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틈’

목적보다 중요한 과정

모든 것이 빠르고 정신없이 변하는 우리 생활에서 감각으로 느끼는 삶과 영혼으로 느끼는 삶이 뒤로 물러서고, 추억과 양심의 거울 앞에 우리 영혼이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짧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 헤르만 헤세 -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가서 창을 살짝 열어두고 부엌의 쪽창과 일하는 방의 창까지 열어놓은 후에, 보온포트의 전원을 켜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이를 닦습니다.

이를 닦고 나서는 가볍게 세수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와서 데워진 물을 컵에 따르고 소금을 조금 넣어서 섞은 물을 마시며 걷기를 시작하죠.

베란다에서부터 부엌과 세탁실, 베란다에서부터 일하는 방의 창문까지를 최대한 천천히, 손에 든 뜨거운 소금물이 넘치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걷습니다. 그렇게 두어 번 끝과 끝을 왕복한 후에, 지저분한 곳이 있으면 조용히 닦아내거나 먼지를 털어내기도 하죠. 식구들이 아직 자고 있기 때문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아주 조용한 청소를 합니다.

집안 걷기를 어느 정도 하고 나서는 일하는 방으로 돌아와서 집안의 모든 안경과 핸드폰 들을 모아놓고 닦으며 제 책상을 바라봅니다. 안경 다섯 개와 핸드폰 다섯 개, 컴퓨터 모니터 네 개, 아이패드 2개를 깨끗이 닦아내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메모하며 하루를 준비하죠. 일하는 공간에도 물건이 많아서, 여기저기 살피다가 먼지가 보이거나 매끌거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닦아냅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조용한 청소를 마치고 나면 잠도 완전히 달아나고 몸은 개운하며, 정신도 맑아진 것을 느낍니다. 일종의 걷기 명상이나 노동 명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루를 돌아보는 저녁시간,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 이렇게 집안을 서서히 걸으며 어지러운 물건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더 정리된 환경 속에서 정리된 마음을 지니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리 마니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헤매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창고의 문 안쪽, 찬장이나 수납장들의 문 안쪽에 메모지로 물건의 위치를 적어두어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쓸데없이 헤매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오랜만에 쓰는 물건을 찾느라 창고를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날은 여지없이 창고가 한바탕 뒤집어지고, 창고의 문 안쪽에는 새로운 물건 위치 리스트가 붙여진답니다.

그렇게 정리정돈과 청소, 설거지 등은 제 삶의 중요한 축으로, 삶이라는 마라톤의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 이정표 들처럼 지금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물건 정리나 청소에 크게 관심이 없는 아내 덕분에 오롯이 제 일이 된지도 한참 되었죠. 주렁주렁 이런저런 물건들을 달아두고 꾸미기 좋아하는 제 라이프 스타일을 별 탈 없이 받아들여주고 있는 이유도, 최소한 깔끔한 상태로 유지하며 살아가고는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정리정돈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제게 일종의 명상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아서 천천히 걸으며 호흡을 관찰하죠. 하루에 한 번, 잠자기 전에 잠시 스트레칭과 명상을 하기는 하지만 이십분에서 삼십분, 명상은 오분 내외로 짧게 하는 정도입니다. 밤늦게, 자기 직전에 하는 명상이라, 졸려서 더는 못하고, 딱 오분 시간을 맞춰놓고 최소한 그 정도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호흡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하루 종일 관찰하며 살고 싶지만, 살다 보면 어느새 잊어먹고 정신없이 살고 있죠. 그래서, 최소한 아침 일찍, 밤늦게, 오롯이 홀로 있는 시간에라도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늘 호흡에 집중하며, 마치 마라토너가 호흡과 움직임을 조절하며 페이스를 유지하듯, 최소한 호흡의 속도와 깊이만은 스스로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 제게는 삶의 목적보다 중요한 과정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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