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들과 도토리숲에서 놀다 왔어요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고 할만한 날이었습니다. 햇빛은 따갑고 바람은 선선하고 계곡물은 차가운 계절이죠. 처음 호암산에 찾아온 다섯 살 아이들과 선선하게 숲길을 걸으며 놀기 좋은 날이었습니다.
보통 첫날이면 낯을 많이 가리고, 말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오늘 아이들은 거침이 없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공원을 한 바퀴 돌며 긴장을 푼 후에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맨 처음 아이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흙이었던 것 같습니다. 낙엽이 쌓이고 벌레들과 버섯들이 만들어놓은 영양이 가득한 부엽토가 좋았던가 봅니다.
조심스럽게 삽으로 흙을 파더니, 물과 섞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어머님들께 부탁해서 물을 길어오고, 그 물을 잔뜩 넣어서 순식간에 부엽토 죽이 만들어졌죠.
부엽토는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건강상 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미생물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몸을 튼튼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떤 놀이가 자신에게 좋은지 아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 한참 숲길 한가운데서 놀다 보니, 슬슬 모기들이 꼬이기 시작하길래
“우리 물 있는데 가볼까?
“네~ 물 있는데 가요~”
아이들은 물을 참 좋아하죠. 특히 숲의 계곡물속에는 벌레며, 가재, 개구리 등등 가지고 놀 것들이 많아서 더 그렇습니다. 본능적으로 그걸 아는지, 아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계곡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숲길을 따라, 물을 찾아 걷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여기 도토리숲이 있네? 우리 도토리숲 갈까?”
“아뇨, 물 있는데 가요”
“그래, 그럼 일루 가자”
물 있는 곳부터 가자는 아이들을 모시고, 살짝 길을 꺾어서 도토리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놀자는 데로 노는 것도 좋겠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 다섯 살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물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지나치게 추워질 수도 있거든요.
대부분, 숲에 처음 오는 다섯 살 아이들은 계곡에서 논 경험이 적어서, 아직 몸이 계곡 놀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물에서 넘어지고 빠지고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가을날 너무 오랫동안 물놀이를 하는 것은 좋지 않죠.
물에 빠지는 것 자체는 크게 나쁠 게 없겠지만, 빠지고 나서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오래 논다면, 그늘로 뒤덮인 숲속 계곡에서는 체온이 지나치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서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온의 저하는 면역력의 저하와 체력 저하를 동반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은근슬쩍 도토리숲에 데려간 아이들에게 통나무 한 덩어리를 소개해 줬습니다. 통나무라고는 하지만, 잘라진 지 오래된 것이라, 거의 스펀지에 가까운 구조를 갖게 된 녀석이죠. 숲의 바닥에 떨어진 나무들은 벌레와 균류의 도움으로 점점 부드러워지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거의 80% 정도 토양화가 진행된 통나무였습니다. 이런 통나무는 딱정벌레들의 집으로도 사용되죠.
나무를 들어보라고 하니, 주저 없이 팔을 뻗어 들어 올렸는데, 우선, 생각보다 너무 가벼운 나무의 무게에 놀라는 것 같았고, 또 너무 쉽게 부서지는 나무의 경도에
"내가 이렇게 힘이 센가??"
하는 듯, 급 흥분하기 시작하더군요. 이때다 싶어서, 나무에 밧줄을 두 개 묶고 끌고 다녀보라 했더니, 신이 나서 도토리숲 여기저기를 한참 동안 끌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부서진 통나무와 한참을 놀고, 끌고 다니던 통나무를 나무에 매달아서 또 잠깐 논 후에 계곡으로 갔습니다.
계곡이라고는 하지만, 다섯 살 아이들 무릎도 미치지 못하는 얕은 물이죠. 그래도 어린 버들치들이 꽤나 돌아다녔습니다.
“야~ 저기 물고기 있다”
“어디요? 어디?”
”저~기 있네, 한번 잡아봐라 “
“네~”
첨벙첨벙 차가운 계곡물을 디뎌가며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다섯 살 아이들에게 잡힐 버들치들이 아니죠. 바위틈 근처에만 있어서 뜰채로 잡기도 쉽지 않답니다.
그렇게, 잠시 계곡 맛을 좀 보게 해 준 후에, 천천히 꽃밭을 지나 공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꽃밭에는 벌개미취가 한창이더군요. 한창 씨앗을 만들 때라, 아이들에게 씨앗을 보여주며 천천히 놀면서 오늘의 수업을 마무리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