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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rego Jan 03. 2019

공부, 뭣이 중헌디?

왜 하는지 알아야 시작된다

  “공부는 왜 할까?”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은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 삶은 공부하는 이유를 알기 전과 후로 달라졌다.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얻고 좋은 길을 갈 수 있었던 비결은 머리가 비상하거나 집안이 빵빵해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답할 수 있었고, 그것을 위해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게는 이 질문에 답할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길게 살아본 인생은 아니지만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이벤트 중 하나는 단연 대학교 낙방이다. 면접의 기회도 없이 한방에 훅 갔다. 서류전형에서 광탈해 나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결정적인 1패에 가슴이 무척 쓰렸다.


  사실 고백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 마치고 조금 일찍 KAIST 에 진학하려던 노력에 대한 실패의 경험이다. 재수, 삼수도 하는 마당에 이게 무슨 개똥같은 망언인가 짱돌을 던지고 죽창을 날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삶에서 처음으로 나의 존재가 거부당하고 패대기 쳐진 데 대한 실망이 적잖이 상처가 됐다. 길을 심하게 잃어버렸다.


  KAIST 는 실제로 과학고, 자사고, 일반고 등에서 2학년 마치고 조기 진학하는 비율이 3학년 마치고 입학하는 경우보다 훨씬 높았다. 당시에 함께 KAIST 에 도전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합격해 떠나갔고, 이듬해 나는 학교에 남아 홀로 어두운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며 길을 심하게 잃어버렸다


  지극히 정상적인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이었지만 한 번 들떠버린 마음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방황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은 떠나질 않았다. 주변의 위로와 측은한 시선으로부터 피해 점점 작아져만 갔다. 실패에 흘러내린 자존감은 마음속 한 켠에 삼각주처럼 쌓여갔다. 미래에 대한 비관과 자신에 대한 비난은 스스로를 더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E. Kubler-Ross) 에 따르면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큰 사건 앞에 우선 ‘충격’ 을 받는다. 그 다음 그럴 리 없다고 ‘부정’ 하며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 수집에 나선다. 그러다 부질없음을 깨닫고 현실을 직시하며 ‘좌절’ 하기 시작한다. 이내 깊은 침체기에 접어들며 ‘우울’ 해진다. 그 상태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바닥을 찍고 다시 힘을 모아 올라갈 준비를 한다.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실험’ 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일련의 ‘결정’ 을 통해 상황을 타개하고 ‘통합’ 된 한 단계 높은 상태로 진화한다. 나도 그와 비슷한 감정 곡선을 따랐다.


실패를 통해 퀴블러-로스의 감정 곡선을 경험했다

  

  좌절을 맛본 지 석 달쯤 지났을까. 시련은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시간은 자신을 돌아오게 했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고 실패의 원인을 A 부터 Z 까지 외부에서 찾으려 했다. 반성보다 반항하는 마음이 앞섰다. 입학 사정관 실수로 합격에서 누락됐을지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마저 했으니. 뒤늦게라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 멍청한 기대마저 갖고 있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워낙 멘탈에 근육이 없던 시절이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상과 망상이 그렇게 허상을 쫓다 지쳐 다시 돌아오기를 수십 번. 차츰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현실에 대한 부정은 서서히 인정으로 바뀌어갔고, 외부로 향하던 눈은 점차 내부로 향했다.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가 부족했던 것 같아?” “왜 대학에 가려는 건데?” “결국 인생에서 원하는 건 뭐고?” “그래서 공부는 왜 하는 건데?”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그 때 처음 알았다. 내가 왜 공부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당장 눈앞의 입시에 눈이 멀어 시험을 쳐내기 바빴지 공부를 통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바를 몰랐다. 인생에 대한 근시안적인 대안만 갖고 원시안적인 혜안은 없었다. 매번 바뀌는 혼란스러운 교육과정에 끌려 다니며 억울한 학년만 꾸역꾸역 먹었다. 하라는 것들만 억지로 하다 보니 진짜 왜 하는지 몰랐다. 그저 대학에 빨리 가고 싶은 성급한 마음뿐이었다.


  사실 KAIST 에 떨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안일한 생각에 있었다. 생각은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태한 정신상태와 오만한 마음가짐이 지원하는 과정에서 지원서, 자기소개서 등에 그대로 노출됐음이 분명하다. 그럴싸한 학생부 성적 따윈 소용없었다. 자세가 틀렸고 기본이 글러먹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답을 찾아야만 했다.

공부를 왜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인간은 존재 (being) 와 동시에 소유 (having) 를 원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허공에 뻗는 손처럼 본능적으로 뭔가를 갖고자 한다. 저마다 필요한 것이 있고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 모든 행위는 그런 목적을 근간에 둔다. 공부라는 행위를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야 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대학에 잘 가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갖기 위해서” 같은 표면적인 이유보다 한꺼풀 더 들어가야 했다. 더 깊은 의미를 찾아야 했다. 공부할 의지는 공부의 의미에 비례한다. 실패의 경험은 공부할 이유에 대해, 나아가 인생의 목표에 대해 각잡고 생각해볼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방황의 끝에서 내가 건져낸 공부의 이유는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싶은 소망’ 이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내가 설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인생일 것 같았다.


