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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작은 모험

추석연휴, 아들과 함께한 작은 여행

한시 넘어서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일곱 시쯤 눈이 떠졌다. 뻐근한 온몸을 조금씩 풀며 마루에 다시 누어서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아드님이 나타나셨다. 눈짓을 하며 팔을 벌리니, 자연스레 팔베개를 하고 옆에 누으심.


순간 뭔가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학교 가는 것처럼 지금 나가볼까? 그 대신 학교는 가지 않고 너 가고 싶은 곳으로 아무렇게나 가는 거 어때?”

“좋아! 그래 가자”

“오케이, 그럼 빨리 씻고 나가자”

“오케이~”


그렇게 아들과 나만의 작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핸드폰과 약간의 현금을 챙긴 후에 집을 나서니 8시 30분이 조금 안 된 시간.


평소 같았으면 학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만한 시간이지만, 오늘은 추석연휴, 우리 가족 스타일대로라면 널브러져서 각자 자유시간을 갖으며 뒹굴 시간... 하지만 오늘은 왠지 대모험의 날. 아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살짝 발그레한 느낌, 오늘은, 그동안 학교에 데려다줄 때마다 늘 그렇게 아들이 원했던, “다른 데 가는 날”이다.


평소 같았으면 분속 십 미터쯤 되는 느림의 끝으로 터벅터벅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겠지만, 오늘은 왠지 아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나는, 바뀐 아들의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아들의 템포와 분위기에 맞추며 아들이 가자는 대로 간다.


그렇게 정해진 오늘의 일차 목적지는 ‘이마트‘ 이유는 묻지도 않고 그냥 가자는 대로 갔다.

연휴 아침녁이라 사람은 적었고, 한내천 산책로에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살짝 더워지기 시작하는 아침나절, 징검다리를 건너고, 꽃과 단풍 든 나뭇잎들, 바닥에 떨어진 노란 벚나무단풍들을 밟으며, 그렇게, 우선 이마트 근처에 도착했다.


이마트 근처 가게 중 핫플이라면, 역시 무인가게, 두 평 남짓한 군것질용 무인가게, 아들의 최애장소 중 하나.


들어가서 뭘 먹을까 한참을 둘러봤지만, 딱히 먹을 것은 없어 보였다. 대략, 아들은 포카리를 나는 커피를 하나 사들고, 뭔지 모를 녹색 과자를 한 봉지 사서, 아무도 없는 무인가게 안에서 이런저런 모험가득한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고 마셨다. 아들이 골랐지만, 과자는 내가 다 먹음. 아드님은 입맛이 까탈스러우신 편이심.

그렇게 잠시 에어컨바람 아래에서 잠시 쉰 후에 도착한 이마트는, 아직 영업 전이었다. 영업시작까지는 아직 한 시간, 어쩔까 하고 아들과 잠시 의논하다가, 아들의 손에 이끌려 뽑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고, 사천 원을 써가며 인형 하나를 뽑으려다 실패하고, 펀치를 각각 한 번씩 쳐본 후에 파리바게트엘 갔다. 뽑기 마니아신 아드님 엄마 몰래 뽑기 한 것을 또 하나의 버켓리스트 완성

배고프시다는 아드님의 말씀에 들른 파리바게트에서 쵸코우유와 소보로 빵을 하나 산 후, 이제 막 영업준비를 시작한 쌀국수가게 앞의 의자에서 맛있게 나눠먹은 후에, 마침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의 계획은 집에서 하차 후 귀가, 아드님의 계획은 버스종점까지 가서 놀다가 오기. 종점까지는 버스로 30분 거리여서, 무리라고 하고, 대신 집을 몇 정거장 지나는 지점에 있는 업싸이클링 아트센터엘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들과 업싸이클링 아트센터에 도착해서 문을 열어보니, 아직은 오픈준비 중, 역시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일렀지만, 일하시는 분의 배려로, 우선 일층의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소파에 앉아서 잠시 쉬며 멍 때리기를 하기로 했다. 참고로 멍 때리기는 우리 부자의 최애 개인활동 중 하나.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오픈시간이 지난 후부터 우리 부자는 당당하게 지하 1층 ~ 지상 3층을 둘러보며, 사람 하나 없는 건물을 샅샅이 뒤지며 나름의 모험을 하고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고, 11시가 다 되어 센터를 나온 후, 바로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아들이 원한 목적지는, 아들 최애 서점. 참고로 아드님은 학습만화 마니아시고 컬렉터시기도 하시다. 오늘 아드님의 목적은 마법천자문 56권, 얼마 전 55권을 구매하셨는데, 부록이며 여러 가지로 꽤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서점에 도착해서 원하시던 마법천자문을 사시고, 서점 옆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추석 전을 함께 고른 후에, 가장 빠른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들은 오래간만에 ‘대모험’이란 제목으로 일기장 한 장을 꽉꽉 채워서 일기를 썼다.

아드님의 ‘대모험’ 그림, 난해하다.

왠지, 묵은 숙변이 빠져나간 듯, 시원한 그런 경험이었다. 물론, 엄마 몰래 나갔다가 왔다고, 배신이라고 엄마에게 꽤나 핀잔을 들었지만, 무릎 꿇고 싹싹 빌어서 금세 문제 해결.


오늘은, 그냥 이렇게, 남기고 싶은 오늘의 일을 남기고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남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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