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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rego Mar 24. 2019

성공의 추월차선을 소개합니다

빨리빨리 if you can

  한국사람의 아이덴티티는 뭐니뭐니해도 ‘빨리빨리’ 다. 국제전화 국가번호부터 소름돋게 82 다. 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1살이다. 엘리베이터는 타자마자 닫힘 버튼부터 누르고, 에스컬레이터 좌측은 전진하지 않으면 속이 탄다. 회식은 시작부터 소맥으로 달리고, 불판의 고기는 쉴 새 없이 뒤집으며, 컵라면은 익기 전부터 흡입한다. 노래방에서 간주점프는 기본이고, 1절만 부르는 게 미덕이다. 계산할 때 주인 아저씨는 나 대신 카드서명을 이미 해버렸고, 귀가할 때 택시 아저씨는 죽음의 레이싱을 펼친다.


  일상생활에서 3초 안에 열리지 않는 웹사이트는 닫아버리고, 3분 넘게 지각한 남자친구는 대역죄인이며, 3번 울려도 받지 않는 전화는 짜증이다. 은행에서 신용카드가 그 자리에서 발급되고, 아침에 주문한 물품이 저녁에 배송되며, 이삿짐 센터가 하루 만에 이사를 끝내준다. 이 정도면 정말 끝내주게 빠른 국민성이다.


한국사람의 특징은 '빨리빨리' 다


  국민성에는 역사의 흔적이 스며있다. 우리 DNA 에 각인된 ‘빨리빨리’ 염기서열은 한국전쟁 이후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함에서 비롯된 유전자 변이일 것이다.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국을 보며 당시 UN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국가 회복에 최소 100년은 걸릴 것으로 예견했다. 미군 뒤를 쫓아다니며 “기브 미 쪼꼬렛” 하며 거지같이 연명하던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50년도 되지 않아 빠르게 빈곤국을 탈피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국가경제력 지표인 국내총생산 (GDP) 을 봤을 때 한국은 1962년 $24억에서 2016년 $1조 3212억으로 반세기 만에 무려 550배 급성장해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됐다. 유럽 국가들이 산업화를 이루는데 200~300년 걸린 것을 생각하면 고도의 압축성장이고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외국인들도 혀를 내두를 엄청난 속도로 성장 신화를 일궈냈다. 단군이 분양권 당첨돼 한반도에 입주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4대 문명과 위도를 나란히 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를 널리 이롭게 했다. 그리고 역사의 고난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한 우리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가난의 대물림을 빠르게 끊어냈다.


  특히 2010년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개발원조위원회 (DAC) 회원국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국제 원조를 받다가 국제 원조를 주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됐다. 이렇게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절대적 빈곤의 뼈저린 경험과 그 극복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생겨났다.


  이제 ‘빨리빨리’ 는 태극마크처럼 한국의 트레이드 마크다. 세계가 인정하는 고유한 가치가 됐다. 알파벳 회장 에릭 슈미트 (E. Schmidt) 는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로 ‘Rush Rush’ 를 꼽았다. 그는 전세계에서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르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가장 높은 한국의 IT 문화를 우리의 ‘빨리빨리’ 정서와 연결시켰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A. Toffler) 도 여러 차례 내한 강연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빨리빨리’ 를 발음하며 빠르게 변하는 미래사회에 한국문화가 적합하다고 강조했었다.


'빨리빨리' 는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고유한 가치가 됐다


  나는 학창시절 여러분들이 우리의 ‘빨리빨리’ 를 십분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학창시절 안락함은 안락사를 초래한다. 혈기왕성한 학창시절이 맥빠지는 다운시프트와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어를 올리고 풀악셀을 밟을 때다. 준비된 차들은 힘껏 달릴 수 있다. 준비된 자들도 마찬가지다.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에서 가슴 떨리는 반동과 driver’s high 를 만끽해야 하지 않을까.


  100세 인생에 10~30세까지 20년 정도는 ‘빨리빨리’ 달릴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터질듯한 열정과 짐승같은 체력이 공존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춘기 지나면 닫혀버리는 성장판처럼 성장을 위한 골든타임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20년은 앞으로 60년 이상을 먹여 살릴 기반이 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빨리’ 성장해야 하는 이유다. 초년의 노력은 말년에 구력이 된다. 그래야 나중에 폼이 빠져도 클래스로 버틴다.


  학창시절은 킬링타임이 아니라 킬링파트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결과는 철저히 불공평하게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직업이 바뀌고, 통장잔고가 바뀌고, 배우자가 바뀌고, 자식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다. 열심히 살아도 억울하지 않다. 인생에서 딱 한 번만 열심히 살고 싶다면 지금이다. 느림의 미학은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다. 또 빠르고 느리고는 상대적인 개념이라, 느림도 빠름이 있은 후에야 진정으로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


학창시절 '빨리빨리' 를 통해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다


  나는 학창시절 한국인의 ‘빨리빨리’ 능력을 적극 활용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달렸다. 좋게 말해 소신있게, 벗겨 말해 제멋대로 인생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이 사회가 짜놓은 각본대로 살도록 내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한번 건전한 의심을 해봤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을 기본으로 하는 학제와 체류연한이 모두에게 참인 명제인지. 내 인생에서 초등학교 1년을 또는 중학교 1년을 빼먹은들 인생이 크게 바뀌었을지. 내가 내린 답은 “No” 였다. 그리고 앞으로 대학교, 대학원 등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대학에 입학해 한 학기 마치고 보니 이거 웬걸, 한눈 팔지 않고 조금만 부지런하면 많은 것들을 빨리 끝낼 수 있겠더라. 아쉽게 포기할 것들이 있다면 음주가무와 뻘짓거리 정도였다. 학부 졸업을 한 학기 당겨 8월에 이룬 덕분에 시작학기가 9월인 미국에서 공백 없이 바로 대학원 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석사과정은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어 2년 붙박이였고, ‘빨리빨리’ 능력은 박사과정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박사 취득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실적이며 정해진 기한은 따로 없다. 그렇게 목표만 있고 납기가 없는 일의 장점은 조건만 충족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마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한없이 늘어져 아예 드러누울 위험도 있긴 하지만. 나는 박사과정에 4년 이상 걸린다는 통념 따위 개의치 않고 연구를 빠르게 진행시켰다. 결국 나는 2년 반 만에 승부에 결판을 냈고, 만 26세의 젊은 나이로 MIT 박사가 될 수 있었다.


