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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오귀스뜨 뻬뺑, 출생의 비밀

나의 아버지는 귀족나부랭이었을까?

요리의 재료가 될 보급품은 첫째도 둘째도 저장성이라고 했다. 저장성이 좋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우선 수분을 되도록 제거해서 건조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방법으로 만든 대표적인 보급품은 비스킷이 있겠다. 비스킷이란 쉽게 말해 빵의 수분을 날려서 만든 것이다. 음료와 같이 먹거나 수프 등에 담가서 같이 끓이면 먹는 느낌은 달라도 성분상으로는 빵이나 다름이 없다. 


소금에 절이는 것이 또 한가지 방법이다. 


소금에 절이는 것으론 고기가 대표적인데, 짜기만 하고 맛은 없지만 망망대해에 나가면 이것도 고마운 음식이 된다. 주로 돼지고기를 많이 절이지만 쇠고기도 절여서 가지고 다니는데, 소금에 절여도 부패가 쉬운 단백질과 지방은 더운 날이면 일주일이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끈적한 진액이 고이게 된다. 짜다기보다 쓴 소금물 같은 이런 진액에까지 또 용케 벌레들이 끼어들기도 한다. 그래도 바다 한가운데서 다른 선택이 없으니 이런 것들을 먹는 것이다. 


뱃사람들이 잘 모르는 방법이지만, 초에 절이는 방법도 있다. 


식초란 비싼 물건이라 이런 상선의 식사용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이번에 마데이라에 들르면 식초를 좀 사서 채소를 절여서 출항하자고 할 것이다.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는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배에서는 기껏 일주일 정도밖에 보존이 안 되어서 길게는 몇 달이라도 채소와 과일 없이 항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초에 절이면 이런 문제도 해결이 된다. 솜씨만 좋으면 몇 달이라도 아삭한 상태를 유지할 정도다.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뱃사람들이 많이 겪는 괴혈병 같은 경우도 이런 채소나 야채를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최근의 일이지만 영국 해군에서는 괴혈병 예방용으로 레몬즙을 상비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레몬즙의 신맛이나 식초의 신맛이나 통하는 데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초절임으로 아삭한 상태를 유지하는 신선한 야채가 괴혈병에는 특효일 것 같다.


그리고 또 대표적인 보존식품으로는 알코올을 빼놓을 수 없겠다.


술은 음료로도 쓰이지만 제법 영양분이 높아서 중요한 식품이기도 하다. 맥주 같이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은 금방 쉰내가 나지만 와인 정도만 되어도 통에 넣어 시원한 선창에 보관하면 일 년은 거뜬하다. 브랜디나 위스키 같은 독주의 경우에는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결코 상하는 법이 없다. 순조로운 항해로 술도 엄청나게 많이 남았다.

풍랑을 만나 항로를 잃고 표류하며 배의 가죽끈을 삶아먹었다느니 혹은 서로 잡아먹었다느니 하는 괴담들이 전해내려오는 것은 선원들에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같이 항해가 순조로울 때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게 마련이다. 




푼찰항 입항 전야의 저녁으로는 간만에 와인소스의 생선요리로 특식을 내었다. 마데이라에 왔으니 우선 마데이라 스타일의 포트와인부터 소진해야겠다 싶어서 포트와인 소스다. 영국이나 프랑스 왕실에서라면 거들떠도 안 볼 포트와인이지만 오크의 향이 깊게 배어든 이 술로 역시 향이 강렬한 마늘과 양파를 써서 만든 소스는 선원들의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동시에 흰살 생선의 무미함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바다생선요리란 흔하지도 않지만 결국 팬에 프라이하거나 불에 굽는 것이 다라서 좀 밋밋한 것도 사실이다. 소금으로 밑간을 해서 물기를 빼고 와인소스에 하룻밤 정도 재었다가 겉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물기가 촉촉할 정도로 구워내는 것이 나의 장기다. 


사실 파리 같은 곳에서는 생선이 들어오면 일단 소금에 절인 것이라고 봐야한다. 생선요리는 뭐니뭐니해도 마르세이유 같은 남부 도시들이라는 평판이 도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파리에서 신선한 생선 같은 것은 국왕폐하라도 보기 힘든 것인데 가장 가까운 바다로부터 마차로 하루 정도는 꼬박 달려야하는 길이니 어쩔 수 없다. 


