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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rego Jun 26. 2019

직장의 기술 : 술보다 처세술

회사에서 말하기, 듣기, 쓰기

  한국 회사는 술자리가 참 많다. 여기서 술은 집단의 연대를 위한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다. 인간관계의 윤활제이며 실수나 오버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면죄부다. 유교적 전통이 갈라놓은 위와 아래, 갑과 을의 경계를 완화하는 화학적 매개다. 위와 아래는 위아래 없이 섞이고, 갑과 을은 병으로 하나된다.


  상사, 동료, 선후배, 고객사, 협력사 등 술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다. 소주가 맥주 품에 안기고 거품이 올라오면 기분도 오른다. 복잡한 생각과 복작한 감정이 부딪히는 술잔에 부서지고 돌아가는 술잔에 풀어진다. 기분 좋게 잔을 들어 위를 적신다. 친절한 호의에 잔은 마를 새가 없다. 내일 눈 뜨면 우린 더 친한 사이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사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회는 술에 참 관대하다. 술과 담배는 자신을 죽이고 타인도 죽인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술 마실 권리는 담배 피울 권리에 한참 앞선다. 규제의 강도부터가 다르다. 절주와 금연에 사용되는 정부의 연간 예산은 각각 14억원, 1400억원으로 술에 대한 규제가 100배나 낮다.


  덕분에 흡연율은 줄지만, 음주율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흡연은 웬만한 건물이나 공원에서 어림없는 반면, 음주는 웬만한 공공건물이나 국립공원만 아니면 상관없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술 먹으라고 회식비까지 나온다. 그러니 의사가 약 먹을 때 술 끊으라고 하면 약을 끊는다. 주량이 자랑거리고 인정받는 재미난 사회다.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술에 관대하다


  술의 순기능 이면에는 역기능도 분명하다. 인사팀에 접수되는 사건·사고의 대부분은 술과 함께 찾아온다. 불법접대, 고성방가, 음주운전, 폭언, 폭행, 성희롱 등 커리어를 송두리째 말아먹을 치명타가 술로부터 시작된다. 술자리는 실수를 용인하지만 인용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잘못 회자되면 약점이 된다. 술마시며 관광하다 역관광 당한다. 실제로 그렇게 잡혀 징계를 받거나 집에 간 임원과 임직원이 여럿이다. 술로 망하는 건 연예인, 스포츠 선수뿐만이 아니다.


  술은 중추신경계를 둔화시켜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에 장애를 일으킨다. 나사를 술술 풀어버린다. 말이 많아지고 행동이 대범해지는 것도 이성이라는 절제의 빗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한술 더 뜨면 내면에 숨어있던 제 2의 자아가 깨어나 실수하기도 한다. 그런데 술 취해 저지른 잘못을 술이 깬 내가 사과하는 것은 모순이다. 술 취한 내가 해야 제대로 된 사과다. 술 취해 저지른 죗값도 술 취한 자아가 치르는 것이 맞지만 몸뚱이는 하나라 빼박캔트다.


  나는 선천적으로 술이 약하다. 맥주 한 모금에도 온 몸이 새빨갛게 변해버린다. 발바닥까지 빨개지는데 나도 놀랐다. 이런 알코올 홍조 반응은 체내에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를 거쳐 인체에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분해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아세트알데히드로 체내에 축적되면서 야기되는 부작용이다.


  으레 메스꺼움과 구토, 어지러움과 두통을 동반한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아 계단에 주저앉아 필름 끊긴 적이 몇 번 있다. 눈을 떠보면 황천길 터치다운하고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 하고 온 기분이다. 화장실에서 한바탕 오바이트 하고 나면 얼굴은 하얗게 돌아오지만 괜찮아진 게 아니라 질려버린 거다. 이 때부터는 눈이 감기고 기억도 잠긴다. 그렇게 눈앞에서 헤드뱅잉하는 나를 주당들은 이해 못한다. 결국 앉은뱅이와 절름발이가 되어 간신히 집에 돌아온다.


술이 약한 것은 선천적으로 분해효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얄팍한 주량과 천박한 보호색 때문에 입사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한국 회사는 술 마시는 게 중허다는데 혹시 술 못한다고 밉보이거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지. 내가 주인공인 환영 회식은 그야말로 부담 백배였다. 피부가 뽀얀 팀장님은 이슬만 먹어 그렇다는데 알고보니 그게 ‘참이슬’ 이었다. 영업 잘하는 부장님은 초지일관을 강조하셨는데 알고보니 ‘처음처럼’ 이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식당 아주머니께서 “소주로 드릴까요? 맥주로 드릴까요?” 하시는데 “야구 배트로 맞을래? 쇠 파이프로 맞을래?” 처럼 들렸다.