만 26세 MIT 박사가 될 수 있었던데는 '빨리빨리' 의 힘이 컸다


  사실 ‘빨리빨리’ 의 진정한 의미는 성공을 앞당긴다기 보다 실패를 앞당기는데 있다. 세상사 한 번에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처음 하는 일에 실패는 자연스럽고 애초에 실패를 각오하고 임한다. 어떤 일을 성공하기까지 우리가 거쳐야 하는 실패의 횟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지 모른다. 그게 맞다면 실패는 빨리 맛볼수록 성공에 더 빨리 다다른다. 즉, 빨리 성공하는 길은 빨리 실패하는 것이다. ‘빨리빨리’ 는 동일한 시간에 남들보다 더 많이 도전할 수 있는 정당하게 불공평한 기회를 부여한다. 삶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성공할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빨리빨리’ 가 답이다.


  또한 ‘빨리빨리’ 는 내 주변을 경험 많고 배움 가득한 선배들로 채워 나를 더욱 성장시킨다. 또래나 후배보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선배에게 배울 점이 많다. 나는 대학교 이후 삶을 빨리 진행시킨 덕분에 형, 누나들과 동기가 되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직장에서는 나이에 비해 높은 직급 때문에 상급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레 사고와 눈높이는 그들을 따라갔고 이해의 폭과 소통의 문도 넓어졌다.


  ‘빨리빨리’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뉴턴의 3법칙이 있더라. 한 번 달리기 시작한 인생은 그 상태를 지속시키려는 관성이 있어 대학교, 대학원, 회사의 단계를 계속해서 빨리 가도록 만들었다 (관성이 법칙). 그런 움직임은 시간에 따른 변위를 이차함수 곡선으로 그려놨고 나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빠르게 데려다 놓았다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이건 내 의지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어진 결과였고 쏟은 만큼 인생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


'빨리빨리' 의 3법칙 :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


  ‘빨리빨리’ 의 수혜자로서 후배들에게 이 길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실력 부족이 아닌 정보 부재로 이 길을 몰랐던 후배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대학원 석·박사 6년과 같이 정형화된 틀에 갇혀있을 필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과정의 체류연한은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지 정해진 룰이 아니다. 사회의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어리석다. 획일화된 움직임의 단점은 하향평준화다. 교통체증에 섞여 남들과 함께 천천히 흘러가기보다 우회해 빠른 길을 찾는 노력이 현명할 수 있다.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그레이스 호퍼 (G. Hopper) 는 “We’ve always done it this way” 라는 고착된 생각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고 했다. 바나나 우유가 노란색이면 이상한 거다. 바나나 껍질이 노랗지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육의 체류연한도 마찬가지다. ‘빨리빨리’ 능력에 조금만 눈을 뜨면 고등학교 2년, 대학교 3년, 대학원 석·박사 4년까지도 단축할 수 있다.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욕심이란 성실한 과정이 뒷받쳐 주면 정당한 기대다.


  조기진학은 조기교육의 설레발 없이 적기교육의 잰걸음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만 8세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한 송유근 같은 과도한 점프를 하라는 게 아니다. 정규과정을 착실히 밟되 반발짝씩만 빠르게 갈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은 복리로 쌓여 후에 큰 기회와 혜택으로 돌아온다. 뱁새의 빠르고 부단한 발걸음이 황새의 가랑이를 찢어놓는다.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 <One Piece> 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우리는 악마의 열매 중 ‘빨리빨리’ 열매를 먹었다. 열매의 능력은 사용자의 의지와 사용법에 따라 얼마든지 강력한 힘이 된다. 그렇다면 ‘빨리빨리’ 를 통제함이 아니라 활용함이 바람직하다. 학창시절 ‘빨리빨리’ 는 독점적인 기회를 가능케 하는 배타적인 특전을 제공한다.


우리가 먹은 '빨리빨리' 열매는 바르게 사용하면 큰 힘이 된다


  남들이 뭐라 하든 눈치보지 말고 소신껏 달리는 마이웨이가 필요하다. ‘Just do me’ 다. ‘빨리빨리’ 의 걸림돌은 우리 한국인의 몹쓸 ‘눈치보기’ 니까. 눈치주지 않아도 눈치보며 스스로 작아지는데 그럴 필요 없다. 빨리 가려다 실패하면 그저 제자리로 돌아올 뿐 뒤처지거나 낙오되지 않는다. 한 번 해본 것이기에 그 자체로 이미 앞서있다. 오히려 더 강해지고 성숙해져 있다.


  ‘빨리빨리’ 가는 길에는 승보다 패가 많을지언정 실보다 득이 많다. 지름이야말로 지름길이고, 밍기적 거리면 기적도 없다. 성공은 선공한 자의 것. 인생을 선방하려 하지 말고 선빵 날려보자. 사회의 장벽과 제도의 한계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 있게 달려보자. 여러분들이 학창시절 ‘빨리빨리’ 를 통해 가능한 많은 도전을 외치고, 가능한 많은 장애물을 맞닥뜨리며, 가능한 많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했던 것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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