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래든/캔버라]소노마 베이커리 - 감동받은 빵들

열흘 지나 맛있는 빵

<Sonoma Bakery @ Braddon>


호주에 묵게 된 집에 일단 주방은 있다. 내 주방도 아니고, 남자 둘이 자취하는 집의 주방이라 딱히 뭐 세팅이랄 게 없다. 그래도 험악할 정도로 비싼 물가를 생각해도 그렇고 서울보다 더 부족한 채식옵션을 생각해도 그렇고 가끔이라도 내가 해서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쌀은 있고, 따로 사기도 했고, 김치 선물도 받고 밥 먹을 옵션은 좋은데 빵은 어디가 맛있을까? 머나먼 시드니에서 물어도 빵집 추천이 주르르 나오는 제수씨는 캔버라에선 여기를 추천. 물론 다른 데도 있겠지만 내 서식지 근처에선 여기라고 하신다.


호주에 와서 좀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달까. 호주 사람들 자체도 일찍 일어난다. 7시면 여는 카페가 수두룩하고, 오후 3시면 닫는 곳도 많으며 저녁시간엔 아예 영업을 안 하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7시는 어림도 없는 시간이지만 제법 해가 중천에 오르려면 한 뼘도 넘게 남은 시간에 빵집으로 향한다.


<Menu>


딱 브런치타임 정도. 사람이 많진 않은데 커피 한 잔에 여기 브런치 메뉴나 산 빵을 놓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바깥쪽 좌석을 제법 거의 채웠다.

가격은 유명한 집 치곤 착한 편.


<내부>

빵을 기본 위주로 몇 개 골라잡아 커피 한 잔 시켜서 밖으로 나온다. 운 좋게 자리 확보.


<사과파이>


애플파이는 만족했다. 특별한 정도는 아니지만 파이 크러스트가 도톰하고 바삭해서 좋았다.


<크루아상>

크루아상은 한국에선 맛난 것 먹기 힘들지. 요는 한국에선 버터를 너무 아낀다.

이 나라는 다 비싼데 소와 관련된 건 한국보다 비싸지 않다. 크루아상도 버터가 넉넉해서 즐겁게 번들거리며 먹었다.


진짜 감동은 사진에 없다. 현장에서 안 먹어서 사진 찍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깜빠냐 스타일의 빵 한 덩이를 집에 사가지고 가서 식사 때 조금씩 잘라먹었다. 사워도우 느낌이 물씬 하면서도 향이 좋다. 사워도우라고 신 맛만 잔뜩 강조한 이상한 빵들 한국에 많은데, 발효하면서 나는 좋은 향들은 아에 안 챙기는 수준들이라 그런 경우가 많다. 적당한 숙성이 따르면 신 맛과 향 속에서도 꽃향, 과일향, 비스킷향, 치즈향 같은 것까지 여러가지가 느껴진다. 바로 여기 소노마의 빵 같이.


그리곤 한동안, 한 열흘 정도를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주먹만한 굳은 빵 덩어리 발견이다. 이래저래 둘러봐도 상한 것은 아니고, 맛난 빵이 아깝기도 해서 거의 비스킷 같은 건조상태의 것을 다른 곁들임 없이 씹어보았다. 그리곤 정말 훌륭한 비스킷의 맛을 보았다. 요즘 나오는 비스킷이 아니라, 빵을 건조시켜 만든 옛날식 비스킷 말이다.


바삭하면서도 고소한, 그리고 초기의 발효향이 거의 남아있는 그런 빵, 그대로 크루통 같이 스프에 올려도 좋고 맥주 안주로 먹어도 좋을 그런 맛이다. 이런 상태의 빵에서 이런 맛이 남아있다는 것은 생전 처음의 일이다. 한국에서 잘한다는 빵집들도 앞단은 비슷한 맛이 나지만 며칠 지나면 향도, 질감도 죽어버리게 마련이었다. 이것이 발효의 힘인가, 놀라며 입안에서 오래오래 굴려 먹었던 빵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캔버라]호주 국립 박물관에 대한 크리티컬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