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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rego Aug 02. 2019

직장의 맛 : 돈맛, 조직맛

회사가 알려주는 그 맛

  미국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날 무렵 삼성에서 입사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한국x삼성의 조합에 대해서는 네거티브한 내러티브가 많아 주변의 만류가 적지 않았다. 특히 미국 회사에서 공들여 만들준 영주권도 반납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많이들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소신을 따라 제 발로 들어왔다. 마지막까지 섹시한 제안들춤을 추며 유혹했지만 과감히 프리킥을 날리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느덧 직장생활도 6년이 넘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직장의 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확실히 맛보는 가지는 돈맛과 조직맛이다. 처음에는 신박하맛깔날 수 있지만 그 맛에 익숙해지거나 길들여지면 위험하다. 사로잡히지 말고 사로잡아야 하는 맛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직장에서 맛볼 수 있는 두 가지는 돈맛과 조직맛이다


  우선 돈맛이다.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팩트에 마음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돈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회사에 다니는 근본적인 이유다.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가 솔직한 심정이다.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를 봐도 출퇴근의 목적은 60% 이상이 생계유지다. 구직자가 면접에서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연봉은 중요치 않습니다” 다. 이직자가 가장 많이 옮겨가는 이유는 '연봉에 대한 불만' 이다. 노사갈등과 파업의 대부분도 결국 임금협상이 쟁점이다.


  샐러리맨에게 샐러리는 중요하다. 매월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수입은 가계 운영의 기반이다.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안정적인 수입은 뭐라도 시작해볼 자산운용의 밑천이다. 매달 적금이라도 들고 간간이 로또라도 사볼 수 있다.


  물론 액수야 내 맘 같지가 않다. 연봉은 여의봉처럼 늘어나질 않는다. 매달 통장에 묻은 월급은 카드값으로 지워진다. 그래도 이번달의 나와 다음달의 내가 힘을 합치면 두렵지 않다. 해외여행도 가고, 부모님 선물도 사드리고, 기념일에 분위기도 내볼 수 있다.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대부분 돈 때문이다


  돈은 회사에 다니는 이유인 만큼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퇴사는 대안이 있을 때 얘기다. 회사 안이 전쟁터면 회사 밖은 지옥. 단수처럼 끊긴 월급은 심리적 충격이자 경제적 타격이다. 갑작스런 돈맥경화는 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당장 나갈 카드값은 어찌한단 말인가. 신나게 땡긴 대출은 또 어쩌고.


  회사에 가지 않으면 돈 쓸 일들뿐이다. 전기세와 수도세마저 걱정하게 된다. 젊어서 백수는 오래 못할 이다. 거리에 여유롭게 앉아있지 못하고 길거리에 위태롭게 나앉게 다. 회사에서 남들 똥 싸면서도 받아가는 돈을 나만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상대적 박탈감마저 든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한편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맛에 빠져서도 곤란하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주의하라는 뜻. 신입사원이 새 차를 뽑으면 안타깝다. 그 친구는 회사를 관두면 큰일나거든. 이제 아무리 회사가 그지 같아도 계속 다닐 수 밖에. 자본의 뽕맛에 취해 총명했던 토끼눈은 영혼 없는 도끼눈이 되어간다. 말랑카우처럼 쫄깃했던 머리는 고려은단처럼 딱딱히 굳어진다. 그렇게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 회사의 노예로 귀속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노예는 그 삶에 익숙해지면 자기 다리에 묶인 사슬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쇠사슬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무거운지를 뽐낸다. 심지어 쇠사슬에 묶여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을 잃은 채 노예임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돈으로부터 촉발되는 이런 셀프 노예화는 회사원이 쉽게 빠질 수 있기에 상시 주의해야 한다.


