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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초화주 양조장 & 돈간재

술은 점점 좋아지는데, 안타깝다


영양의 초화주는 나온지도 오래 되었고 맛본 지도 오래 전이다. 이번에 영양에(정확히는 밀양에) 가는 김에 양조장(정확히는 증류소)에 한 번 들러보리라 했다. 엄청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좀 정돈이 안 된 모습에 실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인기척이 없는 공장 안을 조금 헤치고 들어가니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노동자분이 더 안쪽을 가리킨다. 임증호 대표의 살림집인 모양이다.


'이리오너라' 분위기로 문밖에서 수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초대받아 차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릉에서 한주 장사를 한다니 찾는 사람도 없는 이런 것 뭐하러 하냐는 타박부터 들어야 했다. 그게, 찾는 사람 진짜 없던 십여년에도 하던 사람인데... 그때와 지금은 거의 상전벽해 수준으로 달라졌는데 여기 영양에는 그런 소식은 전해지기 힘든 모양이다.


임대표는 양조장 집안에서 자라서 일찌기 막걸리도 빚었다. 가양주로 전해지던 초화주가 정식으로 출시된 것도 이미 1999년의 일. 지금도 꾸준히 생산은 하지만 적극적으로 판매는 안 하고 있다고 한다. 팔아야 돈도 안 되고 힘만 든다는 것인데, 초화주의 인터넷 판매가격을 찾아보면 납득이 간다. 이 정도 퀄리티와 업력이면 가격을 더 올려도 충분할 터인데, 20세기 그 시절부터 힘만 썼지 없는 시장에서 제값을 받았으랴. 이제 그 경험이 굳어져서 술도 '내 대에서 맥은 안 끊겠다'는 마음으로 유지만 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타박을 듣건 어쨌건 몇 박스를 사왔다. 초(椒)는 대체로 매운 향신료에 붙이는 글자다. 고초(고추), 산초 가이 말이다. 여기서는 후추를 뜻하고 거기에 천궁, 당귀, 황기, 오가피 등 12가지 약재가 들어가고 꿀도 넣는, 재료만 해도 고급주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 술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1200년경)에 소개된 네임드 술이다. 그 고려시절에 후추란 것이 얼마나 귀했을 것인가. 참으로 화려함의 끝을 보여준 술이었을 것이다. 


강릉에 와서 손님상에도 내고 했지만 이 술이 오묘하게 니치들을 벗어나는 느낌은 있다. 딱히 호도, 불호도 없는데 특이한 술이라는 평은 그런 다양한 향신료의 덕택이기도 하겠지. 내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 안정감 있고 부드러운 증류주를 만들어낸 것은 평가받을 점이라고 생각한다.


양조장 건너편의 돈간재라는 양반 고택. 돈간은 주역의 간위산괘의 맨 위 효다. 움직이지 못하는 산의 모습 중에서도 정상에서 도탑게, 묵묵히 지키고 있는 그런 모습. 

이런 돈간재의 기운을 받아서라도 초화주가 잘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임증호 대표는 안타깝게도 2023년 연말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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