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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유럽의 음주 최적화 도시 더블린

마리는 왜 더블린으로 갔을까?

이제 요리코스가 지나고 식사를 할 차례다. 

탄수화물 섭취는 뒤로 가는 것이 한국식 코스의 정석. 그건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주문진탕입니다. 식사로는 밥과 국수를 택하실 수 있는데 어떤 것을 드시겠습니까? 밥은 따로 드리고 국수는 소면이 말아져서 나옵니다.”

“밥도 좋지만 저는 국수가 매력적이더라구요. 아시아에 오면 되도록 많은 국수를 먹자고 작정하고 있었어요. 국수로 할께요.”

“저도 국수로 부탁해요 파올로.”


파올로가 곧 냉면 그릇만한 두 개의 보울을 들고 나타났다.


“국수는 바닥에 말아져 있습니다. 바닥에서 면을 건져서 먼저 드시면 좋을 겁니다.”

“고마워요 파올로.”


시뻘건 국물이지만 마리는 망설임 없이 씩씩하게 젓가락을 댄다. 젓가락질 솜씨도 완벽하다. 우선 그릇 바닥의 면을 건져올려 호로록 맛을 보고는 다음으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본다.


“응?”


마리의 반응에 이번엔 내 편에서 미소가 떠올랐다. 거울을 봤으면 아마 꽤나 장난스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이건 너무 익숙한 맛이에요.”


나는 예의 미소를 유지한 체로 일부러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건 부야베스하고 아주 비슷하네요. 음, 좀 더 스파이시한 것과 생선이 메인으로 나오지 않는 것, 국수가 말아진 것 정도가 차이일 뿐, 분명 부야베스 맛이에요.”


맞다. 주문진탕은 마르세이유의 대표요리 부야베스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다. 거기에 향신료와 국수로 약간의 트위스트를 준 것이다. 


주문진탕이란 요리에 짜여진 레시피는 없다. 


동해안에서 가장 큰 어항인 주문진항은 신선한 자연산 생선을 구하기에 최고인 곳이라 내가 애용하는 항구이다. 어시장에서 제철의 싸고 물좋은 생선을 이것저것 산다. 단, 고등어 같은 붉은살 생선이 아니라 흰살 생선이 좋다. 주문진에서 흰살 생선이라면 우럭, 대구, 가자미 같은 생선은 사철 구할 수 있다. 


아귀나 물곰 같은 생선도 넣어서 안 될 것은 없지만 이렇게 되면 인상이 아귀탕이나 물곰탕이 되서 설명하기 구차해진다. 어쨌든 거기에 대체로 오징어와, 째복이라는 동해안 특산의 조개가 들어간다. 째복은 모시조개로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껍질이 훨씬 두텁고 무늬가 다양하다. 국물을 시원하게 하는 데는 모시조개 이상의 효과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빼놓지 않는 재료지만 형편대로 안 넣어도 상관은 없다. 


이런 해산물들이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채소와 생선들을 올리브유를 아주 넉넉히 두르고 한 번 볶아서 기름에 충분히 향이 베게 한 다음에 거기에 토마토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채소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감자와 양파 정도는 고정출연이고, 대파도 빠지면 섭섭하다. 철 따라서 봄동도 넣고, 샐러리도 넣고, 여러가지 버섯도 넣고, 생각해보니 미역이나 다시마도 안 될 이유는 없겠네. 여기는 따로 양식은 안 해도 봄이면 해안가에서 자연산 미역을 줏어다가 먹어도 될 정도다. 


토마토는 아쉽지만 수입산 캔 제품을 쓴다. 한국의 토마토는 소스용이 아니라 채소용으로 재배되는 것들이고, 게다가 맛보다는 운반할 때 단단한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이렇게 요리용으로 쓰기엔 적당하지 않다. 거기에 내 취향으로는 고추가루와 후추를 적절히 사용해서 매큼한 향을 내는 것이다. 


