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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일곱 번째 이야기, 코다리 강정과 곶감 디저트

짜릿한 라이브 요리, 즐거운 만남 심야식당


행사명은 '올나잇 강릉클럽'이었다. 강릉시 관광개발공사에서 밤문화가 없는 강릉을 위해서 심야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야심만만한 취지. 그러다보니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의 '심야식당 얼터렉티브살롱'이 당연히 눈에 띄었겠지.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도 코로나 이후로 심야영업 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강릉은 여름 극성수기 아니면 심야에 갈 곳은 손에 꼽는 정도다. 지방도시의 일반적인 현상은 관광도시라고 예외는 아니다.  


관광도시로서 취지는 좋은데, 심야에 하는 집이 없는 것은 행사 한두 번 한다고 바뀔 문제가 아니고 프로그램 진행자들도 다들 심야진행이 아니라 대략 저녁행사들로 진행된 것 같다. 우리도 심야식당 프로그램 따라서 6시에 월화거리에 집결, 대략 9시반~10시 정도에 마치는 일정이다.



어디선가도 얘기했지만 얼터렉티브살롱의 '심야식당성'은 새벽까지 하는 데서가 아니라(여긴 신주쿠가 아니라고요 ㅠ), '주문하면 재료가 있는 한 만들어드리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이번 프로그램도 월화거리(강릉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랄까?)에서 집결해서 중앙시장에서 장 봐오면 그 재료를 가지고 원하는 것을 해드린다는 것. 거기에 졸저 '우리술 한주기행'의 북토크와 '진리의 작업실' 갤러리투어에 토종쌀밥 체험까지.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알차다. 진행하는 대행사 업체 대표님에게서 가장 먼저 매진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


재료가 갖추어진 것도 아니고 당일 오기 한 시간 쯤 전에 구입하는 재료에 맞춰서 요리를 하는 것이니 라이브치고도 쫄깃한 프로그램이다. 실수 하면 다시 시도할 시간도, 재료도 없다. 식재료는 구입 즉시 귀띔을 해주기로 하긴 했지만 속으로 달달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거 이상한 도파민 중독자 아닌가 싶네.


첫 재료는 명태 코다리. 강릉을 대표하는 식재료로써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딱 보는 순간 '뭘 하든 손 많이 가고 시간 걸린다 젠장...' 싶었다. 코다리 요리로 리퀘스트는 다행히(?) 코다리 강정이다.


상식적으로 할만한 몇 가지 요리 중 코다리 강정이 제일 손 많이 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걸로 국물 같은 것을 내려면 손은 좀 덜 가도 시간이 엄청 걸릴 것이라 제한시간 내에 좋은 맛을 내기 힘들 것이라는 점. 튀김은 성가시고 재료비 많이 들지만 일단 제대로 튀기기만 하면 신발도 맛있는 것이니까.  



그 다음 재료는 물미역. 이건 딱 한 가지 밖에 생각나는 게 없는데 리퀘스트도 딱 그 한 가지.

초고추장 만들어 쌈 싸먹기다. 이걸로 상당히 손을 덜었다.

물미역 파시는 사장님 표정이 꼭 정치광고 같이 밝으시다 ㅋㅋㅋ  



그 다음은 곶감이다. 강릉 곶감 얘기를 하자면, 이것도 어디 갈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지만, 강릉 시내 단독주택 좀 오래된 집에는 감나무 없는 집이 없다.  중앙(성남)시장 내에는 곶감만 따로 다루는 곶감전이 존재했었고, 곶감전길이라는 지명도 엄연히 남아있다. 강릉을 대표하는 디저트라면 이 곶감을 활용해볼만 한 것이다... 라는 생각은 평소에 했었지만 원래 디저트에는 약한 편이다. 큰일이다. 




우선 준비했던 토종쌀밥 정식이 나간다. 오늘의 쌀은 탄력과 찰기로 으뜸인 귀도. 반찰벼라서 돌솥에서 좀 건조하게 지었다. 예상대로 반응은 폭발적. 토종쌀 이야기도 하고, 토종쌀 막걸리도 한 잔씩 따르고 하면서 분위기는 단번에 무르익었다.


