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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프랑스 궁정요리사의 후예와 강릉의 만찬

동서양이 강릉에서 만날 때


저녁을 먹기 전의 시간은 자연히 서로 지난 시간동안의 업데이트로 채워졌다. 마리의 영국에서의 대학생활, 내가 프랑스에서 하던 일과 지금 여기 강릉에서의 생활, 마리의 세계여행기와 한국생활담 등, 두 시간 남짓을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할 이야기가 산더미 같았다. 


“두 분,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면 어떨까요?”


파올로가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면서 일단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파올로, 저녁은 이리로 좀 날라주겠어요?”


1층의 홀에 있는 식당은 손님들이 많을 때나 사용하고 침실에 접한 응접실도 손님들이 올 때만 쓴다. 평소에는 이렇게 서재에서 혼자, 혹은 파올로와 같이 둘이 식사하는 것이 일상적이라 별난 일도 아니었다. 

애프터눈티가 치워지고 저녁식사 준비가 되는 동안 마리와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마리가 조용하고도 밀도있게 필사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건, 사실 저의 7대조 할아버지께서 쓰신 거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건 정말 무슨 운명의 설계란 말인가? 마리··· 마리 뻬뺑···의 7대조 할아버지가 오귀스뜨 뻬뺑? 아, 그래서 아이디가 ‘뻬뺑의 여행(tour de pepin)’ 이었던 거구나!


“무슈, 어때요? 이 노트, 재미있게 보셨나요?”


마리는 처음으로 보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 진지함은 무엇을 대상으로 한 것일까? 잘은 몰라도 뭔가 숙제검사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끝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어려운 얘기다.


“실은 필기체의 옛날 프랑스어라서 잘 못 읽겠더라구요. 초반에만 좀 뒤적여 보다가 그냥 조용히 책꽂이로 갔지요. 한국에 올 때 가져와서 잘 보관하고 있었어요. 최근에야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겨서 다시 시도를 해보았는데 역시 쉽지가 않아서요. 그래서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했던 거지요.”


딱 숙제를 안 한 학생과 같은 어조가 되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정말 후회했어요. 대학에 가서 문헌학을 공부하면서야 그런 오래된 문서들의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 못지 않게 제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요. 뒤늦게 엄청 후회했지요. 이 노트를 비롯해서 여러가지를 팔아버린 걸.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짐을 줄여버리자 싶은 기분이었거든요. 게다가 특히 이 문서, 우리 가문의 역사와 연관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오귀스뜨 뻬뺑, 그 노트를 쓰신 분은 저 마리 뻬뺑의 7대조 할아버지가 되셔요. 요리사이자 여행가, 아니 모험가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렸던 분이지요.”

“아, 그렇게 가족의 의미가 깊은 문서였군요. 저는 가지고 있어도 읽지도 못하니 돌려주고 싶어요. 원래도 돌려드릴 계획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보니 더더욱.”

“네, 사실 한국까지 올 때는 그 문서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컸어요. 어쨌든 팔았던 거니까 다시 되살께요.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돈은 필요 없어요. 나한텐 별로 소용도 없는 물건이고, 어차피 살 때도 너무 싸게 사서 미안하던 참이기도 하고요. 가족과 관련된 문서라니 그냥 돌려드릴께요. 마리에게 좋은 선물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단, 이 내용만은 궁금하니까 번역을 도와주세요.”


마리는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어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하고 멀리까지 왔을 것이다. 대학에서 문헌학과 비교언어학을 전공했다니 이런 문서의 시세가 고급차 한 대 가격이 넘는다는 것은 알고도 남았을 거다. 


치즈 한 덩어리와 이 필사본을 해서 100유로였으니 치즈를 빼면 문서의 가치는 7~80 유로 정도 했던 것일까. 그러니 원래 샀던 가격의 몇십 배나, 혹은 몇백 배 정도라도 각오했을지 모른다. 1000배쯤, 그러니까 몇 만 유로를 주더라도 공정가격 정도일텐데, 그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면 어쩌나 걱정을 했을 것도 같다. 


실은 내가 아직도 현직 아트딜러고 이 물건을 정상적으로 판매한다면 아마 10만 유로 정도는 노려보았을 것이다. 오귀스뜨 뻬뺑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워낙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이 문서의 내용을 번역해보아 좋은 스토리가 나온다면(그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프로모션을 통해서 가치를 확 높일 수도 있다. 그 경우는 가격이 어디까지 오를지 가늠도 하기 힘들다. 