  술은 첫 잔만 마셔도 오늘 걸어 들어갈지 기어 들어갈지를 알 수 있다. 첫 잔이 식도를 넘어가면서부터 온몸이 활화산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났다. 진작에 여명 808 을 들이켰지만 심장은 808 베이스처럼 울려댔다. 그냥 이대로 사람들에게 한잔씩 받으며 죽어가겠지 체념하며 도축장 소처럼 처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같이 함께한 첫 잔 이후 아무도 술을 강권하지 않았고, 그 상태 그대로 살아나올 수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세상이 바뀌었다. 현진건 작가가 말하던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다. 기업들은 앞다퉈 음주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112’ 라는 절주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112’ 는 1가지 술로 1차에서 2시간 이내 끝낸다는 뜻이다. 벌주, 원샷, 사발주는 3대 악습으로 금지다. 또한 술로 인한 사건·사고는 당사자뿐 아니라 부서장도 책임을 져야 하기에 부서장이 먼저 술 줄이고 숨 죽인다. 술자리를 파한 후에도 임직원 귀가여부를 메신저 통해 일일이 체크한다.


  포스코는 ‘222’ 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반 잔만 (1/2) 따르고 2잔이상 권하지 않으며 2시간 이내 마무리하는 규칙을 실천한다. 이 밖에도 SK, LG, CJ 등 많은 기업들이 절주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주류회사인 오비맥주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회식은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뷔페 형태의 자유로운 식사로 진행하거나 뮤지컬 관람, 야구장 직관, 바리스타 체험 등 문화생활로 대체되기도 한다.


대기업들의 절주 캠페인 (삼성전자 112, 포스코 222)


  이제 술보다 처세술이다. 관계를 도모하고 업무를 해내는데 술의 도수보다 처세술의 입김이 세졌다. 오히려 처세술을 못하면 얼굴이 더 빨개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처세술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술보다 가까이 있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능수능란한 처세술은 회사생활의 무기다. 별다른 직무능력 없이도 오래도록 살아남는 무병장수 베테랑들의 처세술은 가히 예술이다. 음해하는 세력에게 양해를 구하고, 음지에 놓인 상사의 마음을 양지로 끌어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업무능력을 보좌하고 결정적인 순간 치명적인 처세술 3가지 말하기, 듣기, 쓰기에 대해 알아보겠다. 초등학생 때 한 번 배웠지만 어른이 된 지금 회사원 버전으로 다시 한번 짚어보자. Act 라기 보다 Tact 에 가까운 기지다.


  첫째로 ‘만족은 강하게, 불만은 약하게’ 말하기다. 회사생활에 의사표현은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따위 없다. 알아도 모른 채 하는 마당에 말해야 아는 척이라도 해준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그런 줄 안다. 다만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강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만족은 다수에게 강하게 표출하고, 불만은 소수에게 약하게 표현하는 것이 현명하다 (많이들 반대로 하고 있다). 나는 회사에서 이미지로 존재한다. 내가 아는 내 본연의 모습과 회사가 알고 있는 내 모습은 다른 경우가 많다. 내가 보여주는 만큼 그들은 보게 된다. 나는 그렇게 이미지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런 이미지 메이킹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Yes 가 대변하는 만족의 표현들은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를, No 로 항변하는 불만의 표현들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한 번 형성된 이미지는 구전으로 널리 퍼지고 편견으로 오래 박히기 때문에 빼박이다. 그래서 ‘좋아요’, ‘최고에요’, ‘훌륭해요’ 등 만족을 표현하는 호감의 어휘는 마음껏 발산하고, ‘싫어요’, ‘죽겠어요’, ‘그지 같아요’ 등 그 반대는 의식적으로 삼가는 처신이 필요하다. ‘때려 칠 거야’ 무심코 던진 신세한탄이 신세를 망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최근 맡고 있는 업무가 많아져 사내에서 함께 일할 팀원을 차출할 기회가 생겼다. 물망에 오른 후보들 이름을 듣는데 단박에 그 사람에 대한 색깔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호불호가 갈리더라. 신기한 일이다. 그 색깔은 평소 그가 했던 말로부터 형성된 이미지의 아우라였다. 매사에 불만을 토로하고 맨탈이 부정적이었던 사람은 어두운 색이 떠오르며 자연스럽게 후보에서 멀어져 갔다. 반면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회사생활이 만족스러워 보였던 사람에게는 밝은 색이 떠올랐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 후자를 선택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만족은 강하게, 불만은 약하게 말하기


  둘째는 ‘겉으로 공감하고, 속으로 기억하며’ 듣기다. 입은 하나지만 귀가 둘인 이유는 듣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입을 열기 전에 귀를 먼저 여는 것이 기본이다. 혀를 살찌우고 귀는 다이어트다. 잘 듣고 공감하는 사람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이고 정보가 집결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리더십이란 듣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반면에 말을 끊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지껄이는 사람은 기피대상이다. 밥맛도 없고 뭔가 알려주고 싶지도 않다. 때문에 그런 사람 주변에는 사람과 정보가 사라지고 고립만 남게 된다.