생선을 와인소스에 굽거나 끓이는 것은 예전부터 있던 방식이지만 하루 정도 재워둔다는 것은 내가 알기로는 내가 개발한 방법이다. 일단 소금간으로 생선살의 물기를 빼고나면 밤 사이에 와인과 향신료의 향기로운 소스가 자연스레 배어들게 된다.


실은 바다에서 잡는 물고기들이야 날로 먹어도(당신이 파리지엥이라면 기겁을 할지 모르지만) 될 정도지만, 보급품이 넉넉히 남은 김에 선원들에게 호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이렇게 특식을 만드는 날이면 콜드웰 선장은 나와 같이 식사하기를 특히 즐겼다. 맛있는 것 먹으면서 맛난 것 이야기 하는 것이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다.


“뻬뺑씨, 요리사란 참 대단한 사람들이오. 늘 오가는 항로에서 건저올리는 익숙한 물고기들과 늘 싣고 다니는 보급품으로 이런 요리를 만들 수 있다니, 이건 기적이라고 할 밖엔. 원래 주방장인 페드로도 상선 요리사로는 제법 솜씨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군요.”


칭찬인 줄은 알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고귀한 신분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들도 나의 솜씨에 기대지 않고는 뽐내고 즐기며 살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 국왕과 영국 왕세자의 요리사라는 것이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 나 오귀스뜨 뻬뻥의 요리솜씨야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말만은 공손히 감사를 표했다.


“과찬이십니다. 페드로도 훌륭한 요리사입니다. 단지 경험이 좀 부족할 뿐··· ”

“하하, 미안해요. 페드로와 뻬뺑씨를 비교하다니 내가 큰 실례를 해버렸군.”


입으로만 공손하고 속으론 뭐야.. 하는 심정이 들통이 났나보다. 콜드웰 선장은 죽고 사는 전장도 여러 번 겪었고 거액의 거래도 수없이 치른 사람이다보니 사람들의 마음을 손안에 놓고 보는 느낌이다.


“아닙니다. 실례라뇨. 페드로도 왕실에서 요리를 배웠다면 지금보다 훨씬 요리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저는 이렇게 배를 타고 바다에 있으며 배우게 된 것도 많습니다.”

“음, 그래요. 사실 왕실 주방에 있다보면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왕실요리사들은 이렇게 먼 바다에 나와볼 기회는 없을 테니까요. 여기서도 당연히 배울 게 있겠지요. 그러니까 결국 사람은 서있는 자리가 중요한 거겠지요. 특히나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새로운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네 이렇게 배에 실려서 아메리카로 실려가는 것도 어찌보면 좋은 배움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콜드웰 선장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마음이 복잡한 것을 알듯이.


“그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할 때일 거요. 참, 그리고 이건 내 부탁이기도 한데, 마데이라에서 보급품을 챙길 때는 뭐든 식재료는 원하는대로 준비하도록 하시오. 기록적인 순항이라 선원들의 급료도 적게 들어가기도 하고, 배의 주방이야 누추한대로 어쩔 길 없으니 식재료라도 사서 마음껏 솜씨를 발휘해보도록 해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선원들도 기뻐할 겁니다.”


나로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제안이었다. 온갖 근심걱정을 잊을 방법은 결국 요리밖에 없는 상황이다. 궁정요리사의 눈으로 보면 사실 바다에서 갖 낚아올린 신선한 생선 말고는 전부 마음에 안 드는 것들 투성이였는데, 좋은 식재료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궁정요리사님의 성에는 어쨌든 안 차겠지만, 내 재량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 하도록 하지요. 그나저나···. 오귀스뜨씨, 궁정요리사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요? 그런 게 궁금해지기 시작하네요.”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렀다. 이제는 은인이자 어른으로서 존경하게 된 콜드웰 선장앞에서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하게 될 모양이다.


“궁정요리사, 혹은 궁정의 무엇이라고 해도 일단 고용인들은 하인의 신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느 귀족집의 하인들이나 다름이 없이 평범한, 혹은 비천한 출신들이 먹고살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이지요.”

“흠, 그래도 왕실에서 일을 한다면 뭔가 좀 다른 면이 있지 않겠소? 신분도 확실해야 할 것 같고, 아무래도 귀한 분들을 신변에서 모시는 사람이니까.”

