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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열 번째, 동남아식 오징어볶음과 차돌박이육전

눈오는 강릉에서 좋은 추억이 되셨길

설 전의 주말 심야식당에 예약이 들어왔다. 4인 가족의 저녁식사다. 포항에서 부부와 두 딸들(모두 성인)이 방문하신다고 하고, 생선은 평소에도 많이 먹으니 뭔가 고기요리가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아닌게 아니라 포항하고 강릉은 같은 동해바다라서  어종이나 식문화가 비슷하다. 차이를 찾으려면야 많지만 요리사나 어부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포항에는 외지 출신들이 많다. 메신저로 대화하다보니 억양도 모르겠고, 포항 토박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토종쌀밥 정식에 뭔가를 좀 바꾸고 덧붙여 보자. 우선 최선을 다해 밥을 짓고, 만들어둔 식해와 김치를 꺼낸다. 파프리카 샐러드까지는 루틴대로 가기로 했다. 생선구이는 이번엔 아니니 두어두고, 미역국 대신 아껴둔 된장으로 진한 차돌된장국을 끓인다. 거기에 복어곤이로 그라탕을 만들고 디저트를 내면, 일단 코스는 완성.


여기에 심야식당 컨셉으로 주문을 받아서 원하는 것을 한두 가지쯤 해드릴까 한다.  




식해는 에러가 날 뻔 했다. 알고보니 부부는 충북 산골 출신이란다. 딸들은 포항에서 낳고 자라서 경상도 사투리가 역연하지만 식해는 뭔지는 알아도 입에도 안 덴다고 하고. 남자분만 근래에야 술빚기를 하며 식해를 드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은 얼터렉티브살롱에 찾아오게 된 것도 술공부 하시는  다른 분이 추천해서였다고. 그래서 식해는 별로 젓가락이 오가지 않고 퇴장. 그래도 포항식 밥식해와 강원도나 그 이북의 조식해 차이를 이야기하며 나름 보람있는 시간은 되었다.


토종쌀 귀도밥은 호평. 그리고 곁들인 씨막걸리의 귀도막걸리도 괜찮다는 분위기다. 술은 아버지가 주로 드시고 어머니는 맛만 보시는 정도, 의외로 젊은 딸들은 술을 안 마시는 분위기다.


술공부 하시는 분과는 쌀에 대해서, 또 양조법에 대해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업계에서 유명하신 '전통주'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 이론대로 하자니 석연치않은 점이 있다고 하셔서 '그건 그 분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다. 세상 변하는 것이 빠른데 아직도 십여년 전과 강의노트 안 바뀌신 모양인데, 새로운 사람들이 업계에 들어오고 다양한 실험이 추구되면서 양조이론의 발전이 무척이나 빠르다. 


전통이란 말이 잘 모르겠으면 갖다가 쓰기에 좋긴 하다(그래서 난 전통주란 말 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옛날 사람들이 그랬다는 얘기가 다른 시도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파프리카 샐러드와 크림보다 크리미한 복어곤이 그라탕의 조화는 말 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복어곤이 그라탕은 큰 따님의 오늘의 원픽이었다고.



자 그러다보니 이제 뭔가 반찬거리가 하나 더 필요한 시점. 동남아풍 향신료 요리 괜찮으시냐니 딸들이 반응이 격하다. 손질해둔 볶음 채소에 오징어와 새우를 태국 레드커리로 볶아서 냈다. 엑스트라 후추까지 아낌없이 올린 오징어볶음은 젊은 분들에게는 환호에 가까운 환영.  


그리고 된장국도 맛있다고,  오랜만에 먹어보는 시골된장이란다. 그야 마트에서 파는 된장과는 비교할 수 없지. 어머님은 된장 혹시 파냐고 하시네.


오늘 것은 영월 된장인데, 포항 근처에도 맛난 된장, 그 비싸고 유명한 곳 말고, 맛있는 곳 있다 알려드렸다. 오늘의 된장보다 나으면 나은 곳이다.



