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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아홉번째 이야기, 토종쌀 밥짓기와 술 강의

토종쌀 주먹밥과 막걸리에 신났던 하루


강릉에서 만난 친구 중 '마을 호텔'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강릉의 늘어가는 빈집들과 이주, 한달살기, 창작을 위한 리트릿 등의 수요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사람들이 오면 그냥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사람들의 정착을 돕고 알찬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도 청개골 마을호텔의 일이다. 강릉에서 좀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사이트를 한 번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청개골 마을호텔

https://gfv.oopy.io/


이날은 이 청개골의 '인터미션 어웨이' 프로그램 중 쿠킹클라스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와서 기쁜 마음으로 출장을 나갔다.


그렇다. 심야식당은 출장도 다닌다.  오늘의 사진 제공은 청개골 마을호텔.


 토종쌀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 참가하신 분들은 은퇴 연령대의 남성분들이다. 이 앞의 순서가 오후 내내 철학강의여서 아마도 이때쯤은 당이 좀 딸리셨을 것이다 ㅋㅋ.


토종쌀의 역사, 의의, 귀함과 맛있는 밥짓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오늘 밥 지을 쌀(귀도, 흑산조)과 술(세파바이C 토종쌀 막걸리, 콸콸, 얼떨결에)까지 설명하니 이제 다들 확실히 배가 고플 시간이다.



행사 하면서 느끼는 건데 쌀알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실 토종쌀의 상품성은 확실히 부족한 데가 있다. 고가의 정미기를 사용하지 못해서 쌀알이 균일하지 않고 열상립 등의 손상된 쌀알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가격은 월등히 비싸고. 그래서 쌀알을 만져보는 것이 판매에 꼭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이런 것에 대해서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고 설명하는 것이 정정당당 마케팅.


토종쌀은 우리나라 전체 쌀 생산량 350만톤 중 10만분의 1 정도다. 토종쌀의 매카라고 할 우보농장이 20여톤(정곡 기준), 그 외의 농장들은 대개 자급하고 남는 것을 내다 파는 정도다. 그 희소성을 생각할 때 가격은 지금이 제일 싼 수준이다. 장담컨데 올해 여름엔 쌀이 부족할 거고, 지금 나의 숙제는 여름까지 쓸 쌀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인구학적으로 볼 때 그다지 직접 밥을 지어보지 않았을, 지어보았다 한들 전기밥솥에 대충 헹군 쌀 넣고는 백미-취사 버튼 누른 정도였을 분들이다.


쌀 씻는 것부터 물 조절, 불조절하는 방법과 타이밍, 도구에 따른(압력솥과 돌솥) 특징 등을 설명해가며 밥 짓기 시연을 해서 보여드렸다. 실은 이 과정이 강의보다 먼저고, 이렇게 쌀 씻어서 앉혀놓고 강의를 했다.   



다들 같은 숙소에 계시고 단체 이동이라 운전 부담은 없다. 


강릉의 콸콸, 영월의 얼떨결에 같은 지역 막걸리에 오늘 밥지어 먹는 쌀을 사용한 C막걸리의 CepabyC 귀도 막걸리를 소개했다.



형님들 엄청 학구적이시더군. 하긴, 철학강의를 몇 시간씩 듣는 프로그램 같은 것에 참가하신 분들이라니, 철학은 좋아하지만 나같으면 어디 바닷가 카페라도 가자고 졸랐을 것 같은데 ㅋ.


직간접 양조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제법 수준 높은 질문들도 나오고 해서 술 얘기만 해도 몇 시간 잘 보냈겠지만 이제 밥이 다 되었다.  



밥은 두 가지로 지었는데 사진은 하나만 있네. 확실히 뭔가 전문가 사진은 다르다.


찰기가 좋은 귀도는 압력솥에 지었고 반대로 단단하고 매트한 느낌의 제주쌀 흑산조는 돌솥에 지었다. 어쩌면 그 반대로 짓는 것이 사람에 따라 취향일지 모르지만(이래서 밥짓기는 어렵다), 쌀마다 갖고 있는 특징을 극대화 시켜서 비교해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뜻대로 나온 밥이 좋은 밥이다. 뜻대로 찰진 쌀은 더 찰지게, 단단한 쌀은 더 단단하게 나왔다. 스태프까지 15인 정도라서 그 정도 밥짓기를 했는데 스태프 중 몇 분은 식사 안 하시네. 그래도 남는 밥이 전혀 없을 정도로 호평이었다.



쿠킹클라스니까 뭔가 직접 해보는 것이 필요한데 실습하기엔 공간 상의 제약도 있고 요리 수준들도 다 다르고 해서 주먹밥 만들기. 이 주먹밥 만들기는 처음 해본 사람도 금방 익숙해 질 수 있고 응용 범위가 넓어서 시설 제약 있는 상황에서 초보자 쿠킹클라스로는 딱 좋다.


직접 담근 식해와 생선 초절임을 속으로 준비했는데 그걸론 좀 취향이 아닌 분들도 있을지 몰라서 무난하게 김치햄볶음도 준비해갔다. 결과는 전부 매진이고 김치햄볶음만 약간 남았다.


주먹밥 감쌀 김도 목포에서 직접 시장 가서 사온 돌김이라서 씹을 때 향이 남다른 데가 있었으리라.  



밥짓기는 예민한 것이라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처음 쓰는 도구(불)을 이용하자면 신경이 곤두선다. 게다가 사람들의 평가라는 것은 가감 없는 것이라(면전에서 맛 없다는 말은 안 하지만) 극 I 성향인 나는 이런 외부 케이터링은 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는 편이다.


하지만 결과가 좋을 때는 그만큼 기쁨도 큰 편이다.


인터미션어웨이 행사를 진행한 친구도 좋은 피드백을 전해주었고, 무엇보다 인원수에 비해 많은 양을 했음에도 남은 밥이 전혀 없었다는 게 기쁨이었다. 요리사는 빈 접시 보이면 그 때 안도하는 법이다.


토종쌀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서 알리는 것, 그리고 밥 맛이라는 것이 얼마든 다를 수 있고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분들이 늘어난 것이 보람 있었다. 서울 가서 팝업을 하게 된 것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경험이 쌓여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 한 해는 솥단지와 쌀푸대 짊어지고 전국으로 뛰어다니는 한 해가 될 듯 하다.   


다녀보면 토종쌀에 대한 반응은 엄청나다. 서울에는 정기모임도 만들어졌다. '글짓고 밥짓는' 에서 이제까진 그래도 '글짓는' 백웅재 작가가 더 알려진 편이었는데 올해를 계기로 '밥짓는' 캐릭터가 더 뜰지도 모르겠다. (행사문의는 메일 주세요 emptyh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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