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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rego Jan 07. 2019

진로 고민의 정석 - 기본편

직업 말고 소망을 그려본다

  청소년 대상 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진로가 어떻게 되나요?” 물어보면 십중팔구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유투버가 되고 싶어요” 같이 직업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저 그 시대에 잘 나가고 있어 보이는 직업을 따라 줄을 서서 외쳤다. 그냥 나도 뭔가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좋아 보이는 직업을 따라 여러번 진로를 바꾸기도 했다. 의사, 변리사, 대학교수, 기업의 CEO 등등. 목표로 하는 직업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준비상태를 재점검하고 계획을 수정해가는 과정이 무척 피곤하고 불안했다.

  방향이 바뀌면 다시 Reset 버튼이다. 진로고민에 스트레스가 있다면 결정의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청소년기에 구체적인 직업을 택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답은 몰라 환장하겠는데 시험 시간 1분 남았다고 통보 받는 것처럼. 이것도 그냥 찍어야 하나.


  그런데 직업은 굉장히 불안정한 지표다. 앞으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진다고 하니.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보고에 따르면 10년 후 47% 정도의 직업이 바뀌거나 없어진다고 한다. 미래학자인 토머스 프레이 (T. Frey) 도 2030년까지 40억 일자리 중 20억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 중에는 현재 인기직인 교사, 약사, 기자, 회계사, 은행원, 파일럿 등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2016년 알파고가 몰고 온 파고는 일상을 인공지능으로 휩쓸었다. AI 로 대표되는 4차 산업은 AI 조류독감처럼 급속히 퍼져 인간의 삶을 크게 바꾸고 있다. 모든 신기술에는 hype 과 hope 이 있지만, AI 는 이미 hope 를 넘어 hip 한 트렌드다. 앞으로 우리는 Banker 없이 Banking 업무를 보고, Nurse 없이 Nursing 보조를 받으며 직업 없이도 직무가 수행되는 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한 직업으로 진로를 규정하고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한가? 직업 자체의 불안정성 뿐만 아니라 나를 정해진 직업의 틀에 끼워 맞춰야 한다는 사실도 불편하다. 맞지 않는 옷에 몸뚱이를 구겨 넣고, 맞지 않는 신발에 발가락을 쑤셔 넣는 것만 같다. 바지가 엉덩이에 낀 찝찝함이다. 뭔가 잘못된 기분이다.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한테 맞아야 하지 않을까? 나를 직업에 맞추기 보다 직업이 나에게 맞아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주체다. 나를 위해 사는 거지, 직업을 위해 내가 사는 게 아니니까. 직업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결국 진로고민의 핵심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다. 미래의 내가 ‘무엇이 되는지’ 를 보지 말고 ‘무엇을 하는지’ 를 그려보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준비 항목을 점검하는 과정이 진로탐색이다. 직업은 다양한 준비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신의 직업을 찾기 전에 자신의 소망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에서 간절히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진로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스토리라인이다. 그 스토리의 끝에는 소망이 있다. 진로설정은 이 스토리의 기획이며, 직업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한 요소다. 스토리에 적합한 직업을 택하는 것이지, 직업을 위해 스토리가 쓰이는 것이 아니다. 직업은 어디까지나 목표에 이르는 subtitle 이지 내 title 일 수 없다.


  구글의 Chief Education Evangelist 이자 교육 전문가인 제이미 카삽 (J. Casap) 도 학생들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What do you want to be?”) 가 아닌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 (“What problem do you want to solve?”) 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교육기관의 진로지도는 여전히 직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로를 찾는 게 언제부터 직업을 찾는 일이 돼버렸는지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직업탐색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 학생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다. 허울뿐인 적성검사 점수를 근거로 보기에 제시된 몇 개의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한다. 객관식으로 만들어 대충 찍게 만들고 학생부에 기록해 치워버린다.


