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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Jan 09. 2019

8. 바꿀 생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루 치 향유 -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스위스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한 사람은, 마이스터 과정을 밟습니다. 하고자 하는 공부가 확실한 사람은 대학에 갑니다. 저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스무 살 때라고 알았을까요. 그래도 그 시절엔, 그 후로 십 년 안에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죠. 주어진 시간을 유예하기 위해 저는 대학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녀를 처음 봤습니다.


 공간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과 어울리는 공간에 가거나 그 곳을 자신과 닮아 가도록 차근차근 만들어 내거나 하지요.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후문의 골목 안 쪽에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곡 소리에 홀린 듯 그 곳에 들어갔고, 그 때 그녀는 바 테이블 너머에서 차이나 칼라의 흰 남방을 입고 우유에 스팀을 내고 있었습니다. 손에 든 뜨거운 우유와 옷의 색, 얼굴의 피부와 회색 눈이 조명에 비쳐 세상에 존재하는 흰 색 계열들이 톤 별로 그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눈부시고 불확실한 빛과는 다른, 하얀 도화지나 무늬가 없는 흰 대리석처럼 뚜렷한 깨끗함이었어요. 아내를 처음 본 날의 순간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녀가 먼저 생각이 납니다. 아내는 그 때 그녀의 옆에서 작은 몸으로 바지런히 테이블 위의 빈 커피 잔을 치우고 있었어요. 선뜻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었던 저는 당시 그녀와 같이 일하던 아내에게 대신 말을 걸었죠. 하얀 도화지 옆에 놓인 작고 까만 몽당 연필 같은 아내는 저의 관심을 낯설고 수줍게 받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멋진 사람들을 선망하지만, 결국 우리와 닮은 사람의 곁에 남게 되는 게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사 년 후, 아내와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 후, 이 곳 슈비츠로 이사해 저는 건축 일을 하고, 아내는 그런 저와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그렇게 사십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사이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격렬한 부딪힘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마치 겨울에도 마른 나무와 사철 나무가 함께 자라는 잔잔한 이 곳의 날씨처럼요. 함께 사는 동안 아내는 언제나 나에게 묻는 게 많았는데, 아침이 되면


 오늘은 어떤 음악을 틀까요? 

 식사는 뭘로 할까요? 어제 저녁 때 과식 했으니, 가볍게 과일 주스를 만들까요? 어떤 과일로?

 저녁엔 언제쯤 들어와요? 장을 보게요

 아이가 독일로 학교를 가고 싶대요. 당신도 찬성해요?

 무슨 생각해요?

 요즘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매일의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내가 물을 것들은 남지 않았어요. 그게 문제였을까요. 내가 아내에게 물을 것이 없어서,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아이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고, 제가 새로 건축한 집을 둘이서 돌아보던 날, 언제나처럼 세 걸음 쯤 뒤에서 나의 뒤를 좇던 아내에게 첫 번째 발작이 왔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사진을 찍고 우리가 건물 모퉁이를 돌고 나서 였을겁니다.  조용하고 일방적인 우리의 생활을 찢어놓던 저의 새된 물음이 기억나네요. 

 괜찮아? 어디가 아팠던 거야?


 두 번째 발작이 찾아온 밤 다음의 아침, 나는 걱정스럽게 아내에게 괜찮냐고 다시 물었고 아내는 대답했습니다.

 안 괜찮아요.

 뭐라고? 아직 몸이 안 좋아?

 아니요. 몸은 괜찮아요. 내 말은, 이렇게 살아온 날들이 안 괜찮은 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었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머니 집에 다녀 올게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베른의 어머니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내의 짐을 챙겨 들고 함께 기차역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횡단보도 너머에서 나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아니, 그녀는 이제 우리처럼 늙었을 테니 그녀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마도 거의 확실히, 길 너머에 서 있는 건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하얀 피부와 회색 눈, 뚜렷하게 깨끗한 그 때의 젊은 그녀가 옆에 있는 아시안 친구와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이 한적한 마을에 여행을 온 듯 했죠. 아내도 분명 그 아이를 봤겠지요. 그 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순간의 감정은 오직 오래된 기억 속에서만 강렬했다는 걸. 오랜 시간의 쌓임 후 다시 마주하면 무력하고 낡은 것만 남는다는 걸요.  눈 앞의 완벽한 청춘보다 결점 가득한 우리 둘이 그 순간 더 완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을 내 옆의 아내도 깨달았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아내는 어머니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중에는 저보단 먼저 어머니에게 연락을 주겠지요. 당신이 찍은 이 사진의 원본을 보내 주신다면, 그 사진과 이 편지를 동봉해 베른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언젠가 이 편지와 사진을 본 그녀에게 하나씩 물어갈 날들이 올 수 있길 바랍니다. 발작이 오던 날 들던 생각, 지난 사십 년 간 내게 물어오며 들던 기분 들에 대하여 하나씩 하나씩.


 -슈비츠의 겨울에서, 야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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