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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Jan 02. 2019

1. INTRO

하루 치 향유 -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광고회사에 다니는 A와 P는 자주 그런 말을 내뱉었다.

회의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을 때, 기껏 낸 아이디어가 여러 인적, 물적 요소들에 의해 훼손당할 때, 카라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셔츠를 사고 싶은데 이번 달 카드값이 빠듯할 때, 막 시작하거나 또는 오래된 연애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런 일들이 없어도 그냥 마주앉아 푸글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쌉쌀한 기분으로 맥락없이 그 말을 내뱉었다.


 둘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는데, 광고회사 일은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기엔 애매했다. 재미가 없진 않지만 있기는 힘들었고, 돈을 안 벌진 않지만 충분히 쓰기엔 늘 모자랐다. 차라리 둘 중 하나라도 충족하면 좋을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그만두지도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다. 머리로는 나갈 궁리를 하지만 몸은 해야할 일들만 간신히 해내는 상황이었다. 남들도 별 거 없겠지? 다 우리처럼 살겠지 하다가도 인스타에는 자신의 얼굴이나 몸이나 취미나 직업을 내세워 어찌됐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잘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둘은 곧잘 우울해졌다. 하필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라는 게 있어서 남들과 뒤섞여 살아가는 한 자신의 페이스대로 살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결국 자신을 남에게 대입하여 비교해버리고 마니까. 그러다 망각능력이라는 게 나타나, 열정, 다짐 등의 순간적 상념은 눈 앞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실체들에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 때 방송국 입사 시험을 준비할 땐, 작문 시험이라는 게 있었어. 예를 들어 네가 지금 들고 있는 ‘필름’이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그것에 대해 한 시간 동안 자유 작문을 하는 거지. 그게 칼럼일수도, 소설일수도, 에세이일 수도 있어. 제한된 시간과 분량 안에서 무작정 글을 쓰는 거야. 그렇게 서류 합격자 2000명 중에서 50명을 걸러내.”

 방송국, 필름, 자유 같은 두서 없는 단어들을 적어 내려가며 P가 말했다. 그는 PD시험에 자꾸 떨어지다가 어쩌다 광고회사에 들어오게 된 카피라이터였다. 광고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아는 아트디렉터 A는 여전히 손 안의 필름에 눈을 떼지 않은 채 그의 말에 답했다.


 “결국 우리같은 사람은 마감시간이 옥죄어오지 않는 한 이것저것 벌려만 놓다가 결국 아무 것도 마무리 못 하는 그런 부류 라니까.”

 “맞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데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그것을 실행하는 걸까. 정말 신기해.”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한 A가 말했다.

 “근데, 그거 괜찮지 않아? 단어나 문장 대신 내가 찍은 사진을 너에게 과제로 주는 거야. 그러면 네가 그 사진에 대해 자유롭게 짧은 글을 쓰는 거지. 형식과 주제는 정하지 말자. 여행이나 쉼이나 자존감이나 사회통념을 향한 분노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고, 우리가 그걸 독보적으로 잘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저 하루 중 비어 있는 시간에, 퇴근할 때나 자기 전 같을 때 잠시 향유하는 걸로 충분할 만큼만.”

 “어… 나쁘지 않은데. 사진을 보고 쓰는 글인 거네? 그럼 그 글을 읽고 네가 그림을 덧붙일 수도 있겠지. 딱 하루 치 만큼의 향유라. 우리처럼 애매한 아웃풋이 될 것 같긴 한데.”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극적인 사건도 결말도 없이 애매하게 흘러가니까. 그냥 그렇게 흐르다 느낀 것들에 대해 말해볼까. 하고 둘은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을 하다 딱히 답을 내리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거나 해보기로 한 애매한 조합이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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