  돈맛을 보면 돈줄에 묶인다. 돈줄에 묶이면 주체적인 직장생활이 어렵다. 내가 돈을 벌어 가지 못하고 돈이 나를 털어 간다. 돈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 음미하되 탐닉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돈에 묶여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사슬을 끊어야 한다


  다음은 조직맛이다. 회사들은 저마다 내세우는 가치와 나름의 일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기업문화라고도 불리는 이런 조직의 행동양식과 업무패턴은 한 회사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다. 작게는 몇 명, 크게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조직이 어떻게 소통하고, 수익을 창출하고, 위기에 대응하고, 사회에 공헌하는지 그 실상을 알게 된다.


  한 회사가 진짜 중시하는 가치와 굴러가는 방식은 그 속에서 직접 경험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회사 소개자료에 쓰인 신뢰, 창의, 열정 등은 포장용 껍데기다. 밖에 외치는 구호나 언론에 비치는 이미지는 마케팅적 허상이다.


  귀에 듣기 좋은 가치를 내세우고 실제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기업사기 및 분식회계로 파산한 미국의 엔론 (Enron) 의 4가지 핵심가치에는 Integrity (정직) 가 포함된다. 자체기술 없이 허위매출로 폭망한 모뉴엘 (Moneual) 도 Technology Innovation (기술혁신) 을 핵심가치로 표방했었다.


직장생활을 통해 그 조직의 맛을 알게 된다


  회사가 진정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은 그 안에서 무엇이 보상받고 누가 인정받는지 (승진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세간에 알려진 삼성전자의 핵심가치 5가지는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다. 하지만 실제는 어떨까?


  안에서 체감하는 삼성전자의 핵심가치는 신상필벌이다.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 벌을 준다. 매년 발표되는 인사 때마다 이 원칙은 늘 강조되고 철저히 시행된다.


  회사 일에서 공이란 매출기여와 위상증대다. 신제품 개발이나 신시장 개척 등 매출을 증가시키고 브랜드 위상을 드높인 경우에는 틀림없이 화끈한 보상이 있어왔다. 서열보다 성과가 위다. 보통 객관적인 숫자와 지표로 나타나기에 학벌, 라인, 인맥 등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반대로 회사 일에서 죄란 실적부진과 명예실추다. 이 경우에는 여지없이 칼바람이 불었다. 단기적인 실적감소는 그나마 만회할 기회를 주지만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 등), 불명예스러운 윤리문제는 단호박처럼 단호하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등 성 관련 문제는 임원이고 나발이고 가차없이 집에 보내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또 삼성전자가 일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위기경영이다. 삼성전자는 언제나 위기다. 입사이래 계속 위기였고 앞으로도 계속 위기일 것이다. 온 세상이 평화로워도 삼성전자만은 위기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처음으로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에 등극했을 때도 위기를 얘기했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IT 패러다임의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는 늘 언급되는 요인들이다.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하고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을 유념하고 대비한다.


실제 체감하는 삼성전자의 핵심가치는 신상필벌과 위기경영이다


  물론 지금의 조직과 일하는 방식에 개선할 부분보인다. 관성에 저항하고 혁신에 도전하는 힘이다. “원래 그래” 를 말하지 말고, “원래 왜 그래?” 를 물어겠다. “원래 그런 거군순응하지 말고, “원래 그딴 게 어딨어?과감히 외칠 수 있어야겠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젊은이들의 움직임은 골이 따분한 꼰대, 복잡한 형식과 절차, 딴지거는 십상시들로 좌절되기 십상이다. 주름진 아재들은 계속해서 주름잡기를 원하고 젊은이들의 패기는 요즘 것들의 객기로 치부된다. 그들은 도전정신을 강요하면서 정작 그 권위에 도전하면 건방지다고 누른다.


  조직맛을 보면 조직에 묶인다. 그렇다고 나의 생각과 자세마저 거기에 고착화되면 안되겠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안좋은 점도 자칫 내 것이 된다. 조직의 면면을 이해하되 부정적인 면은 외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조직은 관성에 저항하고 혁신에 도전할 때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돈맛과 조직맛은 집착하지 않고 매몰되지 않으면 유익한 경험이다. 좋은 맛보다 유익한 맛을 구별해 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장이 알려주는 그 맛을 식도락 여행처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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