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돌아올 것 같은 나라
마지막날, 마지막 마사지까지 받고 나니 저녁시간이다. 비행기는 새벽 2시. 시간이 많이 남는다.
여기는 Hot Bean 이라는 레탄똥 하겐다즈 건너편 카페. 들어온 이유는 영업시간이 비교적 길고 간단한 식사가 가능해서다. 그런데 가격이 가히 살인적이네. 샐러드 한 접시를 시켰는데 이건 진짜 전채 분량 밖에 안 된다. 모히또도 한 잔 시켰더니 공항까지 택시비를 가뿐히 넘겼다.
레딴똥 뒷길에는 뭐라고 해야할까, 일본식 구라부 같은 것들이 많다. 아오자이를 입은 아가씨들이 떼지어 앉아서 호객을 하는 것이 일종의 장관이기는 한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정도를 넘어 엉덩이를 툭 치기도 하네. 숙소가 하필 이 뒷골목쪽이라 짐 끌고 나오다 당한 일.
지나다니면서 저 오징어가 궁금하긴 했다. 오징어의 고장 주문진에서 온 사람.
일종의 즉석 진미채볶음이다. 오징어를 롤러에 굴려 펴면 딱 진미채 같이 된다. 그걸 잘라서 마가린과 설탕에 뭔가 검고 붉은 소스를 부어서 볶는다. 그리곤 신선한 고수, 혹은 어떤 잎을 깔고 올려준다. 한국의 진미채 볶음과 비교해서 마가린의 지방이 풍미를 더해주고 뭔가 독특한 풍미(아마도 생선소스인 듯)가 있어서 개인적으론 이쪽이 맛은 더 있다고 본다. 게다가 저 신선한 고수잎, 혹은 어떤 허브가 느끼함까지 잘 잡아준다.
사장님 퍼포먼스는 또 어떻고. 무척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오징어 손질에서 볶기까지, 그리고 남은 국물을 거리 하수도에 처리할 때마져 매우 신중한 자세, 프로페셔녈리즘이 느껴진다.
앞에 베트남 청년 하나가 먼저 사가는 동안 이런 과정을 관찰하며 기다렸다. 내 차례에 손가락으로 하나. 어차피 다른 메뉴도 없는 것 같고. 예의 과정을 다시 복습하며 저 롤러만 있으면 주문진 가서도 해볼 수 있겠다, 아니 진미채 사서 쓰면 되지, 아니 그런데 진미채엔 조미료간이 이미 다 되어있자나 등등의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메뉴는 완성. 이제 11시도 안 되었으니 이제 공항 가서 어떻게 시간을 때운다 따위의 걱정을 하며 무심코 5만동을 내밀었다. 베트남 길거리 음식이 대략 3~4만 동(물가 비싼 이 동네 기준)이니까 그런 정도려니 했는데 아자씨, 단호히 15만 동을 부른다.
아뿔싸, 마지막날까지 별 탈 없었다고 긴장이 풀어졌다. 흥정은 먼저 해야 하는데. 보통 이럴 땐 아 그럼 됐네 하고 싹 돌아서면 가격이 뚝 떨어지긴 할텐데, 어버버 그냥 돈을 주고 말았다. 내가 그렇지. 여하튼 레딴동에서 오징어볶음 사드실 분은 이 아자씨 조심하시라.
공항에 도착해서 배는 안 고프지만 또 먹자. 에어컨도 제대로 안 나오는 공항에 일찍 들어가봐야 할 것도 없고.
쇠고기 쌀국수가 기본인 것 같지만 닭고기 쌀국수도 있다. 두 개 콤보 메뉴가 있기에 감사히 시켜먹고 쇠고기 다시다와 닭고기 다시다 맛을 동시에 느꼈다. 닭고기 다시다는 중국에서 많이 먹어서 새롭지도 않네. 그 와중에 구원이다 싶은 건 두 가지 소스와 신선한 야채 및 라임. 특히나 라임은 이렇게 신선한 것을 짜넣으니 조미료 맛까지도 산듯해지는 느낌이다. 이건 한국에선 느끼기 힘든 그런 맛.
공항이라 좀 비싸기도 하고, 엄청 맛있다곤 못 하겠지만 경험치 증진에 나름 소소한 행복.
공항 안에 들어오니 열두 시가 넘었고, 면세점은 거의 닫았다. 아니라도 이런 나라들은 면세점 물가가 바깥보다 비싼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쇼핑에 민감하진 않다. 쌀보드카라고 라벨이 붙은 술을 한 병 사고(원리상 쌀소주다), 그리곤 단 한군데 연 식당 겸 편의점에 가서 맥주나 한 깡통.
이것으로 베트남과는 당분간 이별이다. 내 취향의 동남아는 태국이나 말레이지아, 혹은 캄보디아 쪽일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긴 했지만, 베트남도 언제 또 와서 밥도 지어먹고 글도 쓰고 해보고싶은 곳이기는 하다. 호치민은 너무 대도시라 내 취향이 아니고, 후에나 붕따우나 하이퐁이나 이런 적당한 규모 해안도시를 가끔 뒤적여보며 마음으로만 여행하는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