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terego Jan 14. 2019

잘 하는 것을 먼저 들이십시오

좋아하는 것 vs.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vs. 잘 하는 것' 의 고민에는 '부먹 vs. 찍먹' 만큼이나 다양한 의견들이 있어왔다. 나 또한 그와 같은 고민을 했었고 지금은 나름의 답을 찾아 좋아하면서도 잘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둘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제시하기에 앞서 먼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하는 행위와 알아서 찾는 대상은 십중팔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다. 돈, 시간, 노력 등 나의 자원을 기꺼이 쏟고 부지불식간에 인사불성으로 하는 무엇이다. 아낌없이 지불해도 남김없이 아깝지 않다. 자신이 'Pay for it' 하는 그것이 자신의 'Favorite' 이다.


  한편 좋아하는 것은 좋아 보이는 것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좋아 보이는 것이란 호감은 있지만 자발적으로 하진 않는 거다. ‘좋겠다’, ‘짱이다’, ‘대박이다’ 입으로만 말하고 감탄사로 끝나는 것들이 그렇다. 스타들의 화려한 일상과 고급진 생활에 눈은 가지만 내가 굳이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반짝이는 수갑과 번뜩이는 목줄은 그저 좋아 보이는 것들이다. 나의 열정과 노력은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아껴둔다. 좋아 보이는 것은 걸러내고 진정 좋아하는 것을 구분해내자.


좋아하는 것 : 돈, 시간, 노력을 들여 자발적으로 하는 것


  다음으로 자신이 잘 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남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주변으로부터 '좋아요' 와 '엄지척' 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접히지 않는 그 엄지가 자신이 잘 하는 것에 대한 징표다. 애매한 재능은 재앙이기에 이 것은 확실히 알아야한다. 한두 명 말고 다수의 친구들이 추앙할 정도의 리스펙이 필요하다. 관대한 나의 관점이 아닌 냉철한 타인의 관점이다. 남들이 'Like it' 하는 그것이 자신의 'Lit (쩌는)' 한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잘 한다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잘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낯뜨거운 얘기지만 나는 중학생 때 랩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드렁큰타이거의 탈조선급 등장에 충격을 받고 요실금 지리는 랩핑에 흠뻑 취했다.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단’ 등 띵곡들을 기저귀 차고 따라 불렀다. 라임, 딕션, 플로우 모두 내 딴에는 훌륭했고, 딜리버리도 맥도날드 10년차 이상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노래방에서 나의 속사포 같은 랩을 들은 친구들은 박격포 들고 죽일 기세였다. 혹평 가득한 친구간 탄도 미사일로 십자포화 했고 신랄한 팩폭에 피폭됐다. 반응은 다른 의미에서 뜨거웠다. 그 후로 랩은 즐겨 듣되 함부로 시전하지는 않는다.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잘하고 못하고는 어디까지나 상대방 관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나에 대한 평가는 타인의 관점이 정확하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절친에게 물어보자. 우리 주변에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구가 있다. 절친은 자신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거울이다. 내 감정에 눈치보지 않고 적나라한 진실을 말해줄 수 있다. 형식적인 학생부 종합의견이나 선생님과의 면담은 도움되는 구석이 별로 없다. 부모의 고슴도치 같이 편향된 시각은 말할 것도 없다. 필터링 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직설과 독설이 필요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대방에 대한 한줄평은 갖고 있게 마련이다.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말해주지 않을 뿐.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에 대한 답은 가까운 친구에게 물어보자. 지금껏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대인배 마인드라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도 물어보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잘 하는 것 : 남들이 엄지척 인정해주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알았다면 이제 이 둘이 공유하는 교집합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뭐라도 하나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냥 하기도 힘든 판에 잘 하기까지 한다. 내가 좋다고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데 남들이 잘한다고 물개박수 쳐주는 거다. 그게 나쁜 일만 아니라면 그 일을 하면 된다. 평생 해도 후회 없다.


  반면에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일치된 게 하나도 없다면 어떨까. 교집합이 공집합인 경우다. 불행한 상황인가? 아니다. 이런 상태가 보통이고 일반적이다. 낙심할 필요 없다.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제 문제해결을 위해 이 둘을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잘 하려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노래실력은 부족하지만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실력을 올리고 싶다. 열등한 상태에서 시작해 남들과 동등한 수준을 넘어 우등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노래 좀 한다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매년 방송되는 <K팝스타>,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참가자들 실력이 깡패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계속 어디선가 실력자들이 속속 등장하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다. 세상에 재원과 재자가 마르지 않는다.


