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길을 배우다
삶이란, 결국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선택했거나,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에서 사람들은 기쁨을 얻고 자존감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들이죠. 인간이라는 존재는.
방금, 조용한 침대에 누어서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을 봤습니다. 얼마 전부터 넷플릭스에 보이기 시작했고, 자꾸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아서, 그냥 한번 봐보기로 하고 본 것인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다큐멘터리형식의 실화였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란 어떤 것일지, 우리의 삶이란 어떤 것일지, 게임이라는 색다른 배경을 통해서 한 걸음 더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영화였던 것 같네요.
근육수측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유복하고 사랑 가득한 집에서 태어난 마츠라는 청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병세는 더 악화되었고, 삶에서는 점점 더 멀어져 갔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았던 그는, 조금씩, 자연스럽게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현실의 고통과 함께하기보다 가상의, 자유롭고 멋진 몸속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요.
친절한 그의 가족들은 그의 이러함을 존중해 주고 지지해 줬죠. 그렇게, 그는 편안하게 그만의 가상현실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상현실 속 직업은 사립탐정이었습니다. 배경은 온라인 롤플레이 게임인 워크래프트.
탐정 이벨린 레드무어는 삶 속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일종의 해결사이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그의 게임 속 모습은, 어드바이저, 카운슬러에 가까웠습니다. 그를 만난 게임 속 캐릭터들이 털어놓은 고민들은, 게임 속의 가상 고민들이 아니었죠. 자폐를 가진 아들과의 관계, 게임을 못하게 하는 부모와의 관계 등등, 그들이 가진 실제 삶 속의 괴로움을 털어놓으면, 진지하고 따듯한 태도와 깊은 공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이벨린은 그렇게 그들과 함께하는 게임 속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그의 신체적 특별한 삶의 상황 때문이었겠지만, 온전히 남들의 삶에 함께 들어가 주고,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특별한 해법들을 제시하는, 그런 빛과도 같은 존재로 발전해 갔고, 그런 그의 빛에 모여든 사람들은 ‘스타라이트‘라는 길드까지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세상 속의 길드, 함께 괴물을 물리치기도 하고 함께 파티를 하며 즐기기도 하는, 일종의 동호회 같은 것이죠.
그리고, 마츠는 게임 속에서 만난 한 소녀와 가상현실 속의 사랑까지 하게 됩니다.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현실 속의 그에게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일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마츠의 죽음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통해 그의 죽음을 전하려던 가족들은 무수하게 쏟아져내리며 애도의 이메일 물결 속에서 ‘워크래프트’ 게임 속 길드 ‘스타라이트’를 만나게 되고, 결국 스타라이트의 친구 다섯 명은 그의 장례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 마츠가 살던 북유럽의 다섯 나라에서 온 다섯 친구들이었죠. 그중에는 그가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마지막길을 함께하며 그의 관을 들고 운구차로 옮기는 역할을 맡아주었죠.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지만, 이 영화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이벨린이 게임 속에서 캐릭터들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한 일들과 이로 인해 발생한 이후의 현상들이었습니다.
이벨린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곁에서 마치 자신의 문제인 듯 깊은 고민을 함께 나누며, 함께 그들의 삶 속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영웅이었습니다.
사랑이 가득하고 남다른 배려심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마치 예수님과도 같은 존재였죠. 진심으로 주변 친구들의 괴로움을 함께했던 그는, 결국 그들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멘토로 자리 잡게 되었고, 주변 게이머들의 실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아름다운 존재로 성장해 갑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던 그것과도 같은, 조건 없는,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 편견 없는 사랑이었죠.
하지만, 결국, 마치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이벨린, 마츠는 그들의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행하셨던 부활의 기적처럼, 그의 죽음은 실제 삶과 게임 속 사람들을 이어주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그는 그의 장례식을 통해서 이벨린이나 마츠가 아닌 ‘마츠 이벨린이라는 존재로서, 양쪽 세상에 모두 존재하는 아름다운 존재로 실존했던 것이 되고, 그의 묘비명에 마츠 ’ 이벨린‘ 스텐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길드의 친구들이 참여했던 현실 속 장례식 이후에도, 길드 스타라이트는 매년 가상현실 속 이벨린의 묘역에 모여 그를 기리는 리투엘, 일종의 추도회를 갖게 됩니다. 이벨린은 그들의 진정한 영웅이자 친구였기 때문이죠.
오늘은 그렇게, 장난 삼아 본 영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된 날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독일에서 지냈던 십 년의 생활 속에서, 저는 마치 게임세상 속의 이벨린처럼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법을 찾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유럽의 삶 이면에는, 외로움으로 가득한 개인들이 존재하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치 성년식처럼 가족에게서 떠나 자신만의 새로운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거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가족 그 이상의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서른이 넘어가고 마흔이 넘어가도 가족에 치여서 살지만, 제가 머물렀던 독일이란 나라에서 가족은, 마치 멀리 사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이 훨씬 더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죠.
그런 곳에서, 동급생들보다 한참 연배가 있었지만, 외모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던 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해법을 함께 고민하던 그런 존재가 되어갔었습니다.
게임 속 이벨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저는 주변에 참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인들 만의 작은 섬 속에서 살며 유학생활을 하는데 반해, 저의 유학생활은 그렇게 완전히 외국인들과 섞이며 그들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졌죠. 마치 이벨린처럼 그 안에서 사랑에 빠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름 행복했던 삶을 살아가다가 십 년 만에 돌아온 고국 한국은, 제게는 너무도 낯설고 외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고국에서 제가 맞이했던 가장 첫 번째 감정은 ‘외로움’이었던 것 같아요.
수십 명의 친구들 사이에서 늘 따듯하게 지내던 저에게 한국은 차갑고 거친, 어쩌면 야수 같은 삶이 가득한 곳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태원에 가면,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숲을 다시 만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서, 저는 다시 조금씩 예전의 카운슬러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숲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 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 주고, 또, 그들의 부모가 털어놓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그렇게 다시 조금씩 예전처럼 행복해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저는 다시 한 여자와 사랑하게 되었고, 소중한 아들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마츠 이벨린의 삶을 바라보던 중에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괴로움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살아야겠다 ‘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무언가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그런 밤이었죠.
나의,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의 행복한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에 더 많은 집중을 하며 살아가야겠다는, 그런 저의 모습을 꿈꾸게 되는, 그런 밤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