“맞아요. 오늘은 이 철에 동해안에서 흔한 횟대와 우럭이 들어갔네요. 대구도 빠질 수 없죠. 마르세이유에서 나오는 식으로 커다란 생선을 따로 서브하는 것은 생략했어요. 뭔가 좀 오버인 것같기도 하고, 원래 프랑스에서도 부야베스는 서민들의 음식이라 그냥 값싼 잡어를 넣어서 끓인 거거든요. 요즘은 관광객들이 마르세이유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 되어서 호화로운 버전도 나오지만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확실히 가정식이라면 대구나 큰 새우 같은 비싼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 그때그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 먹지요. 이 매콤한 향신료는 아마도 고추겠죠? 매운탕 기분도 약간 나네요.”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서 먹고 마시는 경험도 어지간히 쌓인 모양으로 한국의 생선매운탕 기분을 낸 의도 마저도 읽어낸다. 


“아, 그리고 이 국수. 보기엔 평범한데..., 다른데요. 흔히 먹던 소면과는.”

“맞아요. 그건 경주라는 한국의 오래된 도시에 있는 국수집에서 사온 겁니다. 대나무발에 국수를 늘어뜨려 자연건조 시키는 방식이지요.”

“이 면발의 탄력. 한국의 국수는 다들 어딘가 힘이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싶었는데 이 탄력은 경질밀로 만드는 파스타에 버금가겠군요.”


역시는 역시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다. 대부분 부야베스와 주문진탕의 연관에서 흥분에 휩쓸려 다른 것들은 넘어가게 마련인데 국수 면발의 차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잡아낸다. 이건 미각과 후각의 타고난 재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는 능력, 후천적 능력이다.


“실례합니다. 곁들이실 술은 홍천의 메밀로(露)라는 이름의 메밀소주입니다. 알코올도수 53도로 만약 도수가 너무 높아 불편하시다면 25도짜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아니에요 파올로, 25도짜리 증류주라니 그런 건 맥이 빠진 맛이죠. 53도로 부탁해요.”


씩씩하게 독주를 청한다.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 그것도 여리여리한 몸매의 갸냘픈 인상을 줄 수도 있는 사람인데, 그런 것은 첫인상일 뿐이고 막상 마주 대해보면 적극적이고 활달한 사람이다. 


“어때요 메밀소주는?”

“음. 솔직히 말하면 왜 지금 이 술을 마시는 지 잘 모르겠네요. 주문진탕이 워낙 강한 향신료들이 많이 들어가서 굉장히 도수가 높고 강하다는 것 외에는. 솔직히 말하면 술맛을 잘 못 느끼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동감이다. 그냥 한국 사람들은 찌개나 탕 같은 국물에 소주를 마시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니까. 나 개인적으로는 양념과 향신료 범벅의 국물에는 소주보단 차라리 막걸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인인 마리에게는 ‘컨벤션’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막걸리는 앞에서 마시기도 했고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어쩐일로 한국사람들은 그런 붉은 국물에 소주 마시는 걸 좋아한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주는 고급소주가 아니라 녹색병의 희석식 소주들이지만.”


하지만 역시 이건 아니었던 듯. 주문진탕의 강한 냄새에 섬세하게 쌉쌀한 메밀향이 전부 가려져버렸을 것이다.


“글쎄요, 강릉 같은 곳에서 새벽부터 배 위에서든 부두에서든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하다 실내로 들어와서 잡어로 매운탕을 끓여 녹색병의 소주 한 잔을 한다면. 추운 몸을 녹이는 의도라면 훌륭한 조합 같아요.”

“미묘한 맛을 느끼기 위한 식사로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겠지요. 역시 후회가 되네요. 뭔가 다른 조합을 궁리해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것도 한국의 음주문화의 일부니까, 마리에게 체험시켜주고 싶었어요.”

“아니에요. 차가운 바닷바람까지 어우러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술도 없을 것 같네요. 지금은 한여름이긴 하지만··· 아, 본의 아니게 제가 비판을 한 게 되어버렸네요. 미안해요.”


말은 미안하다지만 썩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닌 표정으로 역시 약간은 웃고 있다. 미안해서 멋적은 웃음이나 화해의 웃음이 아니라 장난기가 드글거리는 미소다.


마리의 저런 미소는 어쩐지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사실 뭐,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아니에요. 저도 완전히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히려 기분이 좋군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과연 유명한 셰프의 후손 답군요.”

