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손님은 회를 주문하셨다. 회야 어차피 어시장 가서 사오는 것, 다른 곳에 비해서 장점이라면 마스터가 직접 주문진 어민수산시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골라 온다는 것이다. 전부 자연산만 판매하는 곳이다.
그리고 오전 중에 회를 떠오면 저녁때 쯤에 먹으면 숙성이 이상적이진 않아도(어종 따라 다름) 꽤나 괜찮은 상태가 된다는 것.
요즘 회가 비싸지 않다. 확실히 후쿠시마 영향이 있는 듯. 복어, 방어, 가자미 3종, 멍게, 무늬오징어까지 해서 5만원. 회 뜨는 비용 1만원 별도. 예약손님께는 인스타DM으로 보여드렸더니 만족한 반응이 온다.
이렇게 멋지게 상차림도 하고, 쌈채소도 넉넉히하고 가자미 식해를 비롯한 기본찬에 초고추장도 초고급 버젼, 간장 대신엔 김명수 명인의 고등어 액젓이다. 그러고 상차림비 인당 5천원이라니, 내가 봐도 꽤 혜자스럽다. 매운탕은 인원 상관 없이 1만원.
<못생긴 해물파전 만이천원>
회와 매운탕에 토종쌀밥 백팔미밥 곁들이고, 술은 한영석 청명주 추천이다. 호주소주도 서비스로 드렸던 듯. 그 외에 더 드시고 싶은 건 없냐니 해물파전을 외치신다.
애증의 해물파전. 서울에서 세발자전거 하던 시절에는 이 간단한 요리는 재료원가는 좋아도 상당한 스킬과 시간이 필요한 요리라서 따지고 보면 가게 수익성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저 생각 없이 '파전에 막걸리' 외치는 게 좀 보기 싫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몇 년 장사 하면서 파전과 부추전만 천 장 이상은 팔았을 거다. 주방에는 땜빵으로만 들어갔어도 내 손으로 부친 전만 백 장은 확실히 넘는다. 강원도 와서는 감자전은 좀 부쳤지만 파전은 전혀 만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파전 주문을 받으니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다. 주문진에 있을 때만 해도 가스불이 있어서 전 부치기가 좋았는데 여기 강릉의 살롱에서는 인덕션 사용이라 전 부치기가 까다롭다. 인덕션 핫플래이트보다 큰 팬을 쓰면 열전도가 고르지 않은 편이라서 중심부와 가장자리 익는 게 다르다. 볶음이나 끓이는 요리는 저어가면서 하면 되는데 모양을 잡아야하는 전요리에 인덕션은 진짜 극악의 조리도구. 하지만 있는 게 그거고 주문은 받았으니 어떻게든 해야지. 재료가 있는데 안 되는 게 있으면 심야식당이 아니지.
인덕션 탓만은 아니고 내 탓이 더 커서 이렇게 못생긴 파전이 나왔다. 전 굽기의 가장 난이도 높은 부분은 뒤집기인데 오랜만에, 게다가 인덕션으로 하다보니 언제 뒤집어야 할지 감이 없어서 뒤적뒤적 하다보니 깨진 부분도 있고, 예의 열전도의 문제로 바깥쪽이 상대적으로 잘 안 익은 이유도 있고. 가스불이라면 보통 얇은 바깥쪽이 빨리 익는 편인데...
하지만 소리를 들어 보건데 나름 맛은 괜찮은 전이 나왔을 것 같긴 하다. 하긴, 이것도 전의 굽기에 따른 취향이 다양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깨끗이 비운 빈 접시가 돌아왔으니 나름 기본은 한 듯.
인스타 DM으로 예약을 받았는데 오신 분은 얼마전 지역의 대학교에 특강을 갔을 때 질문했던 학생이다. 서울에서 친구들이 온 김에 같이 놀러 왔다고 한다. 학생은 현재 회계 전공인데 영문학이나 철학으로 바꾸고 싶다고 한다. 대개 그 반대 방향으로 전과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같이 온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 ROTC라서 일단 취업이나 진로 고민이 적은 편이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젊은이, 멋진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