  단점을 고치면 평범해지고 장점을 살리면 특별해진다. 때문에 같은 시간, 같은 노력을 들여 한 단계 전진하면 나는 평범해져 있고 그들은 비범해져 있다. 실수로 한 단계 후퇴라도 하면 그들은 평범해져 있고 나는 피범벅 돼있다. 좋아하는 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미 그것을 잘 하는 고수들과 피 튀기는 전쟁을 치뤄야 한다. 죽을 만큼 노력해서 고작 평범해진다. 물론 피똥 싸는 노력으로 정상에 올라서는 아름다운 스토리도 있겠지만, 그전에 과다출혈로 직장이 헐어버릴 수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또한 아이러니하게 좋아하는 것은 잘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라야 좋은 것일 수 있다. 노래, 요리, 운동, 게임 등 잘 하지 못해도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좋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배움의 재미 또는 채움의 미학이랄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취미라 부른다. 취미가 내 일이 됐을 때도 여전히 좋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평시와 전시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다. 생계 전선에서도 그것이 마냥 좋게만 느껴질지 판단해보자.


무작정 좋아하는 것을 잘 하려 덤비면 헬게이트가 열린다


  다음은 잘 하는 것을 좋아해보려는 노력이다. 당신은 자신이 잘 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가? 자기 능력의 진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색한 것이 보통이다. 인간의 욕구란 늘 자신이 갖지 못한 바깥의 뭔가를 향해있기에, 이미 갖고 있는 내 안의 장점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마련이다. 소유와 동시에 가치를 잃어버리는 소유의 역설이다.


  자신만이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냉정하게 외면하는 건 안타깝다. 내가 헛되이 뭉갠 오늘의 능력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능력일 수 있다. 한번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이건 의외로 어렵지 않다.


  나는 중학생 시절 물상 과목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 시험에는 강했다. 학급에 꼭 이런 재수없는 캐릭은 하나 둘 있다. 친구들은 뉴턴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치를 떨며 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들었지만, 내게 물상은 자연현상을 기술한 세상의 메뉴얼처럼 쉽게 읽혔다. 포물선 관련 문제들을 순식간에 풀어제껴 ‘포물선 정’ 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이처럼 물상은 스스로 신나서 공부했던 과목은 아니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잘 하는 분야였다.


  언젠가 물리 경시대회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녔는데, 그 때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침을 주셨던 안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실예와 실험을 바탕으로 쉽고 재미지게 물리학의 개념을 풀어주셨다. 늦은 새벽까지 야식도 사주시며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셨다. 특히 “너는 물리를 참 잘해!” 라는 선생님의 반복적인 칭찬이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Courage 는 Encourage 로부터 나온다. 자신의 실력을 긍정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긴 자신감은 스스로 그 안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내더라.


  잘 하는 것을 좋아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대수롭게 여기고 재미를 붙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남들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내 능력에 나도 엄지를 들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 있으면 된다. 타인의 인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많이 본다. ‘고작 그런 일’ 이라고만 치부했던 생각을 ‘아주 대단한 일’ 로 바꿔 생각해보자. 한 생각 차이다.


  잘 하는 것을 좋아하면 그것을 다시 더 잘하게 되는 양성 피트백 (Positive Feedback) 이 발진된다. 주변의 인정과 칭찬 속에 더 재미있고 더 잘하게 된다. 그런 선순환의 고리가 돌기 시작하면 결과는 걷잡을 수 없이 긍정적이다. 안선생님 덕분에 나는 잘 하는 것을 좋아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지금도 이 둘을 일치시켜 내 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잘 하는 것을 좋아해보는 노력을 한번쯤 해보는 것은 어떨까?


  책이나 TV에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다짜고짜 “좋아하는 것을 해라” 대책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책이 없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하란다. 무책임한 말로 헛된 희망을 주는 그들 앞에 순진한 아이들은 속수무책 당한다.


  그들은 우리 인생을 잘 모르고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들이 운 좋게 풀린 소수의 케이스임은 좀처럼 밝히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하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노오력 하세요” 같은 말로 혹세무민 호도하며 넘어가려 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개소리인가.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노력했지만,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하면 된다는 모르핀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건 전혀 도움 안된다. 상황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현실과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꽤나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하자. 생각 없이 따라갔다간 헬게이트가 열린다. 낯선 아저씨가 허니버터칩 사준다고 무작정 따라가는 건 위험하다. 수틀리면 바로 사바세계와 안녕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문제에 모범답안은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하려는 방향으로 노력해왔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로부터 그렇게 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역경과 고난을 극복해 좋아하는 것을 잘 하게 된 스토리를 좋아한다. 그 이면의 수많은 실패와 좌절들은 외면한 채.


  잘 하는 것을 좋아해보는 노력도 엄연한 방법이다. 단지 우리가 좀처럼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 한번쯤 해보자는 거다. 가까운 길이 있다면 먼 길로 돌아갈 필요 없다. 수월한 길이 있다면 난해한 길을 찾을 필요 없다. 힘들게 간다고 제대로 된 길이 아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그 안에서 재미와 열정을 찾아보자. 타인에 대한 박애보다 자신에 대한 자애가 필요할 거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일치될 때 당장 내가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것이 사회가 원하는 것과 닿았을 때 세상도 행복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진로 고민의 정석 - 기본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