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terego Jul 16. 2019

직장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직장생활은 일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다. 직장인 스트레스 설문조사 1위는 항상 인간관계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될 것 같지만 시기와 질투가 다.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될 것 같지만 약점과 소문이 다. 뭉치면 괴롭고 흩어지면 외로운 인간관계는 늘 어렵다.


  직장에서 자세히 살필 것은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다 어떤 사람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팀을 옮겨 업무를 바꾸려는 후배에게 나는 업무보다 팀원을 먼저 살피라고 조언한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거지 같은 사람은 없는지, 이상한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마치 VC 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망한 아이템인지에 대한 판단보다 유능한 사람인지에 확신이 더 중요하다. 하물며 직장은 나를 투자하는 일인데 함께 일하는 사람이 중요치 않을 수 없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배워야 하듯, 훌륭한 직장생활도 훌륭한 사람과 함께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직장인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찰과 함께 좋은 사람은 따르고, 나쁜 사람은 쳐내며, 이상한 사람은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1. 좋은 사람


  나는 지금껏 영감을 주는 사람을 따라 커리어를 이어왔다. 회사선택과 업무변경에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었다. 배우고 싶은 상무님, 전무님, 부사장님을 따라 직무를 바꾸기도 했다. 롤모델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역사 속 영웅이나 책장 속 위인들은 너무 멀리 있다. 의식해야 인식되는 존재는 나를 바꾸지 못한다. 눈앞에 실재하는 일상적인 모형이야말로 나를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자극이다.


  하는 일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워렌 버핏과 함께하는 식사에 순대국이든 햄버거든 메뉴가 중요할 리 없다. 그렇게 개발, 마케팅, 영업까지 부서를 넘나들며 그분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 회의, 보고, 출장, 식사 등 공석과 사석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은 값을 매길 수 없이 큰 자산이다. 나의 성장은 그분들을 통해 급속히 이뤄졌다.


배울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면 환경은 그리 중요치 않다


  특히 영업 부서에 있을 때 부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Never Say No.” 고객을 대하는 기본 자세다. 어떠한 고객 요구에도 “Yes” 를 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방법을 찾으라고 강조하셨다. “결국 No 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너는 하지 마라. 내가 할 테니 나에게 설명해달라” 당부하셨다. 제가 어찌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Never Say No” 의 마음가짐은 나의 태도를 바꿔놓았다. 좀 더 고객 편에서 함께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행동을 변화시켰다. 쉽게 “No” 하고 끝낼 수 있는 대화도 다시 한번 생각하며 “Yes” 하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이어가게 됐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많은 경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아직도 나는 고객을 만나기 앞서 “Never Say No” 를 마음속에 되뇌고 미팅에 들어간다.


영업 부서에서 따르던 부사장님께 배운 고객을 대하는 자세


  좋은 상사만큼 좋은 동료도 중요하다. 내 일에 대한 열정은 동료로부터 나온다. 내일에 대한 기대도 팀원들로부터 나온다. “일은 내 옆의 동료를 보고 합니다” 라는 아주대 병원 이국종 교수님 말씀에 공감한다. 고과나 성과는 부수적이다. 의지가 있고 또 의지가 되는 동료들이 있어 오늘을 버틴다.


  계속되는 야근도 마음 맞는 동료와 함께면 한결 낫다. 간식으로 일일권장당을 보충하고 회사와 상사를 안주 삼아 버틸 수 있다. 뒷담화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역시 구린 인간이었음을 확인받으면 기분이 좀 낫다. 힘들 때 이야기 나눌 동료가 있다는 것은 힘이 된다.


  내가 저기압일 때는 함께 고기 앞으로 데려가 준다. 빙판 위의 김연아처럼 불판 위를 누비는 고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암처럼 퍼지던 기운이 조금은 항암된다. 전우애는 직장에서도 싹튼다. 웬만한 근심걱정은 그들과의 담배 한 모금에 날리고, 술 한 모금에 삼킬 수 있다.


저기압일 때는 함께 고기 앞으로, 어차피 인생은 고기서 고기.


2. 나쁜 사람


  좋은 상사가 마음을 산다면 나쁜 상사는 미움을 산다. 이들은 무지, 오만, 통, , 조롱 등 사람들이 싫어할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췄다. 센스가 넌센스에 매너는 개매너다. 어전회의와 취조심문을 일삼으며 안 좋은 감정과 험악한 분위기를 양산하고 전파하는 재앙의 진앙지다. 우리는 회사를 선택했지만 그 안의 사람들까지 선택할 수는 없었다. 이들을 매일 봐야 하는 고충의 대가가 월급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 앞길에 얼마든지 똥 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들이 나를 잘되게 하지는 못해도, 못되게 가로막을 수는 있다. 조직에서 나는 으레 상사를 통해 주변에 얘기된다. 때문에 자칫 상사에게 찍히면 억울한 오명과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 쓴다. 또한 회사생활에는 각종 시상, 어학 연수, 주재원 파견 등 상사의 추천이 필요한 기회가 많기에 밉보이면 무조건 손해다. 위에서 아래로만 꽂히는 한 방향 평가가 갖는 부작용이다. 프리더처럼 사악한 리더는 이런 비대칭 권력을 교묘히 활용한다.


