도. 과연 한국인이 좋아할만한 독한 맛은 있으나 복합적인 것도 아니고 깔끔한 것도 아니고 술이 안정된 것도 아닌 분위기다. 나마자케 특유의 발랄함도 느낄 수 없어서 말 안하면 살균주인 줄 알겠다는 정도. 별로히 좋은 제품은 아닌 듯.


하지만 반전은 있었으니 술을 개봉하고 며칠 정도 지나서 마셔본 술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디캔팅을 좀 해서 서빙을 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반전은 있었으니 술을 개봉하고 며칠 정도 지나서 마셔본 술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 디캔팅을 좀 해서 서빙을 했어야 했을까.


<미담 송화주>

반면 미담 송화주는 모두의 호평. 이 술은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나마겐슈에 무로카(無濾過)까지. 무로카는 여과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청주는 맑은 술이다. 술이 맑기 위해서는 양조시에 생긴 쌀알의 앙금들을 잘 제거해야 한다. 옛날식으로 하염없이 몇 달이고 기다리는 방법이 있고, 기계로 여과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여과 작업 해본 사람은 누구라도 알지만 여과하고 나면 빛이 맑고 투명한 것 말고 맛과 향은 모두 여과 안 한 술만 못하다. 앙금은 갈변을 쉽게 하고 변질에 약하긴 하지만 제대로 냉장유통만 한다면 걱정할만한 것은 못 된다. 여과는 시간이 돈인 양조장들이 효율을 추구하는 데서 온 방법이라고 생각 한다.


여과도 안 한 미담송화주는 산미, 감미의 밸런스가 좋은 데다가 송화가루의 싸한 향까지 어우러져 복합적인 풍미가 길게 꼬리를 끌고 간다. 이런 피니시가 바로 생주의 특징 중 하나로 가열살균에 여과까지 거친 술들이 결코 따르지 못하는 점이다.


이날은 워낙 체급이 달랐던 것 같긴 한데, 결과는 미담 송화주의 완승이었다. 나중에 마셔본 버젼의 무테무카로서도 조금은 미치지 못하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이제 나마자케(생주)가 많이 나오고 있어서 앞으로 맑은술은 생주가 대세가 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또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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