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을 도토리숲에서 뒹굴뒹굴

느긋하게 도토리숲을 즐기다 왔어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맑은 가을날이었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느긋하게 놀기에 좋은 날씨였죠.


오늘 같은 날에는 도토리숲에서 밧줄 놀이를 하며 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짧은 밧줄 두 개와 긴 밧줄 하나를 부대장 가방에 넣고, 혹시 몰라서 대장 가방에는 계곡놀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둔 채 아이들과 숲으로 향했습니다.


준비운동을 하고, 대장을 뽑기 위해, 오늘은 ‘아재개그 배틀‘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원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죠,


그런데, 수업 전 놀이터에서는 줄줄줄 끊임없이 나오던 아재개그가 배틀을 한다고 하니, 긴장했는지 제대로 나오지 않더군요. 승부욕 때문이었을까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정체불명의 질문과 대답이 오갔었고, 결국 4:2로 선희 승! 대장은 선희가 맡기로 했습니다.


대장 정하기를 하기 전에, 진 사람이 부대장을 하는 게 조건이었는데, 은서는 부대장을 하기 싫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응석을 부리기 시작하더군요. 아마도, 맨 뒤에서 따라오는 게 무서워서 그랬지 않을까 짐작은 했지만, 규칙에 예외는 없죠.


갑작스러운 은서의 행동에 다들 조금 당황해했었고. 은서에게 ‘분명히 약속을 했었었다’는 말도 해보고, 달래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은서도 알고 있었겠지만, 맨 뒤에서 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어떻게든 상황을 피해보려고 한 것이겠죠. 이럴 때, 아이에게 지나친 압박을 가하는 것보다는, 가능한 대안을 찾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강제하거나 따진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은서 대신 부대장 할 사람~?”

“...”

“누구 한 명은 부대장을 해야 하는데~?”

...

“제가 할게요~!”

정연이가, 안타까움을 해결하겠다는, 의지 가득한 얼굴로 대답하고, 은서의 가방을 넘겨받고, 맨 뒤에서 부대장 역할을 해주기로 했었습니다.

“고마워”

“아니야, 괜찮아”


그렇게, 오늘 아이들과 제일 먼저 갔었던 곳은, 공원 위쪽의 조그마한 야생화 꽃밭이었습니다. 뚱딴지와 벌개미취가 아직도 한창인 곳이죠.


화단 입구에 있는 교육용 패널을 보며 꽃 이름을 한번 주욱 읽어보더니

“무슨 꽃 이름이 뚱딴지예요?”

“그러게, 재는 이름이 그렇다네”

“왜 그렇게 되었데요?”

“글쎄,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꽃 이름을 가지고 잠시 이야기 나누고, 영글은 꽃씨를 튿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보기도 하며 잠시 꽃들과 놀다가, 다시 천천히 숲으로 향했습니다.


숲 입구의 여기저기를 오르내리며 어디서 놀지를 고민하던 아이들은

“선생님, 오늘은 도토리숲에서 노는 게 어때요?”

“좋지, 오늘 같은 날에는 도토리숲에서 놀면 좋아”

“맞아요, 오늘 나뭇잎침대 만들고 놀아요”

“그래~”

“그런데 선생님, 오늘 밧줄 가져오셨어요?”

“어, 세동 가져왔지”

“와~~! 잘 됐다~~! 우리 그네 만들고 놀아요~! “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늘은 도토리숲에서 놀게 되었었습니다. 마침 가져간 밧줄이 제 몫을 단단히 하게 되었었죠.


그런데, 여름 내내 계곡에서만 놀았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도토리숲에 들어가 보라는 말에, 주춤주춤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기만 하더군요.


가득하게 쌓여있는 낙엽들 때문인지, 숲을 가로질러서 가라고 몇 번을 말해도 자꾸 숲 가장자리를 따라 옆으로 돌기만 하길래, 교사가 앞장을 서고 아이들은 천천히 따라오게 하며, 오랜만에 도토리숲의 한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숲에 들어가 보니, 전에 만들었던 나뭇잎침대는 산산이 부서져서, 어렴풋이 침대가 있던 자리만 알아볼 수 있게 변해있었습니다.


너무 망가진 침대를 고치는 게 힘들겠다고 판단했던지, 침대를 만들자는 말은 쏙 사라지고, 그렇게, 몇몇은 땅을 파고 돌을 끄집어내는 놀이로, 다른 아이들은 줄에 매달려서 그네 타는 놀이로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널찍한 바위에 누어서 쉬기도 하고, 밧줄로 통나무를 묶어서 끌고 다니기도 하고, 오래돼서 푹신해진 통나무를 뜯어내며 속 안의 벌레를 관찰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느긋하게, 쉬엄쉬엄 오랜만에 찾아온 도토리숲에 천천히 적응하기를 시도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을 보내면서, 정연이와 주영이는 통나무로 집 짓기를 하며 놀고, 선희와 은서는 그냥저냥 쉬다가 그네도 타다가 그렇게 뒹굴뒹굴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줄다리기를 하겠다고 하고, 갑자기 다 같이 어울려서 줄넘기도 하고, 림보에 매듭놀이도 하며, 놀이의 템포가 갑자기 빨라지더군요. 아마도, 한 시간가량 느긋하게 멍 때리 듯 놀면서 도토리숲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막판 삼십 분 정도는 처음보다 훨씬 더 활달하게, 시끌벅적하게 놀다가 보니 시간이 다 되어갔습니다.

"자~ 오분 있다가 정리 시작한다~"

“선생니임~ 더 놀아요, 네~?”

“그래~1분 더~”

“아이~ 선생님~”

“오케이~ 오분 더~, 대신, 짐 정리하고, 주변 정리하고 나서~“

그렇게 후다닥 주변을 정리하고, 도토리나무들과 몇 분 더 놀다가, 천천히 엄마들이 기다리시는 공원으로 돌아갔답니다.


정말 오랜만에, 계곡을 떠나 도토리숲에서 놀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안에서 '편안함'이 보이더군요. 그간 날씨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숲에 오면서, 점점 더 집처럼, 동네처럼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좋은 아빠는 어떤 아빠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