“네. 아무래도 궁중의 일을 책임지는 귀족분들의 하인들이 따라들어오거나 혹은 궁중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의 자녀들이 일을 이어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인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궁중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렇담 오귀스뜨씨도 어느 지체있는 집안의 하인 출신이요? 혹은 선대부터 궁중에서 일을 했던 집안이신가?”


이제부터가 내가 별로 이야기하기를 즐기지는 않는 부분이다. 출생도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인식이나 시선이란 것도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 아예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니까. 하지만 콜드웰 선장에게만은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분이 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기분마저 든다.


“그게 실은··· 저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본래 저는 파리 마레구역의 빈민가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요.”

“아, 마레구역···.”


마레구역이라는 말을 듣자 콜드웰 선장의 눈썹이 가볍게 모여솟았다. 파리를 어느 정도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레구역만은 알고 있는 것이리라. 그만큼 파리의 홍등가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저희 어머니는··· 어머니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인지 몸이 건강한 편도 아니었고요. 어려서부터 저에게 별로 살갑게 잘해준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잘해주고 싶어도 그럴 형편도 못 되었던 것같고···. 어머니는 항상 우울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라는 게 제 기억입니다.”

“···.”


아마도 쿨드웰 선장에게도 이 이야기는 좀 뜻밖이었을 것이다. 적당히 말을 둘러댄데도 검증할 길도,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어쩐지 선장에게만은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다. 선장의 아버지가 사략선장 출신인 것을 먼저 터놓은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하긴, 사략선장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끄러운 직업은 아니지만.


“파리의 사창가에서 자라다보니 제법 똘똘하고 영리한, 조숙한 아이가 되었달까요.”


답답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어색해 내 입으로 내뱉어 버렸다. 사!창!가! 그렇다 우리 어머니는 창녀고 그게 내가 아버지를 모르는 이유다.




내 나이가 열 살이 좀 넘었을 때다. 팔에는 제법 힘이 붙고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두루 하며 자라서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일꾼이 되어있었다. 너무 어린 것 아니냐고? 이 정도 나이면 하층민의 아이들은 알아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구걸을 하든 말이다. 선원이 되는 것도 비슷해서 열 서너살이면 배를 타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건 생활고에 쫓기는 집 아이들뿐 아니라 선장집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어쨌든 생활전선에 뛰어든 나는 내 또래 아이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다 아이들보다 잘 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몸, 빠른 손과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는 혹시 귀족 나부랑이였을까요? 저에겐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도 화려함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번쩍이는 보석, 비단과 금실 레이스의 옷들, 늠름한 말들, 이런 것들이 어릴 적부터 저를 사로잡았었지요. 사창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꼬마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것들이었지요. 어쩌면 어머니는 그래서 저에게 더 냉담하게 대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손에 넣지도 못할 것들을 탐내는 것 때문에.”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겠군요.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꿈꾸면서 상처받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을테니까. 그리고, 아이의 꿈이 좌절되면 그건 부모에게도 상처가 되니까, 어머니 자신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고요.”

“아마도 어느 귀족의 달콤한 말을 믿었다가 배신당해서였을까요? 결혼을 하겠다거나 혹은 평생 후원자가 되주겠다거나 하는 말을 속삭이는 남자들은 많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콜드웰 선장이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란 사람도 철이 없어도 이만저만이지. 세상에 어떤 귀족이 미쳤다고 거리의 여자를 데려간단 말인가. 


그야 어쨌든. 


“골목대장 꼬마에게는 무서운 게 없을 때죠. 막연히 제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인생이란 모르는 것이, 결국 왕실에서 제법 화려한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또 이렇게 앞길을 모르는 생활이지만.”

“앞으론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요. 우리 아버지도 피부색만 빼면 노예와 다를 것도 없는 인생에서 번듯한 선장이 되었으니까.”

“네 그렇지요. 아메리카는 기회의 땅이라니, 이제 저에게도 더 큰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처음으로 진정 긍정적인 기운이 마음속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래, 어쩌면 지금까지도 말도 안 되는 소망을 이루고 살아온 것이니까.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러니까,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합니다.”


어느 맑은 봄날, 그날따라 파리를 방문하신 루이14세 폐하의 행렬을 보았다. 태양왕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의 루이왕께서는 유럽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군주였으며 또한 그 사실을 표현하는 데 인색함이 없으셨다. 


