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게를 아시나요?
불게는 동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소형 게다. 작은 게지만 맛은 꽃게 못지 않게 달고, 껍질은 소프트크랩보단 단단하지만 이빨 튼튼한 사람이라면 씹어먹을만 하다.
'불'은 모래밭, 모래사장이라는 뜻의 연동지방 사투리. 모래밭에서 잡힌다고 불게라는 설이 있는데 옛날엔 어땠는지 몰라도 요즘은 조금 먼 바다로 나가서 통발이나 그물로 조업한다고 알고 있다. 불게만 전문적으로 잡는 경우는 강릉 인근에선 별로 없는 것 같고, 다른 것 잡으려는 통발이나 그믈에 혼획되는 경우가 많은 듯.
<등쪽>
요렇게 생겼다. 등딱지 중앙은 코 같고 그 밑으론 양 옆구리쪽으로 눈 같은 무늬가 있다.
<산초깻묵>
오늘도 후추 대신 산초를 쌀 작정.
<주문진 황태>
게의 단맛과 토마토가 잘 어울리겠지만 뭔가 지루한 것 같아서 황태를 추가하기로 했다. 고소한 단백질 풍미를 더하는 것이 목적이다.
<불게 먼저> 게는 흐르는 물에 서너 번깨끗이 씻어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게 국물을 먼저 내서 사용할 것이라서 그렇다.
이 국물 베이스에 나머지는 얹는다는 기분으로, 게살과 국물의 기분좋은 단맛을 어떻게 돋보이게 할 것인가가 음식을 디자인하는 데 초점.
<채소>
채소는 양파, 당근, 주키니에 배추잎까지. 그리고 표고버섯이 들어간다.
사진을 못 찍었는데 채소 전에 황태가 먼저 들어가서 볶아진다.
<토마토>
토마토홀 투하하고 중강불 정도로 끓을 때까지. 끓고 나면 약불로 줄여서 뭉근히 졸인다.
고기라구의 경우 8시간 이상을 저어가며 끓이지만 이 경우엔 게의 형태도 보존하고 싶고, 연약한 불게의 향이 쉬이 날아가버릴까 해서 한 시간 정도만 끓였다.
<불게>
잘 익은 불게는 등딱지 색도 토마토 소스와 깔맞춤. 형태가 살아있어 반갑다.
시간이 꽤나 되서 좋을 때가 지나버린 와인. 설탕을 사용한 것과는 별도로, 생각보다 괜찮은 와인이었는데 아끼다 뭐 된 느낌. 하지만 라구에 넣었을 때의 효과는 제법 만족스럽다.
스파게티와 푸실리를 섞어서 서빙. 푸실리를 좀 늦게 넣어서 같이 물을 따라내면 타이밍이 맞다.
완성된 파스타는 일단 게를 손으로 집어들고 와작하고 씹는 것이 순서다.
지금의 내 이빨론 살짝 무리지만, 집게발 정도 빼놓고는 전부 씹어먹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 혹은 순서대로 잘 해체해서 속살만 빨아먹는데도 상관없겠다. 다만 작고 맛있는 불게는 이렇게 먹다보면 감질맛 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