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르디니안(Sardinian) 피자

도우와 토핑이 일체화된, 토마토전!?


호박으로 뭘 해먹을까 찾다가 너튜브 추천 영상이 떠서 알게 된 사르디니안 피자. 


사르디니아라면 가본 적은 없어도 로망은 있다. 코르시카섬과 남북으로 나란히 늘어선,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편에서 이쪽저쪽에 속하다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독립심을 마음 깊이 품은 거친 땅. 산과 숲이 많아서 농사는 간신히, 염소나 양 같은 목축업도 대규모로 감당하기 힘든 척박한 땅. 예로부터 용병과 해적의 고향이었던 사르디니아.


그런 것이 사르디니아에 대한 나의 일방적 로망의 이미지다.물론 상당부분은 뇌피셜에 가깝지만, 사르디니아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탈리아의 변방으로만 치부하기엔 특색이 확실한 곳이다.



사르디니안 피자는 제철의 채소가 주재료다. 호박(쥬키니), 당근, 양파 정도가 기본이고 그 외에 뭣이라도. 그래서 나도 무우와 오이도 넣기로 했다. 물기가 많은 채소들이라 반죽을 할 때 좀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치즈는 만투아산 그라나빠다노. 바로 옆동네 파르마의 파르마산치즈와는 지리적 표기가 허용 안 된 차이 정도.



사르디니안 피자의 특징이란 밀가루반죽으로 도우를 만들고 그 위에 이런저런 토핑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 한데 반죽을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도우-토핑 분리형의 피자란 나폴리의 발명품으로, 20세기 초만 해도 로마 같은 곳에서도 외지음식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항구도시 나폴리의 주요 토핑은 생선류였다고, 흠.

그나저나 다이소에서 산 5천원짜리 다지게는 이번에 줄이 끊어지면서 사망. 한 일 년 잘 썼네. 이태리제 전동초퍼를 꺼내야 했다.



생토마토를 다져넣는 것이 정석이지만 미리 만들어두었던 라구를 쓰기로 했다. 여기도 꽤나 여러가지 채소가 들어갔다. 고기는 요즘은 안 넣고 베이스를 만든 다음에 필요하면 그때그때 넣는 식이다.



채소 다진 것, 밀가루, 욜리브유, 라구를 넣고 반죽. 밀가루는 오븐구이를 할 경우에 텍스쳐를 만들어주는데 어느 정도 해야할지 가늠이 어렵다. 어쨌든 너무 빵냄새는 안 나게 하고 싶었던 기분이라 적게 넣다보니 반죽이 제법 질척해졌다.



185도 정도로 40분 구워 나온 결과. 겉이 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건 없다.



그런데 속이 좀 마음에 안 든다. 빵 같은 질감을 기대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속이 질척까진 아니고 좀 척척한 데다가 예상외로 글루텐 형성이 잘 되었는지 쫀득한 느낌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이 느낌 별로인데.


별로라곤 했지만 사실 어떤 느낌이어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튜브에서 시키는대로 생각 없이 한 것 분. 10분쯤 오븐에 더 구워봤는데 별 변화는 없고 진짜 탈까 두려워서 방향 전환.



전같이 부쳐먹는 거다. 이게 불조절하기 편하고 좋네. 누군가의 밭에 놀러갔을 때 선물 받은 생바질 잎도 있고. 이쪽은 좀 더 전같은 느낌이다. 이게 더 좋다기보단 익숙한 느낌이라 편하긴 하다.



이것은 내친김에 김치 넣고 내맘대로 김치사르디니안피자. 

김치를 넣었으니 산미가 더 올라오고, 그냥 딱 김치전에 가깝다. 반죽에 갈아 넣은 치즈는 김치가 있거나 없거나 제몫을 한다.


처음보다 밀가루를 좀 더 잡아서 질척한 맛은 덜하고 빵느낌이 강해졌다. 나쁘지 않다. 원래 기대가 이런 것이었다면 처음에도 이것으로 만족했을 듯. 팬에 부쳐먹어도 좋을 반죽이다.


언젠가 사르디니아에 가게되면 사람들에게 꼭 김치사르디니아 피자 가르쳐 줘야지. 


돌아올 수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주문진식 부야베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