  우리 아이들의 진로가 이런 식으로 정해지는 것은 안타깝다. 이렇게 지도 받은 학생들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길이 아닌 남들이 좋다는 길로 끌려 다닌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좋지 못하다. 우르르 몰려가 와르르 망한다. 이공계 기피, ‘사’ 자 직업 쏠림, 반수와 편입 증가 등 입시관련 사회적 이슈들에는 무책임한 현행 진로지도에도 책임이 있다.


  학생과 학교 모두 진로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진로는 직업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로는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 이라는 진로의 사전적 의미에 충실할 필요가 있겠다. 각자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길을 미리 그려보는 거다.

  그러한 길은 하나로 정해져 있을 리 만무하다. 네이버 길찾기도 다양한 루트를 제시하고, 라프텔로 가는 길 여러 가지다. 중간에 뻘짓이 있어도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만 목표를 향해있다면 문제없다. 다양하게 경험하고 부딪치면서 가는 거다.


  그 와중에 특정 직업이 지름길이 되면 필사적으로 올라타고, 또 다른 직업이 더 나은 길을 보여주면 쿨하게 갈아탄다.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평생직업도 마찬가지다. 나의 직업이 하나일 이유는 없다.

  나 또한 인생에서 바라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기여' 를 위해 더 적합한 길이 있다면 사업가, 사상가, 교육자 등 얼마든지 전업할 용의가 있다. 특정 직업이 나를 규정할 수 없다. 직업은 원래부터 우리의 진로를 보좌하지 보장하지 않는다.



  진로가 구체적일 필요도 없다. 아니, 구체적일 수가 없다. 지금 내 모습은 어린 날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지구 반 바퀴만큼 다르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지나온 삶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과 상상치도 못한 함수들로 가득했다. 미래의 일이란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 때문에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삶은 그저 전체적으로 큰 목표를 향해 흐르고 있으면 된다. 살면서 마주하는 수만 가지 의사결정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심의해 집행하고, 그러한 결정이 최선으로 기억되도록 결과에 충실하면 되는 거다. 방향끈만 단디 잡고 흔들리더라도 꾸준히 가다보면 우리는 서서히 그 목표에 다가간다.


  진로가 구체적이던 친구들 중에는 덕후 (德厚) 가 여럿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가지 분야에 덕을 두텁게 쌓은 친구들이다. 특히 그들은 수학, 물리와 같은 기초학문이나 음악, 무용과 같은 예체능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애당초 한길만 팠다. 본인이 선택한 (또는 부모가 주입한) 진로가 너무 구체적이고 확고해 주변의 다양한 배움과 경험을 마다했었다.


  한 분야로 레이저 포커스된 길을 너무 일찍 따라간 나머지 그들은 경주마처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공식처럼 정해진 길을 가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틀린 시험문제마냥 불안해했다. 이렇게 규칙 많고 피곤한 놈들 주위에 사람이 모일 리 없다. 비슷한 분야 속 가가가인 천편일률적 인간관계는 그들의 사회성을 메마르게 했다. 간만에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 녀석은 너무 일찍부터 한 분야에 올인했던 본인의 진로를 아쉬워하며 소주를 들이켰다.


  청소년기 박터지는 진로고민으로 “나중에 뭐하지?” 물었다면 끝까지 '~을 하는 것' 에 집중하자. '~이 되는 것' 은 부차적이다. 한때의 직업 말고 인생의 과업을 생각하자. 끝판왕은 끝판을 염두에 둔다. 인생의 막판에서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가치와 그 것을 위한 준비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끝내기 홈런과 버저비터 같이 짜릿한 승리를 위한 큰 그림을 그려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넓고 추상적인 소망으로 시작해 점점 그 소망을 구체화 시켜보자. 카메라 속 피사체의 초점이 맞춰지듯 처음에는 아련했던 목표가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찬찬히 들여다 보면 볼 수 있다. 너무 서두를 필요 없다. 자, 이제 사진기는 주어졌다. 피사체를 찾고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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