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코덱스보다는 안 비싸겠지. 그래도 백만 단위 호가가 불가능할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이 예술품 시장의 속성이고, 그 속성을 잘 이해하고 최대한의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해온 노하우다.


물론 이 경우는 당연히 돌려줄 것을 돌려준다는 생각이지만.


“그럼 제가 이걸 번역해 드릴께요. 영어와 한국어로요. 그것 때문에 저랑 다시 만나게 된 거기도 하잖아요? 음, 한국어라면 번역을 할 정도의 실력은 안 되지만 영문판도 같이 있으니 내용은 충분히 전달이 되겠지요? 제가 초벌 번역을 하고 무슈가 손을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마침 요리하는 일을 좋하시는 것 같으니 도움도 될 것 같고요, 아마 재미도 있을 거에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우연히 오귀스뜨 할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한 삶을 사신 분이에요. 이 노트에 그분의 인생이 친필로 담겨있는 거에요.”

“그래요, 마리가 번역을 해주면 나도, 다른 사람들도 이 내용을 다 알 수 있겠군요. 이 문서가 드디어 제 주인을 찾아서 빛을 보겠네요.”

"고마워요 무슈."


한국어를 쓰면서도 호칭은 이름을 부르거나 아저씨나 선생님 같은 것이 아니고 꼭 프랑스어 무슈(Monsieur)라고 한다.나도 프랑스어로 대답해 주었다.


"Avec plaisir (나의 기쁨입니다)!"


갑자기 뭔가 힘든 딜을 하나 성사시킨 것 같은 가볍고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축하의 만찬 같은 것으로 기분을 내고 싶은 그런 심정. 파리에 있을 때도 이런 날은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서 즐겁게 먹고 마셨다. 

파리의 미슐랭 스타급 고급 레스토랑은 당일 예약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게 대기가 길다. 당일은 커녕 한 달 전 예약도 안 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셰프나 매뜨르도뗄(Maitre d’hotel)이 친구라면 서너 명 정도의 소그룹은 어떻게든 끼어들어갈 자리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내 경우는 대개 혼자나 둘이었으니까, 정 안되면 임시 테이블을 하나 놓아서라도 자리를 마련해주곤 했다.





오늘의 만찬은 귀한 손님을 예상하고 있어서 충분히 정성을 들인 것이었다. 내가 직접 메뉴를 짰고, 내가 직접 창안한 요리도 있다. 패어링 플랜도 물론 내가 직접 구상했고.

파올로가 능숙한 솜씨로 서빙과 설명을 시작했다. 누가보면 유럽의 귀족 집안에서 오래 일한 집사인 줄 알 정도다. 파올로는 이 집의 실질적인 메뜨르도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용인이 아니라는 점만 빼고. 


“계절 샐러드입니다. 배추와 상추잎을 넣고 오이와 파프리카가 들어가 있습니다. 드레싱은 홈메이드 요거트를 베이스로 디종(Dijon) 홀머스터드와 터키산 블랙올리브, 홈메이드 자두시럽으로 맛을 냈습니다.”


마리는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사진 좀 찍어도 실례가 안 될까요?”

“얼마든지 찍어도 좋아요. 하지만 이 장소나 저에 대한 이야기는 공개하지 말아주세요. 관광객들이 찾아오면 이곳을 떠나 도망가야 할지도 몰라요.”

“아 그렇군요. 물론이에요. SNS같은 곳에는 공개하지 않을께요.”


샐러드를 드는 동안도 우리는 업데이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서로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 있는 상황이랄까.


한국 스타일로 빨리빨리 다음 코스가 날라져온다.


“챠완무시 스타일의 계란찜입니다. 이 계란찜에는 대게 다리살이 들어있습니다. 강릉은 대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대게살의 미묘한 향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소금으로만 가볍게 간을 했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소금이나 간장은 여기 있습니다.”

“고마와요.”

“술을 한 잔 곁들이시겠습니까? 각각의 코스에 맞는 패어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아 네, 궁금하네요 한국의 술.”

‘한국의 술’이란 말에 내가 끼어들었다.

“마리, 한국에 와서 좋은 술을 마신 적이 있나요?”

“음··· 솔직히 말하면 좋은 한국술을 마신 적은 없어요. 녹색병에 든 소주나 막걸리는··· 솔직히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술이더군요.”


