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terego Jul 03. 2019

직장의 기준 : Job 보다 Career

낭비되지 않는 열정을 위하여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머리에 전원버튼을 눌러 뇌를 가동시킨다. 뇌혈이 돌아가며 어제의 잔상이 사라지고 오늘의 영상이 로딩된다. 이불 속에서 무거운 몸뚱이를 끄집어내 세면대 앞에 세우고 몰골을 확인한다. 간밤의 회식으로 부은 얼굴과 만성피로로 확장된 다크써클은 이제 그러던지 말던지.


  칫솔을 물고 변기 앞에 서서 발효된 오줌통을 비운다. 어제 마신 술 냄새가 고약하게 올라온다. 뒷목은 뻐근하고 어깨에 뭉친 근육은 무겁다. 구부정히 양치식물처럼 서서 양치하며 오늘 그냥 쉴까 말까를 우물거린다. 이내 솔까 부질없음을 깨닫고 퉤 뱉는다. 빨리 회사나 가야지.


  아침시간은 참 빠르다. 육군훈련소 아침과는 딴판이다. 체감시간이란 그 시간에 담긴 아쉬움이 빠르기를 결정한다. 훈련소에서는 아침에 점호하고 체조하고 구보하고 똥때리고 별 짓을 다 해도 시간이 가질 않았는데. 직장인의 아침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날아간다.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개운하고 고요하면 십중팔구 지각이다. 집에서 꾸물거리다 5분 늦은 출발은 30분 늦은 도착이라 서둘러야 한다. 정신없이 서두르다 양말 입고 팬티 신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출근길 상황은 귀성길 서울 톨게이트처럼 시시각각 급변한다.


직장인의 아침시간은 참 빠르다


  출근시간 지하철은 아침부터 클럽이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이 붙어서서 김백찬 작곡의 환승곡 <얼씨구야> 에 맞춰 흔들흔들한다. 서로가 뿜어내는 체취와 이산화탄소에 정신줄은 간당간당하다. 역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산소를 주입받으며 가쁜 호흡을 이어간다.


  문 앞에서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오돌격형은 진상이고, 비좁은데 영역 표시하는 백팩커는 밉상이다. 옆자리에 쩍벌남이 앉으면 가운데를 걷어차고 싶다. 그 와중에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깨알같이 시간 활용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통화소리에 감정 이입해 그 쪽 집안사정 듣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다.


  역에 도착하면 모두 개찰구 터치다운을 위해 우르르 몰려간다. 개미굴 같은 지하도를 따라 앞사람 뒤통수와 엉덩이를 보며 부지런히 이동한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이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하이힐 신고 임팔라처럼 뛰어가는 아가씨는 지각이고, 어깨뽕으로 어깨빵 날리는 아저씨는 몰지각이다.


  아침은 밥보다 잠이지만 잠은 이미 글렀으니 밥이라도 챙겨먹어야. 출구에서 할머니가 파는 김밥을 사가거나,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빠르게 흡입하는 장면은 흔한 출근길 풍경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은 만만치 않다


  직장인은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며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임금근로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5000만 대한민국 국민 중 2800만이 경제활동인구이며 그 중 1500만이 직장인이다. 다시 말해 일할 수 있는 사람 중 50% 이상이 직장인이다.


  직장인 중에는 하릴없이 할 일 없는 월급루팡도 있지만 대부분 성실하게 고용주 의뢰를 처리하는 사축홈즈다. 햇빛 결핍으로 비타민 D 가 부족하고, 운동부족으로 몸매가 D 에 수렴하는 20~50 대다. 인간이 직장에 다니는 한 D 의 의지는 계속된다.


  건강을 버려가며 돈을 벌고, 나중에 그 돈으로 건강을 되찾으려 한다. 제로섬이나 등가교환은 아니기를 바라며. 돈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 팔아 돈 버는 것임을 깨닫는다.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쯤. 사회구조적으로는 대한민국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의 성실재원이며, 유리지갑이라 탈세도 못하는 세수의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라에서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슬픈 애국자다.


  그럼에도 직장인은 여전히 사회에 진출할 900만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택할 삶의 유형이다. 얼마 전 한 취업포탈 업체에서 대학생 990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의 로망’ 을 설문조사 한 적이 있다. 대학생들이 선정한 선망의 1위는 사원증 걸고 다니기 (46.3%), 2위는 해외 및 국내 출장 가기 (43.4%) 였다.


  반쯤 걷어 올린 셔츠소매와 말끔히 다려진 정장바지, 한 손에 든 서류가방과 다른 한 손의 커피. 이 모든 오피스 룩의 완성은 목에 걸린 사원증이다. 출장을 나갈 때도 깔끔하게 빼입고 안주머니에 명함을 꽂은 채 한 손에는 캐리어 가방,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출국 게이트로 향한다. 회사를 대표해 일선에 나서 멋지게 처리하는 업무와 회사 지원으로 누리는 항공, 호텔 혜택은 충분히 낭만적으로 보인다.