  다만 듣기란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쉽지 않은 감정노동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무관하게 공감하며 받아야 한다. 콜센터 직원의 고충이랄까 (콜센터 한 달만 근무하면 웬만한 정신병자는 다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재미없는 얘기를 한참 들어주며 교감하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자랑질과 하소연에 감정선을 따라가며 장단을 맞춰야 한다.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 적절한 추임새와 살신성인 리액션도 곁들여야 하니 이건 또 다른 업무다.


  애초에 회사업무의 일환이자 연장선이라 생각하는 편이 낫다. 넉살과 비위가 좋다면 확실히 유리하다. 유들유들하고 미끈미끈하게 잘 받아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상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듣기는 처세술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잘해두면 상사의 귀염둥이가 되어 언젠가 쓸데 있는 한 방이 된다.

  

  이 때 약간의 팁이 있다면 은근히 기억하며 듣기다. 업무 외적인 얘기는 잡담으로 가볍게 넘기기 쉽지만 디테일을 몇 개 기억해두면 용이하다. 상대가 ‘어?’ 할 수 있는 뜻밖의 반전을 줄 수 있으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상대의 생일, 취미, 자녀의 이름과 특장점 등을 기억해두면 좋다. 나는 그런 정보들을 알게 됐을 때 핸드폰 달력이나 메모장에 살짝 기록해두곤 한다. 생일날 구두로라도 먼저 축하해주고, 취미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며,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으면 좋아하고 또 고마워한다. 물론 얘기가 평소보다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겉으로 공감하고, 속으로 기억하며 듣기


  셋째로 ‘내용은 간결하게, 형식은 깔끔하게’ 쓰기다. 회사에서 이메일은 굉장히 빈번하게 쓰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사내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동료, 상사, 고객 등과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메일을 읽다 보면 타피오카 펄처럼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명확한 메일이 있는 반면, 언어영역 지문처럼 혼란스럽고 난해한 메일도 많다. 자연스럽게 메일 쓴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그 느낌을 따라간다. 다시 말해 메일이 짜증나면 글쓴이도 짜증난다.


  쓰기는 장황하면 쓰레기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요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빽빽하게 적힌 메일이 화면에 뜨면 일단 눈은 도망치고 싶다. 줄바꿈도 없이 줄줄이 이어지는 문자들의 시베리아 횡단에 피로가 몰려온다. 분명히 한국어인데 독해가 불가하다. 추리소설 같은 문장들이 현기증 나게 흥미롭다.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집어던진 무책임한 글이다. 어떤 내용을 찾으러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면 인내와의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대신 문단을 나누거나 글머리 기호를 사용해 항목별로 써주면 훨씬 정돈된다. 반복된 단어와 부연설명을 과감히 지우면 핵심이 더욱 드러난다. 그림은 글자보다 직관적이기에 표와 이미지로 글을 대체할 수 있다면 언제나 강추다. 중요한 단어나 문장은 밑줄을 긋거나 색을 입힐 수 있다. 예를 들어 좋은 내용은 파란색, 나쁜 내용은 빨간색으로. 그림판이 되지 않도록 색깔은 한두 가지로 제한하는 편이 낫다.


  한편 오타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만큼 주의를 요한다. 생각 없이 날린 오발탄은 참사를 부른다. ‘부장님’ 을 ‘부장니미’ 로, ‘조직변동’ 을 ‘조직병동’ 으로, ‘여쭐 게 있습니다’ 를 ‘엿줄 게 있습니다’ 로 쓰지는 않았는지. 띄어쓰기도 띄엄띄엄 봤다간 큰일난다. ‘무지개 같은’ 을 ‘무지 개같은’ 으로, ‘우리 가족같이’ 를 ‘우리가 족같이’ 로, ‘OOO씨 발상’ 을 ‘OOO 씨발상’ 으로 쓰지는 않았는지. 설렌다는 반존대나 존대반말도 회사에서는 쓰는 게 아니다.


  맞춤법 빌런은 명백한 비호감이다. 두 번 이상 퇴고하며 살피자. 발신 메일에 1분 후 예약발송을 걸어두고 1분 동안 되돌릴 여지를 남기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담금질과 퇴고 작업을 통해 메일이 바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면 소통은 원활하고 업무는 수월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반문과 반목도 없다. 나의 이미지도 메일처럼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하게 각인된다.


내용은 간결하게, 형식은 깔끔하게 쓰기


  지금까지 직장생활의 처세술 3가지 말하기, 듣기, 쓰기에 대해 알아봤다. 회사생활은 술보다 처세술이다. 술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거나, 술을 잘해야 출세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술과 주정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처세술은 얼마든지 있다. 기본적인 말하기, 듣기, 쓰기로도 그것이 가능하니 슬기로운 회사생활을 위해 한번 실천해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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