그럴게다.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녹색병 소주나 막걸리의 가격은 환산하면 대략 1유로. 한국이 프랑스보다 물가 수준이 비싸지는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가격의 술은 굉장히 싼 것이다. 특히 소주의 경우 주세만 72%라는 어마어마한 비율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교육세며 부가세며가 따라붙는 것, 게다가 엄청난 광고비 지출 등을 감안할 때, 이 가격으로는 결코 좋은 술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도 1유로 와인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대개는 ‘땡처리’ 개념의 철지난 술을 할인하는 식이다. 당연히 퀄리티는 접어둔다. 맥주값도 비싸다는 극빈층이나 학생들이나 사 마시는 정도다.


“소주 같은 술은··· 한국인으로서 좀 부끄럽군요.”

“아니, 그런 술들도 나름의 쓸모가 있겠지만, 제법 비싼 음식점에 가도 술이란 대개 그런 종류들뿐이라는 게 저로선 너무 놀라왔어요. 어떻게 6천원짜리 백반집과 10만원짜리 한정식집에서 같은 술을 마시는 거죠? 음식에 따라 술도 좋은 것을 즐기고 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술이라면 '쏘주', '쏘맥' 밖에 모르는 한국 사람들에게 던지는 바로 그 질문이다.


“한국의 술문화라는 것이 몇몇 대기업 제품 위주다 보니 그래요. 만드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이나 값싸게 취하는 게 목표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소규모 양조장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요. 오늘은 기대해도 좋습니다.”


변명조로 시작한 대답은 희망조로 바뀌어 끝난다. 이 때 파올로가 술병을 들고 매끄럽게 타이밍을 찾아들었다.


“술은 두분의 재회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스파클링 막걸리를 준비했습니다. 우선 잠시 이 병을 주목해 주세요. 필요하시면 영상을 찍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리는 맥락도 모르면서 무작정 핸드폰의 영상모드를 켜고 촬영을 시작했다. 늘씬하게 키카 큰 노신사 파올로가 역시 일반 막걸리병보다 훨씬 길고 늘씬한 병의 뚜껑을 열었다.

잠시, 약 1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뭐지 싶은 생각이 들어올락말락 할 타이밍에서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막걸리 앙금이 뭉게구름같이 피어올랐다. 마리의 탄성도 같이 피어올랐다.


“울랄라!”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말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지간히 경험이 쌓였고, 한국에 와서도 물론 녹색 병의 막걸리 정도는 마셔보았겠지만 아마 이런 건 못 마셔봤을 것이다. 

포인트는 흔들지 않아도 병을 열 때 탄산이 차오르면서 막걸리의 침전물을 구름같이 피워올린다는 것이다. 오늘은 딸기가 들어간 막걸리라서 분홍빛 구름이 아름답게 피어오른다. 전남 장성의 산소 딸기 스파클링 막걸리다. 


“와우, 이런 건 처음 봐요. 너무 아름답네요.”


향은 또 어떻고? 마리는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프랑스 사람 답게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는 표정으로 음미하기 시작했다. 필연적으로 약간의 의심과 탐색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는 표정이다. 나로서는 이럴 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조금은 조마조마하고 조금은 기대에 찬 심정이 된다. 어떤 평이 나올까?

“와우, 이건 뭐죠?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 딸기··· 딸기향은 알겠어요. 하지만 감칠맛도 있고, 뭐랄까 막걸리 특유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가벼운 기분이 들게 하네요.”

“이건 딸기 스파클링 막걸리에요. 알코올을 만드는 베이스는 쌀, 전분이 많은 찹쌀이고요, 향과 색을 구성하는 요소는 주로 딸기에서 왔지요. 꼭 샴페인 같으면서도 말씀하신 감칠맛이 있어서 뭔가 색다른 느낌이지요? 그 감칠맛이 한국술, 쌀술의 특징적인 요소랍니다. 과실주로는 내기 힘든 맛이지요.”

“와아,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에요.”


마리는 감동한 표정이다. 그런 감동도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늘은 나름 궁리를 해서 좀 준비를 해두었다. 요리는 코스로 하나하나 내오는 것으로 했다. 요리 하나마다 의미를 담았으니까 그 의미를 느낄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준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코스로 음식을 낸다는 것은 기승전결이, 스토리가 있는 무대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만찬은 사람이나 음식이나 동서양의 만남이다. 또한 오랜만의 재회를 기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물론, 아직 놀람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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