황금마차와 네 마리의 티도 없는 백마, 역시 금실과 비단의 제복을 입고 번쩍이는 칼과 창을 들고 말에 올라 호위하는 근위대,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남녀하인들의 모습을 보고는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길로 계획도 없이 그 행렬을 따라서 베르사이유까지 간 거지요. 4륜마차와 말 탄 근위대들이야 천천히 가도 서너 시간 길이지만 아직 턱수염도 안 난 아이에게는 꼬박 한나절을 걸어야 하는 길이었어요.” 

“아니, 어머니나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무 준비도 없이 그 먼길을?”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생각이었나 싶은, 그런 일이지요. 그래서 운명이라는 건가 봅니다.”


콜드웰 선장이 호기심이 동한다는 듯 의자를 당겨 앉으며 물었다.


“그래, 베르사에유에 도착한 후로는 어떻게 되었소? 그길로 궁에 들어가게 된 거요? 요리사로?”

“아이고 그때까지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이 갔지만 그렇게 야무진 꿈이 있었으면 아마 더 힘들었을 겁니다. 거지꼴을 하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누가 궁에서 받아준답니까.”

“그렇겠지, 그럴 거야···.”


콜드웰 선장은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일이라 그리 안타까울 것도 없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지금 내 신세가 그렇게 혀를 차게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느낌이 들어 다시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파리에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일단 베르사이유 궁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난 후로는 반드시 저 궁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어요. 그래서 일단 베르사이유에서 일자리를 구했지요. 뭐 그다지 어렵진 않았습니다.”


궁이라고 하면 몇 길 담으로 둘러쌓인 곳이라는 인상이지만 베르사이유궁은 오히려 개방된 공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물론 왕께서 계시는 본궁이야 출입이 삼엄히 통제되었지만 궁전의 정원이나 운하, 분수 같은 곳은 평소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따지고보면 거대한 베르사이유 궁의 후원으로 다시 트리아농을 만든 것은 역시 왕실의 사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냥 기존 공간을 폐쇄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베르사이유궁은 원래가 사람들에게 왕실의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 지어진 파빌리온 같은 곳이다. 루이14세 폐하는 사람들에게 화려한 왕실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즐기는 것을 넘어 사명으로 느끼셨다. 


사람들에게도 화려한 왕실은 강력한 국가의 상징이자 대리만족의 출구였다. 특히나 전쟁에서 승승장구해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프랑스를 이루던 시절에는 평민들도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 열광했다. 외국 사절들에게는 부러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었고. 


왕실의 화려한 연회가 통치를 위해 중요한 이벤트임은 이미 강조했다. 애초에 베르사이유궁은 연회뿐 아니라 왕실의 일상생활을 온 세상에 널리 보임으로써 프랑스 왕국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무대로서 고안된 것이다. 그러니 돈을 아낌없이 써서 화려하고 장중하게, 그것이 루이 14세 폐하의 방침이셨고 그대로 바로크의 정신인 것이다. 


'아낌없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데 쓰는 비용은 전쟁비용에 비하면 얼마되지도 않는 수준이다. 전쟁이란 이기면 영토로든, 금전으로든, 영향력으로든 어떻게든 보상을 받는 데 비해서, 지면 상대방의 비용을 이자까지 몇 곱으로 쳐서 다 물어줘야 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루이 15세 폐하의 치세에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루이 14세 폐하의 치세 말기부터는, 이 도박에 지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서 왕실의 화려한 생활까지 비난을 받는 것일 뿐이다. 


아,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일, 부르주아 출신의 그 여자, 마담 드 퐁파두르가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돈을 물 쓰듯이 써버리는 것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사람들은 같은 돈을 써도 왕족이 쓰는 것에는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부르주아 출신의 여후작이 쓰는 돈에는 오히려 질시를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해서 뽕빠두르 여후작이 쓰는 돈의 대부분은 루이 15세 폐하를 위해 쓰는 것들이 많았다. 계속 이어진 전쟁비용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정도다. 부르주아 출신이라서 괜한 비난을 받는 것이다. 출신에 의해 할 수 있는 일, 허용되는 일이 달라진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특히나 베르사이유궁의 역할에 대해서 잘 생각해본다 마담 뽕빠두르의 사치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젠장, 바닷바람이 많이 더운가보다. 내가 그 요녀의 두둔을 하고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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