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플라스틱 줄이기
수세미를 처음 만난 것은 초여름. 이런저런 음식을 해서 먹었는데 그러다보니 설겆이용 수세미를 만들어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파머스마켓에 나온 농산물들은 다 연락처가 있어서 연곡의 이병준 농부께 전화를 드리고 수세미가 다 익으면(그러면 식용으로선 가치가 없어진다) 한 번 찾아가 뵙겠다고 했다.
어느 비오는 날, 길을 좀 헤맸지만 농장에 잘 찾아갔다. 이병준 농부는 다양한 품종을 소량씩 재배하는 분으로 설봉감자며 수세미며 여러가지 잘 사먹고 있다가 처음 뵙게 되었다.
비도 오고, 뭐 살가운 대화가 많이 오가진 않았다. 그래도 단 돈 오천 원에 수세미를 한 짐을 안겨주신 넉넉한 인심.
수세미 만들기는 세상 쉽다. 사진은 일부러 썩음썩음한 녀석을 예로 들었다. 그나마 이게 난이도가 있달까.
사실 수세미 섬유질은 썩음썩음한 부분도 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이 거무튀튀한 색이 혹 마음에 안 든다면 이 부분을 잘라내면 그만이다. 그리곤 적다한 크리고 자른다. 이상 손질 끝.
수세미 껍질은 어떡하나 싶더라도 그냥 수세미를 삶는다. 물이 펄펄 끓을 때쯤 되면 한 5분 정도 더 삶으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식혀서(중요! 수세미 속에 뜨거운물이 잔뜩 들어있으니 표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손으로 껍질을 드러내면 그만. 세상 분리가 잘 된다. 식은 호박에 뭐 어쩐다는 속담도 있는데 그 정도 난이도.
껍질을 벗겨내면 이렇게 씨앗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것도 당분간 놔둔다.
이제 적당한 곳에서건조에 들어간다.
서로 겹치지 않게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리면 이틀이 채 안 되어 보송하고 까실하게 마른 수세미가 탄생한다. 이 상태에서 수세미를 세로로 들고 탈탈 털어주면 씨도 쉽게 털려나온다. 이제 수세미는 완성!
앞쪽은 하얀 수세미들이고 뒤로 좀 거뭇하게 보이는 것이 예의 다소 부패된 부분. 실험삼아 만들어 보았는데 사용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아직 2주 정도 밖에 안 써서 딱히 뭐랄 수는 없지만 일단 세제를 묻혀서 쓰면 잘 닦인다. 놔두면 잘 마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더러운 것을 닦아도 헹궈서 말리면 색이 변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다. 본래 합성섬유 스펀지를 한 달 정도 쓰면 슬슬 새 것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그래도 플라스틱 배출을 줄이자고 한 달 정도 더 쓰는 것이 나의 소비성향이다. 수세미는 어쩐지 두 달 이상 너끈히 쓸 것 같다. 크기도 마음대로 잘라 쓰면 되니까 작은 잔이나 좁은 병 등을 청소할 용도도 있고, 반대로 큰 냄비 같은 것에 쓰는 용도도 있다.
수세미 사용은 현재까지 완전 만족. 한두달 더 있다가 장기 사용후기를 올려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