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아이들 다섯 명이 비를 피하며 숲에서 놀던 이야기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지기 시작한 날씨라 낮에도 그렇게 무더운 느낌은 없었지만, 아직도 더운 날씨였습니다.
어제는 아이들 모두의 의견에 따라 계곡에서 놀다 왔죠. 대장과 부대장에게 나침반을 하나씩 나눠주고, 목적지 방향의 방위만 알려준 후에 아이들 스스로 계곡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처음 써보는 나침반을 쳐다보며 친구들과 함께 고민고민하며 찾기는 했지만, 처음치고는 그리 어렵지 않게 계곡을 찾아내더군요.
그렇게, 지난번에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던 다리 밑 넓은 물웅덩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전에는 땡볕 아래인 곳이라, 우선은 그늘이 있는 위쪽 계곡으로 가서 놀기로 했습니다. 1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는 곳인데 인적도 드물고 모기도 적어서, 한여름에 조용하게 놀기에 딱 좋은 곳이죠.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적당한 계곡가에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고, 가져간 놀이도구를 꺼낸 후에 각자 알아서 물놀이를 시작했는데, 중원이와 현선이 미애는 댐 만들기를, 정규와 중원이는 가재 잡기를 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놀며 손가락만 한 가재도 몇 마리 잡아내고, 세 아이가 만들어놓은 두어 개의 댐 덕분에 물도 꽤 깊고 넓어졌죠. 계곡의 물속에는 가재뿐 아니라 날도래, 강도래의 애벌레와 옆새우 등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논 후에 잠시 간식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좀 놀아보려고 했는데... 하늘을 보니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람도 서늘해지는 것이, 심상치 않았죠.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다면 소나기가 내릴 가능성이 꽤 높답니다. 예보에 없던 비라, 준비도 거의 되지 않았었지만, 돗자리와 비상용 줄이 있어서 비를 피할 수는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무래도 소나기가 올 것 같다. 소나기가 내리면, 저기 산수유나무들 밑으로 숨어야 한다"라고 알려주고서, 아이들 짐을 조용히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후두두둑 비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몇 방울 떨어지던 비가 쏟아져 내리기까지 몇 분 걸리지도 않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얼른 산수유나무 밑으로 올라가라고는 했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살짝 넋을 잃은 아이들이라, 하나하나 손을 잡아서 나뭇잎이 빽빽한 산수유나무 밑으로 옮겨줘야 했죠.
그렇게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나서, 돗자리로 아이들 가방을 싸잡아서 옮기고, 가방을 하나하나 메어준 후에, 돗자리의 방수포를 위로 향하게 뒤집어서 간이 천막을 쳤습니다. 돗자리로 쓰는 방수포는 네 귀퉁이에 고리가 달려있어서 끈을 이으면 즉석 천막으로 변신할 수 있답니다.
천막이라고는 하지만 다섯 명이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반 평 남짓한 공간을 만들어줄 뿐이라서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했지만, 무섭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기에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비가 내리면서 기온도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체온 유지에도 좋죠.
그렇게 삼십 분 정도 내리는 비를 쳐다보며 작은 비막이 아래에 서있다 보니, "선생님 돌아가야 하지 않아요?" "얼마나 비가 더 와요?" 하는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지나가는 소나기인 것 같고, 우산도 없이 이 비를 다 맞으면서 가면 온몸이 홀딱 젖게 되어서 안된단다. 이럴 때는 비가 지나가거나 잦아들 때까지 비를 피하며 기다리는 게 제일 좋아"라고 알려주고, 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 긴장하기보다는 비 오는 것을 즐기며 천막 귀퉁이를 가지고 노는 등, 장난치기에 바빴죠.
그러던 중, 물에 앉아서 놀던 정규가 춥다고 하길래, 우선은 급한 대로 교사의 잠바를 꺼내어 입혀주었습니다. 커서 아이의 종아리까지 덮이는 크기이지만, 체온을 유지하기에는 나쁘지 않죠. 비가 그친 이후에는 현선이가 가져왔던 방풍 잠바를 입혀주었습니다. 정규 외에, 춥다고 하는 아이는 없더군요.
한참을 그렇게 비막이 아래에서 수다 떨며 서있다가, 비가 그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비가 꽤 내리기는 했었지만, 계곡물이 불어날 정도의 양은 아니었고, 불어나더라도 최소 한두 시간은 필요하기 때문에, 위험할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계곡으로 다시 내려가서 놀이도구들을 씻어내고, 손과 발을 씻은 후에, 천천히 산길을 따라 엄마들이 기다리시는 공원으로 돌아갔답니다.
어제처럼 갑자기, 예보도 없이 내리는 소나기는, 거의 예외 없이 15분 ~ 30분 정도 내리다가 그친답니다. 그래서, 혹시 산속이나 야외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게 된다면, 무조건 가장 가까운 처마 밑이나 커다란 나무 아래로 숨어서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죠.
대부분의 여름 장마가 시간당 20~40미리 정도의 강한 비로 내리기 때문에 우산 없이 일 분만 빗속에 서있어도 속옷까지 완전히 젖을 수 있죠. 특히 숲 속에서 홀딱 젖어버린다면, 한여름이라도 추위에 떨 수 있고, 아이라면 추위가 심해지면서 두려움도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급하더라도 비가 지나갈 때까지는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어제는 예보에 없던 여름 소나기까지 맞으며 조금은 특별한 숲체험을 하고 왔답니다. ^^
-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