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은 장맛과 청맛, 무엇보다 장치맛
장치는 긴 생선이라 장치라고 부르겠지. 그런데 긴 생선이 한둘인가. 당장 주문진항에서 많이 접하는 어종으로만도 삼치도 있고 물곰도 있고... 그래서 좀 찾아보니 이 친구 정식 이름은 '벌레문치'라네. 그냥 장치가 낫겠구나.
어쨌든 어시장엣 말린 장치를 봤으니 요리를 한 번 해봐야지. 장치찜으론 삼척의 울릉도호박집과 주문진의 월성식당이 유명한데 개인적으론 울릉도호박집의 막걸리까지 조합해서 원픽. 이왕 하는 김에 울릉도 호박집을 능가해볼까.. 하는 야심을 품어본다.
사실 울릉도호박집은 장치만 넣는 것이 아니고 가자미와 도루묵도 들어가는 종합 해물찜. 감자와 두부의 크기가 완전 스웩이 있는 것도 있고 양념장도 깊은 맛이 있는 편이다. 아마도 장을 담근 것을 쓰시거나 하는 듯.
옥상에서 직접 말리는 장치도 사이즈 부터가 내가 사온 것과는 달랐다. 흠, 야심에 벌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감자, 배추, 양파 등의 재료를 넉넉히 쓰는 것으로 따라잡기를 시도해본다.
찜맛은 양념맛이 팔 할 정도니까 어디 좋은 재료 때려넣고 맛을 내보자. 김명수 명인의 뻑뻑이액젓. 이거 단백질발효취가 강해서 많이는 못 쓴다. 적당량 쓰면 감칠맛이 폭발적이다.
비장해둔 박고추장. 공주 영평사 고추장에 박술용 청을 담궜던 것을 받아놓고 오래 묵힌 것이다. 고추장양념에 설탕이 국룰이라지만 나는 생설탕을 바로 써서 맛에다가 흰칠하는 것같은 짓은 안 한다(단호). 단맛은 이렇게 품위있는 박고추장으로.
그래도 단맛이 부족할까 해서 생강청도 투하. 이 생강청은 생강 알갱이를 씹어도 맵지 않게 순화가 잘 되었다. 비리고 걸쭉한 국물에서 상큼하게 밸런스도 잡아주고.
이제 된장으로 감칠맛도 또 보강한다. 이 정도 라인업으로 저온에서 오래 졸이는 식으로 하면 울릉도호박집에 비벼볼 승산이 있지 않을까. 장치 말고 다른 건 다 그쪽보다 좋은 재료를 썼다고 자부하니까.
결과물은 괜찮긴 한데 울릉도호박집을 능가했다고는 못하겠다. 역시 굵직한 장치를 조릴 때 본연의 육즙이 듬뿍 나올 수 있는데 이건 좀 약했다. 장치찜에서 장치 체급이 다른 건 극복이 잘 안 되는 거구만.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다. 요즘 쓰는 무말랭이나 호박말랭이를 썼으면 격차는 더 줄었을 것이고, 뭘 어떻게 해도 큼직한 헤비급 장치를 능가하긴 어려울 것 같고. 깨긋이 울릉도호박집 할매께 마음으로 승복하고 맛있게 먹어치웠다.
이건 미역국 남은 것과 섞어서 볶아먹은 것. 역시 찜 다음엔 볶음밥이지. '요리사의 밥' 스타일인데 이런저런 맛이 농축되어서 정돈은 안 되었지만 깊이는 있는 맛.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