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rink An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술 한주기행]강화 주연향

제철 재료를 요리한 듯 생생한 소주, 야수(野秀)


강화 주연향. 인천 살던 때 강화는 제법 돌아다녀서 지리감각이 좀 있는 편. 물론 그 동안 강화도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많이 변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양조장들도 오래도록 이어온 몇 군데가 있었지 신생양조장들이라곤 없었다. 새집 티가 나는 작은 양조장이 강화읍 중심지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 하지만 어딘가 숨겨진 느낌의 곳에 자리잡았다. 



어디에 있든지 잘 하면 이름은 알려지는 것인가. 이 때가 마침 샌프란시스코 주류박람회에서 상 탄 직후다. 최초로 증류주 더블골드 수상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휴일인데도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4800시간이면 200일이지. 보통 100일 정도인 일반적인 프리미엄에 비해서 발효와 숙성에 들어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 이 시간과 품질이 정비례 관계는 아니지만 100일도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 1인. 기주의 품질과 숙성 방법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200일까지는 오래되면 좋아진다고 해도 크게 무리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사람이 몰아치다가 드디어 짬이 났다. 미리 약속을 하고 왔지만 손님 응대를 방해할 수는 없으니 여기저기  둘러보며 혼자 시간을 보내본다. 

인상은 한마디로 작은 양조장. 더 작은 곳도 있긴 하지만 여긴 탁약주에 증류주까지 다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밀도가 남다르다.


한숨 돌리고 온 김양식 대표는 작은 양조장에 갑자기 사람이 몰려서 팔 술이 거의 안 남았다고 행복한 푸념이다. 2층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와 시음을 시작한다.



주연향 레드와 블루도 무척 훌륭했지만 기존의 문법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보이는 술은 아니었다. 상당히 잘 만든 약주고 넉넉한 숙성으로 깊이가 확보된 상태. 쌀의 당분이 다른 맛으로 재미있게 변해가고 있는데 조금 더 있어도 좋겠다 싶다.  



주류박람회 수상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론 큰 의미를 두진 않는 편. 출품작도 많고 그에 비례해 워낙 상을 많이 준다. 개인적으론 진짜 좀 이상해 싶은 술들도 상을 척척 받는 걸 보니 말이다.


게다가 이 술, 기본적으로 쌀소주라고 봐야하는 쟝르다. 그런데 양조장 연혁을 보면 숙성의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닐 것 같다. 솔직히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 하는 마음이었지만 더블골드를 받았다니 그건 또 한 번 돌아보게 된다. 70명 심사위원이 만장일치가 되어야 받는 것이 더블골드라니 말이다.

 

그리곤 과연! 말을 잊기 어려운 경험이 이어진다. 

야수R은 차조가 들어간 것이 포인트. 하지만 기본적으론 쌀이 주성분인 증류주이다. 그런데, 이 차조의 역할이 극적으로 느껴진다. 53도의 고도수, 신선한 느낌이 난다. 



야수G는 인삼이 들어간 증류주다. 강화인삼은 파주, 개성과 더불어 옛날부터 인삼의 유명 산지. 그것도 6년근을 사용했다. 인삼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인기있는 가향재로 여러 술에 쓰이는데 다만 침출주가 아닌 증류주는 예가 드믈다.


그런데 이 술이 또 놀랄만한 술이다. 인삼의 향이 생생히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실은 증류를 통하면 이런 향을 살리기는 쉽지가 않다. 앞의 야수R에서 말한 신선함은 이 인삼의 생생함으로 표현이 된다. 53도 증류주에서 생인삼을 마주 대한 듯한 쌉쌀함이 느껴지다니.



시음주에 취할 수는 없으니 술은 적당히, 이야기는 길어진다.

본래는 디자인 관련 일을 하던 김양식 대표는 술을 대하는 태도도 남다르다. 수익보다는 정말 좋은 술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대단하고 그를 위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좋은 재료라고 한다. 여기 강화에서도 가장 좋은 재료들을 열심히 찾아구해서 술을 빚는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입장도 우선 좋은 재료가 최선, 최고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야수 시리즈는 숙성보다는 그런 재료의 장점들으 잘 살리는 생생함이 오히려 장점인 것 같다. 증류주는 무조건 숙성, 3년은 최소한이라는 개인적인 지론이 무색한, 제철음식과 같은 느낌의 증류주를 마시고 새로운 경지에 눈을 떴다. 아마 이 술에 최고점을 준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증류주 양조의 새로운 경지를 보았다. 이 술이 또 숙성을 더하면 어떤 맛이 나올지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