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여자아이 세명과 함께 숲의 계곡에서 놀다 왔어요
쌀쌀해지는 날씨,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있고 바람이 간간이 불었지만, 비는 오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숲은 축축하게 젖어있었죠.
준비운동을 마치고, 대장을 뽑고, 숲으로 가기까지 오늘도 한 십여 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간의 ‘아재개그배틀’로 한참을 떠들다가 겨우겨우 숲으로 향했죠. 오늘의 목적지는 지난번 자연 EM 만들기를 했던 숲속 계곡이었습니다.
대장이 앞장서고 아이들이 따라가면서 빠르게 남쪽으로 걸어서 금세 계곡에 도착할 수 있었죠.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칠 줄 알았는데,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짐을 내려놓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자연 EM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번 해본 일이라 손발이 척척 맞았죠.
지난번에 파 놓았던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물을 섞고, 한쪽에서는 공원에서 따온 주목열매를 물에 넣고 모종삽으로 주목열매액도 만들었답니다. 다들 꽤나 진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숲의 계곡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자연영양제를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죠.
아이들이 자연 EM을 만드는 동안, 교사는 한쪽에 모기향을 피워놓았습니다. 시월 중순이 되면, 모기가 정말 많아지죠. 아이들이 오 분만 앉아있어도 모기가 꼬이는 날씨여서,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등산용 모기향 통을 가져와서 피워봤습니다. 모기향을 피워놓으면 확실히 꼬여드는 모기의 양이 줄어들죠. 다분히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해서 앞으로도 가끔씩 피워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자연에게 줄 영양제를 만들어서 물에 뿌리기 시작하던 아이들은, 물에 퍼지는 흙물을 보며
“와~ 구름 같아”
“정말~ 저건 사슴이야”
“저건 뭐지~?”
“저건... 천사 같아~”
물의 흐름이 느려서 고요했던 계곡물속에서 느리게 퍼져나가는 황토색 흙물이, 정말 하늘의 구름 같더군요. 맑은 물의 표면 위로 숲의 나뭇가지들이 또렷하게 비쳐져 있어서, 마치, 나뭇가지들 사이로 모락모락 황토색 구름들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오늘은 숲속 조용한 계곡에서 꼬박 두 시간을 놀다 왔습니다. 누런 흙물을 끊임없이 만들고, 축복을 가득 담아서 맑은 계곡물과 함께 숲으로 흘려보내고, 반짝이는 규암 조각들을 사금 캐듯 모으기도 하고, 옆새우도 잡고, 그러다 보니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렸답니다.
“자 이제 오 분만 더 놀고, 슬슬 출발 준비하자”
“선생니~임, 안 돼요~”
“돌아갈 시간인데?”
“십 분만 더 놀다가 가요~ 네?”
“오케이 그럼 칠 분”
“아니요, 구부우운~~”
그렇게 남은 시간을 쪼개가며 아쉽게 놀이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서 빠른 걸음으로 엄마들이 기다리시는 공원으로 돌아갔답니다.
공원에 다다라서는
“우리 엄마들 몰래 가서 놀라게 해줄까?”
“그래그래~!”
“자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공원에 도착해서도 공원을 크게 빙 둘러 가며, 몰래몰래 엄마들에게 다가가면서 오늘의 숲놀이를 마무리 지었답니다.
어제 주영이 소식을 조금 들었습니다.
워낙 잘 지내리라 생각하고 있어서 별말을 안 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왜 내 이야기는 안 하시지? 나는 보고 싶지 않으신가?"
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주영이에게는
"매번 수업마다 '지희도 함께였으면...'하는 마음으로 숲길을 걷는단다"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언제나 씩씩하고 열심인 주영이의 맑은 얼굴이 선생님 가슴 속에 늘 함께 있다는 말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