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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쌀 중의 왕, 왕의 쌀, 옥경(玉京, 중만생종

리조또 쌀로도 그만인 토종쌀 옥경



옥경의 외관상 특징은 까락이 없는 것이다. 토종쌀에는 드믄 모습이다. 


개량종에 까락이 없어진 이유는 사람이 다 해줄테니 벼는 알곡만 열심히 만들라는 방향성 때문이었다면, 이 옥경은 일찌기 그렇게 극진한 돌봄을 받고 자란 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혐의(?)는 이름과 수확량에서 다시 심증을 강화 한다.


쌀알이나 밥을 옥에 비유하는 것은 클리셰지만, 그런 클리셰를 버젓이 달고 나온다는 것이 바로 쌀 중에서도 첫 손에 꼽을 무언가가 된다는 거다. 옥경은 마치 '쌀중의 왕'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큰 쌀알과 개량종에 뒤지지 않는다는 수확량은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학비료도 농약도 없던 시절의 쌀이 수확량이 개량종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이야기다. 진상용 등의 특별한 목적으로 금이야 옥이야 길렀던 품종이 아닐까 싶다.


평안북도 의주에서만 재배되었다. 상식적으로는 날이 빨리 추워지는 한반도 북단에서 좋은 쌀이 나기 힘들 것 같지만 비옥한 압록강 하구의 평야지대, 그 어딘가에는 미기후가 제법 온난한 곳이 있을지 모른다. 중만생종이라는 형질도 그런 짐작을 뒷받침 한다.




쌀알을 보니 과연 크기가 남다르다. 토종쌀 쌀알이 개량종에 비해서 조금 작은 것이 일반적인데, 이 옥경은 쌀알의 균질성은 떨어지지만 큰 것은 개량종 보다도 훨씬 크고 통통하다.


배젖의 분포도 그 큰 쌀알에 넓게 분포하는 편이다. 쌀은 씻기도 전에 옥 같이 하얗다는 느낌을 준다.   




밥을 지으면 과연 옥같은 밥이 나온다. 귀도에서 느꼈던 윤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건 밥짓기의 탓도 있다. 메벼답게 단단한 식감이 유지되어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쪽이 귀도보다 못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은은한 단맛과 향의 피니쉬가 긴 것까지, 가히 완벽에 가까운 쌀이다.


밥짓기라는 면에서는 옥경을 지으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쌀알의 크기가 물의 양에 미치는 영향 말이다. 쌀알은 타원입체라서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쌀알의 크기(각 방향으로 길이)가 20% 줄어들 때 표면적은 30% 이상 줄어든다. 반대로 20%가 늘어나면 50% 가까이 표면적이 늘어난다.


밥짓기는 증기를 어떻게 쌀알에 고루 침투시키느냐의 예술이자 과학이기도 하다. 이렇게 표면적의 차이가 크다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물론 표면적과 함께 늘고 주는 부피의 효과가 상쇄하는 부분도 있어서 표면적의 변화폭이 밥짓기에 고스란히 반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또 '감'의 영역이 된다.


옥경밥은 만족스럽게 나오긴 했지만 나의 별나게 단단한 밥 취향을 고려할 때는 생각보단 조금 물을 많이 먹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위의 표면적의 차이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이 쌀은 물을 조금 적게 잡아도 되는 쌀이었다.


 어쨌거나 만족스러웠던 오늘의 밥짓기는 85점


옥경을 보면서 또 든 생각은 이거, 리조또 쌀로 딱인데! 였다. 리조또 해보면 쌀에 육수 먹이느라 팔이 아프도록 젓고 또 젓는게 살짝 질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또 정통 이탈리아식으로 하려면 쌀알이 전부 익으면 안 되고 속은 심이 남아있는 상태[Al Dente]를 이상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리조또쌀들은 쌀알이 조금 큰 것들이 많고 자포니카적인 특성을 가진 찰기 있는 쌀을 쓴다. 옥경을 보니 아르보리오 같은 리조또쌀이 생각이 난다.  참고로 외국에서 한국이나 일본쌀 구하기 힘들 때는 이탈리아쌀로 밥을 지으면 대략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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