  마하트마 간디 (M. Gandhi) 의 간지나는 “You must be the change you wish to see in the world” 글귀처럼 내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이 그 변화이고 싶었다. 조용히 찌그러져 살지 뭔 놈의 오지랖이 구만리냐 해도 어쩔 수 없다. 자아실현과 자기증명에 대한 욕구는 선천적인 거니까. 부모님은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 나 자신이 그 변화이고 싶다


  인생을 움직이고 삶에 불을 짚이는 동력은 거기에 있다. 저전력 모드로 들어간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동기가 된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오늘도 용기내어 나아갈 수 있는 이유다. 난공불락인 귀차니즘과 게을리즘도 무찌르는 강력한 모티프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이런 거다. 자신의 실력과 성장을 위한 자발적인 공부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Have to’ 였던 공부는 ‘Want to’ 로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성적유지와 체면치레를 위한 공부였다. 승부욕과 경쟁심에 마지못해 했던, 또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부였다. 숭늉처럼 흐릿한 시늉만 했지 명확한 vision 과 ambition 이 없었다. 죽은 공부를 했던 거다.


  언젠가 전 복싱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 뼈 때리는 말을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 내 경우가 그랬다. 어설프고 흐릿한 계획으로 일관하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며 한 대 제대로 맞았다. 그리고 선명해진 삶에 대한 큰 그림이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불타오르게 했다.


  더 이상 실패의 상처를 핥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인생은 원래 상처투성이고 그냥 반창고 붙이고 가는 것임을 받아들였다. 상처는 흉터가 되어 아픔을 이겨냈다. 다시 일어서서 달렸다. 실패의 눈물을 쪽팔리게 손으로 훔쳐내지 않고 땀으로 씻어내려 힘차게 뛰었다.


  학업의 목적이 눈앞의 시험에서 인생의 시험으로 바뀌면서 내면에 일었던 각성과 몰입은 대단했다. 작은 화면 속 게임 말고 더 큰 인생의 게임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코 밑에 코카인 같은 성취의 동기를 깔고 학업에 중독돼 미친듯이 달렸다. 발전은 그런 반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지켜야 할 꿈, 약속, 사랑 등이 생겼을 때 한층 강해지고 독해진다.


  매일매일 자습실 불을 켜고 끄는 사람은 나였다. 밤늦게까지 스텐드 불빛 아래서 시력을 포기하며 실력을 얻어갔다. 열심히 뛰고 있는 시계 초침에 자극 받고, 꾸준히 뛰어주는 심장 박동에 힘을 받아 계속해서 달렸다. 계속 더 알고, 더 배우고, 더 성장하고 싶었다. 겸허한 자세로 무섭게 파고들었다.


마침내 목적이 이끄는 자발적인 공부를 하게 됐다

 

  식사시간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지금만큼은 식전에 끝내야 밥이 넘어갔다. 그렇게 넘기는 밥도 식곤증이 두려워 조금만 삼켰다. 집중을 위해 소식하는 습관은 이 때부터다. 키가 충분히 자라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하지만 실력의 키는 훌쩍 자랐고 점수는 돈오점수로 올랐다.


  이듬해 나는 다시 한번 KAIST 에 도전했고 1년 전 실패를 딛고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인생의 트라우마가 프라이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인생에 찍힌 컴플렉스가 트레이드 마크로 바뀌는 장면이었다. 멍에는 명예가 됐고, 상처는 훈장이 됐다. 처연함은 초연함으로 변했고, 나를 향한 네거티브는 나를 위한 내러티브로 바뀌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이후 우리의 행동이 그 실패의 명암을 결정한다. complaint 가득한 잔혹사를 compliment 넘치는 대서사로 바꾸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혹독한 시간과 가혹한 시련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 대가로 얻는 성취는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그런 stressed 한 상황을 이겨내고 돌아보면 (거꾸로 읽으면) desserts 처럼 그 기억은 달콤하다.


  위기는 위기와 기회의 준말이다. 위기의 페이지를 넘기면 그 뒷면에는 기회가 존재한다. 성공과 실패는 그런 고통의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근성과 인성을 갖췄느냐가 결정한다. 나는 결국 그 장을 넘겼고 마침내 실패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내게 복이 있다면 극복이 있었고 어둠 속에는 얻음이 있었다.


위기의 페이지를 넘기면 기회가 보인다


  실패는 내게 더 이상 숨기고 싶은 결점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 하고 싶은 자랑이다. 실패는 성공의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극적인 요소가 됐다. 강연 할 때 내 실패의 이야기는 싸움구경 만큼이나 인기가 많더라.

  

  지난 1년의 고생은 더 멀리 날기 위해 잠시 뒤로 당겨진 시간이었다. 더 멀리 뛰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난 시간이었다. 웅크린 시간의 의미다. 그렇게 쏘아 올린 열정은 멀리멀리 날아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봉합된 아킬레스 건은 나를 더 멀리 뛰게 했다.


  한 방에 이룬 성공보다 여러 방 실패를 얻어맞고 이룬 성공은 견고했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성공의 아우토반을 달렸습니다. KAIST 조기졸업, 만 26세 MIT 박사, 고액 연봉의 미국에서 첫 직장, 삼성 스카우트까지. 대기 타다 대기만성한 일련의 스토리와 경험의 가르침은 차차 이야기해 가도록 하겠다.


  목적은 수단을 부른다. 강력한 목적은 그만큼 절실한 수단을 찾는다. 그리고 절박하게 수행할 힘이 된다. 그래서 공부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내겐 실패라는 충격요법이 들어가긴 했지만 반드시 실패를 통할 필요는 없다. 왜 공부하는지에 대해 진정성 있게 답할 기회만 있으면 된다. 당신도 그런 간절함을 일으키는 동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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