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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밥맛] 복어 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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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시기가 복어의 제철. 주문진은 복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에 가면 싱싱한 활복어가 넘쳐나고 가격도 싸다. 이 복어가 다 안 팔리면 반건조를 해서 저장을 한다. 한여름에도 냉동해서 보관한 것이 있긴 하지만 이때가 얼리지 않은 쫀득한 반건복어도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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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손질은 가위로. 머리 떼어내고 지느러미 잘라내고, 등뼈를 중심으로 포를 떠도 되고 안 떠도 된다. 식해를 만들 것이니 젖산발효가 강력해서 왠만한 뼈는 녹아버린다. 등뼈는 녹을 정도는 아닌데, 한 달쯤 지나면 제법 눅어서 이가 튼튼하면 씹을만도 하고, 아니면 그냥 뱉어내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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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이번엔 찰기장으로 지어봤다. 보통 강릉 이북, 그러니까 강원도 북부와 함경도는 조를, 이남으로 경상도쪽은 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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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식은 물기를 안 잡고 무말랭이를 넣어서 물기를 흡수하는 것.

무생채를 쓰려면 물기를 제법 짜내야 한다. 그런데 국물도 즐긴다면 그럴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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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좀 고두밥으로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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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공급은 단감청으로 한다.

요즘은 식해라고 무침이 나오는 집이 많고, 아니 그마저도 나오는 집이 거의 없는데, 엿튼 이 당분은 단맛 내려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의 영양공급원이다. 제대로 발효가 되면 추가로 당을 넣기 전에는 젖산균과 효모의 영양분이 되서 그냥 신맛만 난다. 술도 보당 안하고 완전발효하면 드라이하게 나오는 것과 비슷한 이치.


발효제로는 누룩을 쓴다. 사실 따로 발효제 안 넣어도 되고 좀 미심쩍으면 막걸리나 요거트를 살짝 넣어주어도 된다. 당을 분해하는 효소는 생선에 있고, 젖산균은 그 당을 잘도 먹어치운다. 누룩의 효모는 주발효에 필요한 균이 아닌데, 오래 되면 살짝 알코올감 올라오는 것도 매력 있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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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뜻한 곳에 두고 일주일쯤 지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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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식해 한 점 올려서 밥 한 숟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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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해를 오센틱하게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론 기쁜데, 사실 이 시큼쿰쿰한 생선요거트(?)가 지역민이나 발효고수들 아니면 별로 인기가 없다. 그래도 동해안의 음식을 소개할 때 빠뜨리기 싫은 애정하는 아이템이라서, 고급어종인 복어(보통은 싸구려 물가자미, 기름가자미를 쓴다)를 써서 어필하는 것. 확실히 복어를 쓰니 좀 더 드시더라. 물론 현지인들은 가자미만 들어가도 리필이 쇄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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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이 정 부담스럽다면 또 방법이 있다.

고소한 맛을 더해주는 참기름. 참기름 향이 강한들 식해와 만나면 조연 정도다. 그러니 부담없이(가격이 부담이지만) 써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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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깨도 좀 얹으면 거부감이 많이 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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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를 식해로 할 때의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이 콜라겐 덩어리가 잘 삭지 않는다는 것.


대구 같은 경우는 한 달 넘어가면 살이 다 삭아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된다. 특유의 가닥섬유로 이루어진 육질이 젖산에 버텨내질 못하더군. 반면 복어는 두껍게 썰면 껌같이 계속 씹어야할 정도의 육질이라 식해로 담으면 적당히 식감 있는 느낌이라 좋다.


강릉에는 이제 이런 식해를 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강릉 현지인 손님들, 특히 연세 있으신 분들은 오셔서 리필엔 리필을 하신다. 가자미류를 쓴다고 해도 공짜 반찬으로 내기엔 원가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외지인들은 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내 생각엔 강릉, 동해안을 대표하는 저장음식 중 하나인 식해가 좀 더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유네스토 미식창의도시라면서 커피는 열심히 홍보해도 식해는 아무도 거들떠 안 본다니,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생선으로 만든 치즈이며 요거트이며 장, 그것이 식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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