거기에 강릉의 반찬이라고 할 가자미식해와 배오징어젓까지. 강릉 토박이분들 앉은 상에선 이걸로 리필이 세 번인지 네 번인지 할 정도. 반면 서울 손님들 쪽 테이블은 조금 남았다. 발효식품 취향이란 개발되는 것이다.  




파프리카 샐러드와 참치구이. 강릉의 대표농산물 중 하나가 파프리카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싸고 질 좋은 파프리카가 일년 내내 나온다.


참치구이는 오븐에 구워서 안까지 촉촉하다. 오징어와 명태가 떠나고 참치와 대구가 오는 바다의 변화 이야기를 하며, 오븐에서 생선을 굽는 매력을 이야기하며, 재미있는 식사 시간이다. 본시 설명충 경향의 나는 신이 나서 떠들긴 하는데 중간중간 코다리 강정 요리를 살펴야하니 신경은 많이 쓰인다. 튀김이 불조절이 좀 쉬운 편이긴 하지만 깜빡 정신 팔다가 타버리면 곤란하니까.  



식사를 마치고는 사온 음식으로 안주 삼아 한 잔 더. 전반적인 음주량은 2인 1병 정도로 많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이 훈훈하게 피어나는 자리였다.


코다리 강정은 실은 만들어본 적도 없다. 급하게 너튜브 보고 원리만 깨쳐서 하는데, 소스를 만드는 데 물엿은 필수인 모양. 나는 물엿은 안 쓰는 주의라서 생강청과 조청을 넣었는데 소스에 단맛이 부족한 느낌이다. 물엿 같이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조청의 단맛은 입에 넣는 순간 멥단짠으로 확 들어오는 일반적인 강정소스와는 임팩트 차이가 난다.  


내 혼자 음식이라면 이 상태로 만족하겠지만 이건 기쁘게 해야할 대상이 확실한 음식이다. 뭔가 고추장과 설탕이라도 더 넣을까 순간 망설였지만 다시 생각해보고 그냥 나가기로 했다. 이 음식은 부끄럽지 않다. 혹 마음에 안 드시면 서비스로 다른 것을 해드리겠다고 마음 먹고 나갔다. 다행히도 '건강한 맛'이라고 호평이었다. 사람 세워놓고 혹평할 분들은 어차피 아닌데, 다 끝나고 보니 두어 점 말고는 다 드셔서, 밥 먹고 술안주로 그 정도면 망하진 않았다 싶었다.



땡큐 물미역. 그나저나 물미역은 봄에 바닷가에서 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겨울에도 물미역이 난다는 것을 안 것도 수확이다.  시골 살면 산지에 가까와서 요리사로서 공부가 많이 되긴 하는데, 사실 그래도 내가 직접 농사짓고 바다에 나가는 것이 아니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런 지식은 인터넷에도 안 나오는 것이 많다.



곶감은 투박하게 생겼으나마 외지의 건조기로 만든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강릉은 산업적인 수준에서 곶감이 없어진 대신 소량 유통되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으로 깎아 자연건조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곶감은 훨씬 부드럽고  단맛도 은은한 편이다.


이 곶감을 반으로 갈라 마침 만들어놨던 땅콜 프랄리네로 속을 채우고 아래는 밀크 아이스크림을 깔고 위로는 떡을(그렇다, 통보도 없이 떡까지 사왔다) 올렸다. 나름 다양한 식감과 맛이 어우러진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그 점을 알고 말씀해주신 분이 계셔서 감사했다.


손재주가 좀 있었으면 더 예쁘게도 했을텐데... 다른 음식은 몰라도 디저트는 예쁜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얼터렉티브 살롱의 방침인 '간판 대신 예술을 달아요'와 이지은 작가의 업사이클링 작품 '시그널1' 이야기까지 나누고 아쉽게 헤어졌다.


좋은 분들과 좋은 모임까지 만들어져서 그 후에도 송년 모임을 했고 새해에는 떡국 모임도 하기로 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오픈 카톡방이니 들어오시길. 새해에는 양조장 투어도 같이 가고 재미있고 맛있는 일 많이 하기로 했다.


https://open.kakao.com/o/gCRCXN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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