“글쎄요. 뻬뺑 할아버지뿐 아니라 가족들이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해왔던 것이 컸겠지요. 저는 업으로 삼고싶은 마음까진 들지 않았지만요.”

“그건 왜일까요?”

“음, 몸이 힘든 것은 상관 없었어요. 아침새벽에 일어나는 거나 무거운 것을 드는 것, 냄새나는 외양간을 치우는 것등 모든 일이 어릴때부터 거들던 일이라 익숙했거든요. 하지만 레스토랑이든, 농장이든 한 번 열면 거기에 메여있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어요. 농장은 쉬는 날에도 사실 쉬는 게 없었거든요. 동물들이 요일 가리면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건 공감이 가네요. 저도 자영업자 출신이라 알지요. 쉬는 날도 쉬지 못하는 그 기분. 정말 휴가가 필요한 건 월급쟁이 회사원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지만 휴가를 준대도 스스로 못 가는 사람들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영업이란 다들 그렇지. 나도 20여년 간 마음 편하게 쉬어본 날이 하루도 없었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도 전화통에 메달려 있게 되는 게 사업이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내려서 후식을 먹을 차례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다시 오귀스트 뻬뺑으로 돌아왔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컬리지까지 이야기를 했지요. 트리니티 컬리지에 인턴을 지원하게 된 건 실은 아일랜드의 음주문화를 마음껏 느껴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어요.”


말을 마친 마리의 혀끝이 명랑하게 내밀어졌다. 


그렇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술’이라면 떠올리는 곳이다.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나 스코틀랜드의 스페이사이드(Speyside)가 술을 ‘만드는’ 곳으로 단숨에 떠오르는 곳이라면 더블린의 아이리시펍은 술을 ‘마시는’ 곳으로 첫 손에 꼽을 장소다. 


더블린의 유명한 아이리시펍들은 역사도 오래 되었고, 거의 24시간 영업 시스템이다. 낮술은 물론이고 아침술도 가능하다. 그리고 영업시간 중 대부분은 악단이 이끄는 생음악이 제공된다. 


더블린의 유명 펍들은 세계 곳곳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흥청거린다. 아이리시펍에 꼭 필요한 것은 음악, 그리고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아일랜드 사람도 사람이지만 음악은 정말 꼭 필요하다. 왁자지껄, 무질서하게 각자 취해가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음악에 맞춰 떼창을 하게 되는 경험은 안 느껴본 사람은 모르는 그 맛이다.


물론 여럿이 모여 취하다보면 사건사고도 있게 마련이다. 매일밤 펍의 한 구석에서는 시비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술을 다른 사람 옷에 쏟아서이든, 어깨빵을 하고 그냥 지나쳐서이든, 파트너가 화장실 간 사이에 누군가에게 집적거리다가이든 말이다. 


아일랜드인을 주정뱅이 하층민으로 묘사하는 프로토타입은 산업혁명 이후로 영문학에서 하나의 관행이 되어왔다. 식민지 백성을 내려다보는 편견도 있겠다. 아일랜드에 감자역병으로 대기근이 발생하면서 아일랜드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영국의 공업지대와 도시에 와서 저임금 노동자, 도시빈민이 되었다. 뉴욕 이민사회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아일랜드계인 것도 이런 유럽판 이촌향도 현상의 한 결과이다.


이 당시 하층계급의 사람들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눈을 뜨고 보기에도 처참한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살았다. 그렇다고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알코올중독은 이런 임금노예의 일상을 버티도록 만드는 값싼 마약으로서 술에 의지하는 현실적 모습이기도 했다. 


아일랜드인과 술에 대해서는 이런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는 기네스를 비롯한 여러 맥주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지금의 스카치 위스키 산업을 있게 한 복식 증류기를 발명한 사람도 실은 아이네아스 코피(Aeneas Coffey)라는 아일랜드인이다. 


무엇보다 함께 노래부르고 춤추며 초면에도 금새 친구가 되는 아이리시펍에서의 경험은 세상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독보적인 경험이다. 그러니까 술꾼이라면 아일랜드는 건너뛸 수 없는 순례지 중 하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턴십으로 아일랜드를 택한 것이 그런 이유라니, 이 아가씨도 참···.


이제 후식이 나올 차례다. 


마리가 풀어놓을 이야기 보따리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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