직장생활 로망 1위는 사원증, 2위는 출장


  자, 이제 현실은 어떨까? 사원증에 대한 로망은 그 무게를 알기 전까지다. 소유라는 행위는 그 대상의 의미와 가치를 바꿔놓는다. 사원증은 그것을 이미 소유한 직장인에게 회사 밖에서 가장 먼저 제거하고픈 심리적 족쇄다. 퇴근하고도 목에 걸려있으면 목이 멘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 게이트에서 사원증 카드를 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자괴감마저 든다. 사내에서는 보안출입을 위한 본래의 목적 외에도 근태, 식사체크, 위치추적 등 전자발찌 같은 관리 수단이다.


  입사 초기 자긍심과 회사부심은 빛 바랜 사진만큼이나 시간의 흐름에 씻겨져 있다. 혹시 길거리에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웃으며 걸어가는 직장인이 부럽다면 오해다. 우리는 그냥 밖에 나와서 기분이 좋은 거다.


  출장은 그 성격에 따라 케바케지만 웃음보다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많다. 회사가 예산을 들여 내보내는 출장인데 응당 그에 합당한 책임이 부과된다. 최악의 경우 문제해결을 위한 인질이나 볼모로 보내지는 경우도 있으니. 소위 죽탱이 맞으러 간다고 한다. 그런 출장은 인천 근처만 가도 공황장애가 온다.


  기내에서 우리가 한가롭게 영화나 보며 와인이나 들이키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는 비행기는 출장준비를 위한 스터디룸이고, 오는 비행기는 출장보고를 위한 오피스룸이다. 언제 어디서든 본사와 연락하며 일할 수 있도록 핸드폰은 켜놓고 노트북은 핸드캐리다. 낮에는 출장업무, 밤에는 쌓인 메일들 처리하느라 새벽에 타이핑 하다 쓰러지고 다음날 숨쉰 채 발견된다.


사원증과 출장에 대한 로망은 현실과 차이가 있다


  어차피 다니는 직장이 좀 더 의미가 있으려면 그 생활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직장이 나의 Job 인지 Career 인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Job 과 Career 는 확실히 다르다. Job 은 임금의 대가로 고용주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고, Career 는 임금을 받으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Job 은 Owner 에게 일을 받아 처리하고 그에 따른 시간을 돈으로 교환한다. Career 는 스스로 Ownership 을 갖고 일을 찾아 추진하며 그에 따른 성과를 보수로 환산한다.


  Job 이 수동적인 고정 마인드셋이라면 Career 는 진취적인 성장 마인드셋이다. Job 은 바뀌고 Career 는 쌓인다. 우리는 Job search 가 아닌 Career development 를 통해 성장하고 인생의 목표에 다가간다. Career 는 연속성이 있는 하나의 스토리다.


  Job 일의 특징은 하루가 길고 시간이 가지 않는데 있다. 시계와 핸드폰을 빈번히 쳐다보고, 화장실과 휴게실에 자주 들락거리며, 점심시간과 퇴근시간만 기다려진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정을 쏟을 근거가 부족하고 주어진 이상으로 일하는 것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적당히 시간 채우고 시급이나 월급을 챙겨가면 그만이다.


  이렇게 영혼 없는 일에 성과나 자기계발이 있을 리 만무하다. 1년 후 이력서에는 업데이트할 내용이 전무하다. 자기소개서에 ‘저는’ 두 글자 써놓고 이어갈 말이 없어 한참 고민하게 된다. 이직하고 싶은 자리가 생겨도 갈 수 없고, 권고사직 한 방이면 속절없이 집에 가야 한다.


Job 과 Career 는 확연히 구분된다


  반면 Career 쌓는 일의 특징은 하루가 모자라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데 있다. 느긋하게 커피 마시며 휴게실에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 전화가 울려대고 여기저기 찾아대 마음 편히 변기에 앉아있을 시간도 없다. 건강검진과 동원훈련은 미루기 바쁘고, 똥꼬 빠지는 직장에 항문외과 갈 시간도 없다. 하지만 나빠지는 것이 아닌 바빠지는 것은 얼마든지 괜찮다.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킬 도전을 논개처럼 껴안고 그 속으로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


  힘든 일도 나를 위한 일이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Career 쌓는 일에 노동법이 정한 1주일 52시간 근로 제약은 걸리적거린다. 이건 내 Career 지 노동이나 근로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사업에서 주목 받지 못하는 업무라도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면 괜찮다. 1년 후 이곳에서 인정받는 일이 아니어도, 10년 후 어디서든 인정받는 일이면 된다. 혹여 미래에 회사가 흔들바위처럼 흔들려도 나는 건재하다. 내 Career 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동안 이룬 성장이 기록지침이 되어 나를 더 나은 Career 로 이끌 것이다.


  한편 Career 였던 일도 정체와 권태로 Job 이 될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나는 1년에 두 번 상·하반기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지난 6개월을 돌아본다. 어떤 역량을 길렀고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직접 써본다. 그리고 앞으로 6개월 후에 쓰고 싶은 이력을 미리 작성해보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과 시뮬레이션은 목표를 시각화하고 현실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정기적인 이력서 업데이트는 Career 관리에 효과적이다


  지금 당신의 일이 Job 인지 Career 인지 잘 생각해보자. Job 에 가깝다면 빠르게 Career 로 넘어와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직장은 Career 를 기준으로 한. 열정은 올바른 Career 를 향해 있을 때 낭비되지 않는다. 여러분도 결국 Career 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의 기술 : 술보다 처세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