나쁜 상사는 비대칭 권력을 악용하기에 위험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들의 갑을병정이 되어 감정의 쓰레기통, 역정의 쓰레받기, 분노의 샌드백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언제나 때린 사람은 기억 못하고 맞은 사람만 기억한다. 정신병원은 치료받아야 할 사람보다 그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로 붐빈다.


  가만히 있으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이해는 포기와 다를 바 없다. 용서는 강하다는 증거라기 보다 호구라는 증거다. 막말과 엄포로 설렜던 가슴과 밤늦은 전화로 두근거렸던 마음은 안정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로 생긴 흰머리와 원형탈모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를 지켜낼 대안이 있어야겠다.


  나쁜 상사 처방전은 다양하지만 내 경험에 의거한 조언은 진상 고객을 대하듯 하는 거다. 최대한 깔 수 없는 팩트로 간단명료하게 소통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야 사춘기 어린애 같은 반항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또 일대일 일기토 보다 노출된 공간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야 주변에 피해자와 피의자를 알리고 누가 악당이고 범인인지 공개해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


  이런 대응은 늘 이성적이고 침착해야 한다. 진상 고객은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상황을 이끌기 위해 입에 걸레와 거품을 물고 짖는다. 난리 부르스에 상하이 트위스트를 추며 내가 당황하거나 흥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한 귀로 흘리고 담아두지 않는다. 본연의 자아와 표면의 자아를 분리해 선을 긋고 업무적으로만 대응할 수 있으면 자존감은 상처받지 않는다.


나쁜 상사와는 선을 긋고 감정을 배제한 채 업무적으로만 대응한다


3. 이상한 사람


  직장이란 수많은 상수와 변수, 실수와 허수, 유리수와 무리수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함수다. 그 중에는 내가 알지 못하던 미지수도 있었다. 바다가 무서운 이유는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벌레가 무서운 이유는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지의 영역에 있는 이들은 경계의 대상이고 엮이고 싶지 않은 부류다.


  내가 던 이상한 형들은 크게 세 부류였다. 제 밥그릇만 챙기는 기회주의형, 일 죽어도 안 하려는 복지부동형, 무턱대고 싸지르는 막무가내형. 지금은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알게 됐기에 그들의 특징을 한번 정리해본다.


  기회주의형은 수십 년 짬밥과 내공을 바탕으로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하다.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어 미래를 예지하는 견문색 패기도 갖췄다. 바둑 9단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기회다 싶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럴싸한 구색으로 생색내며 이득을 챙겨간다. 세치혀로 드리블하는 실력이 리오넬 메시급이다.


  반면에 아니다 싶으면 일찌감치 뒤로 빠져 책임을 전가하고 사태를 방관한다. 공개석상에서 보란 듯이 반대편에 서서 “내 그럴 줄 알았어” 비아냥거리며 지적질이다. 혼내는 시어미보다 거드는 시누이가 더 싫다고 이불킥 차게 얄미운 존재다. 혹자는 직장생활 참 잘 하는 사람이라 두둔하기도 하지만.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는 기회주의형

  

  복지부동형은 어떻게 하면 일을 맡지 않을까 꼼수만 수만 가지다. 내 일은 없고 네 일만 있다. “제 일입니다.” 하는 일 없이 “쟤 일입니다.” 넘기려 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핑계를 찾아 헤맨다. 잔머리로 넘는 곡예가 태양의 서커스다. 말년 병장처럼 손이 있고 발이 있지만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 윗사람이 일을 주려고 하면 재빨리 나서 “그 일 이리 주십시오. 얘네가 하겠습니다” 한다. 덕분에 얘네는 죽을 맛이다.


  무사안일 쇄국주의에 철벽방어 골키퍼다. 캐치하는 일 없이 펀칭으로 처내기만 한다. 만에 하나 일을 맡게 되면 완료까지는 하세월. 전반부터 침대축구하며 드러눕는다. 의지박약에 의지바닥이다. 업무시간에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하루 세 번씩 커피 마시러 다녀오며, 퇴근하기 직전에 일 던지고 가는데 암 걸릴 지경이다. 10년 묵은 체증이 따로 없다.


의지박약에 침대축구하는 복지부동형


  막무가내형은 대책 없이 요구하기만 한다. 막가파처럼 일단 지르고 본다. 고객이나 윗사람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멋대로 해놓고 해결해달라고 찾아온다. 다짜고짜 “아 모르겠고 그냥 해줘”, “알아서 어떻게든 좀 해봐” 다. 설령 “나는 못하겠다” 하면 마치 나 때문에 일이 안되는 것처럼 동네방네 떠벌리고 책임을 전가한다.


  똥은 자기가 싸놓고 쇠똥구리처럼 굴려와 치워달라고 하니 대책이 없다. 수습은 안하고 계속 질러만 대니 똥은 다른 똥으로 덮이고 결국 치워야 할 똥이 산더미다. 추진력이 높다고도 할 수 있으나 회사를 위험으로 내모는 폭탄 돌리기는 이런 똥 같은 놈들로부터 시작된다.


다짜고짜 요구하기만 하는 막무가내형


  지금까지 살펴본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을 함께 는 주변 사람들이다. 오래 살면 부부처럼 닮아간다고 우리는 주변을 좋은 사람들로 채워야 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먼저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의 기준 : Job 보다 Care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