그리곤 또 양조얘기, 술얘기에 빠져있다가 뭔가 아직도 좀 허전한듯 해서 한 가지를 더 해드리겠다 했다. 그래서 들어온 리퀘스트가 육전이다.


순간적으론 좀 난감. 육전이란 건 고기 다져서 양념과 채소 넣은 동그랑땡 식의 것인가 아니면 얇게 저민 고기를 전을 부친 것인가. 전자를 원하시면 진짜 좀 난감하고 후자라면 어떻게 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스타일에 구애 안 받으신다네. 차돌로 해보겠다고 하니 잘 될까 걱정을 하신다. 심야식당이라지만 손님이 불안하면 안 되지.


"제가 하면 대략 다 맛 있어요."


얼핏 건방진 멘트 한 마디 날리고 '오오~' 하는 소리 들으며 요리 시작이다.


일단 차돌을 먼저 불에 올려 기름을 녹여낸다. 드시는 분들이야 신경 안 쓰실 것 같지만 개인적으론 콩기름 냄새 극혐이라서(+GMO 보장) 원래 콩기름식용유 안 쓴다. 오늘은 차돌 잡은 김에 이렇게 고급진 한우 소기름으로 육전을 부치자 싶다. 고기에 미리 소금후추간이라도 해놓았으면 좋았겠지만 안 되어있는 걸 어째. 그냥 기름기 녹여낸 고기에 팬 위로 소금과 후추 뿌리고 팬을 휘적휘적 몇 번 휘둘러 준다. 밑간이 안 된 대신에 겉간을 확실히 하기 위해 기름에 소금을 녹이고 후추향을 입히는 과정이다.


그리곤 감자전분 먼저 입히고 그 위에 달걀물, 그리곤 그 위에 또 밀가루 입혀서 다시 팬으로 들어간다. 차돌박이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은 기름이 녹으면서 약간 거친 텐션이 생긴다. 그 위엔 전분과 밀가루의 이중 코팅으로 얄팍한 두깨를 보강하고 차돌에서 기대하는 부드러움도 덧대어 준다. 그리곤 쓴맛 없는 고오급 소금과 향기로운 후추가 녹아든 기름이 간을 잡아준다는 정도면... 괜찮을까? 한 점 집어 먹어보니 일단 뜻대로는 나왔다. 평가는 내 소관이 아니고.


반응은 양호했다.  의외로 괜찮은데! 같은 반응. 



술은 직접 담그신 것을 가져온 것도 있고 해서 아버지는 대략 주량이 가까우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술잔에 손이 안 가는 가운데 해질녘부터 소복소복 내리던 눈발은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투척하는 모드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운전을 담당하실 아버지는 내일 집에 어찌 가냐고 벌서 걱정이다. 강릉사람 눈으로 보면 이 정도는 뭐 별 거 아닌데, 이 분은 아이구, 강릉에선 이렇게 눈이 와도 차가 속도를 안 줄인다고 안절부절 하신다 ㅋㅋ. 


디저트는 로코코의 사과와 나중에 '흑진주의 탄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될 신메뉴(당시는 아직 개발중)였다. 다 드시고는 밖에 나와 눈을 맞으며 간판 대신 단 예술작품 '시그널1'의 설명까지 다 들려드렸다.


다음날 돌아가시는 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눈이 제법 와서 쌓일 정도였는데, 강릉 기준으론 그냥 평범한 정도였다. 제설엔 당연히 문제가 없었고 경강로 큰 길을 타고 고속도로 진입로까진 문제가 단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나중에 인스타에 들어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로는 물론 골목까지 말끔히 눈이 치워진 강릉에 감탄을 하셨네 ㅎㅎ.


오늘도 심야식당의 즉석 요리에 만족하셨기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밖에 나와서는 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열중하던 자매 중 언니 분이 마지막에 '참 좋았어요' 하고 가시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달콤하게 들리던지. 


식해사진은 자료화면(?)이고 나머지는 방문해주신 분들이 제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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