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이들과 함께한 작은 모험
노란 단풍이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몇 번의 숲체험을 통해 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숲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익숙해진 아이들과 함께, 오늘은 조금 더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노는 숲체험을 해봤습니다.
지난번까지는 대장만 있었던 팀에 부대장까지 만들고, 각각 짐가방을 하나씩, 총 두 개의 짐가방을 들고 대장이 길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숲길을 걸어가 보았죠. 엄마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조용히 따라오기로 했습니다. 이제 곧 여섯 살이니, 슬슬 엄마 없이 숲에서 노는 법을 익힐 때가 되어서 그랬습니다. 중간중간 엄마 손을 잡고 싶다고도 하고, 엄마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는 했었지만, 대체적으로 혼자서 잘 놀며 역할을 수행하며 숲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다섯 살 아이들과 숲에서 놀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 목마르다 ‘ ’ 힘들다 ‘ ’ 이건 이랬으면 좋겠다 ‘ ’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놀자’ 등등 아이들은 움직이며 끊임없이 말을 하죠. 아이들의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목마르다’ ‘배고프다’는 말에는 즉각적으로 응해주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으면서 자주 쉰다고 숲체험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날 가기로 한 목적지에 가는 것이나, 하기로 한 놀이를 하는 것보다는, 지금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숲에 있어도 편하게 놀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숲길 가에 앉아서 물 마시는 것도, 쉬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숲체험이고 자연체험입니다. 교실에 앉으면, 교과서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들이 배움의 유일한 도구일 수 있겠지만, 숲은 그 자체가 교과서 같은 것이라서, 마치 교과서로 이루어진 메타버스 속에 있는 것처럼, 그 안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활동목적의 70% 이상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나머지 30%가 훨씬 더 많은 기쁨을 주기는 하겠지만, 가만히 머무르고만 있어도 기본적인 것들, 중요한 것들은 충분히 가져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오늘은 아이들이 앞장서고, 교사는 뒤에서 따라가며 숲길 여기저기를 걸었습니다. 태양의 위치를 알려주고, 태양의 방향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비교하며 숲길을 걷는 방법도 알려주었죠. 태양은 지구와 아주아주 멀리 있고, 그 거리에 비해 지구라는 존재는 하나의 점에 가까워서, 지구상에서 우리가 움직인다고 태양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에, 태양의 위치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한번 정해두면, 구름이 끼기 전까지는 방향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답니다.
다섯 살 아이들에게 너무 과한 과제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웠던 것들에 비한다면 태양의 위치를 통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체크하는 정도의 과제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아닐까요?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있어서 어른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힘들어하는 외국어 배우기만 보더라도 그렇죠. 아이들은 그냥 외국에 풀어만 놔도 외국 아이들과 한두 시간 안에 대화를 하며 놀기 시작합니다. 세균에 대한 면역적응력도 그렇죠. 어른이라면 일주일 이상 끙끙 앓아야 할 균이 침입을 하더라도, 멀쩡하게 아프지 않고 지나가면서 해당균의 항체를 형성하는 능력이 다섯 살 아이들에게는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숲길 속에서 방향감각 늘리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아이들은 배움에 있어서는 타고났거든요.
그렇게 태양을 길앞잡이 삼아서 걸어가던 길 위에서 노란 은행나무들도 만나고, 노랗게 물든 칡 잎, 도토리나무 잎 들도 만나며, 천천히 숲길을 걸어서 바위의 숲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목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는 주인을 잃어버려서 숲속을 헤매고 있는 작은 들개도 만났답니다. 아직 목에 목줄이 달려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비쩍 말라있는 모습이, 몇 주는 굶은 것 같더군요. 주인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아마도 혹독하고 추운 겨울을 버텨내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한겨울의 숲에서 먹잇감을 찾는다는 것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교사 혼자서 만났더라면, 숲길 어딘가에 묶어두고 119에 신고해서 데려가라고 하면 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숲체험을 하던 중이라,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정이 딱해 보이기는 했지만, 멀리 쫓아버렸습니다. 아마도 아이들 과자 냄새를 맡고 왔을 텐데, 어차피 과자 몇 개로 그 개의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디 너무 늦기 전에 소방대원에게 발견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떠돌이 강아지를 쫓아버린 후, 아이들과 함께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깊은 숲속에 있는 작은 실개천 같은 곳인데, 아이들이 물과 흙을 섞어가며 놀기에 좋은 곳이죠.
가져간 삽과 바가지를 풀어놓고 어떻게 노나 보았더니, 한 아이는 물길을 막는 댐을 만들고 다른 아이는 바가지에 나뭇잎과 흙과 물을 담아서 ‘어항’이라며 가지고 놀았습니다.
“물고기가 어디에 있어?”
“여기 있잖아 이거”
“그건 나뭇잎이잖아~”
“에이 이거 물고기야~”
아이의 맑은 상상력 속에서 도토리 나뭇잎들이 물고기로 살아났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흙과 물, 돌멩이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 이제 다른 곳에 가볼까?”
“싫어요, 여기서 더 놀아요”
“우리 바위들이랑 놀아볼까?”
“좋아요~”
“자, 열 셀 때까지 짐 챙기고 가방 메세요”
“네~”
얌전한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짐을 정리하고, 가방을 메고 나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었습니다. 바위들과 놀자고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안 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우리 바위랑 놀면 집에 못 갈 것 같은데, 바위랑 놀까, 그냥 갈까?”
“그럼, 그냥 가요”
“그래~ 대장부터 천천히 내려가세요~”
그렇게 오늘은 깊은 숲속에서 주인 잃은 강아지도 만나고 계곡의 차가운 물과 돌멩이들, 모래알들도 만나고, 노랗게 단풍 든 도토리나무들과 은행나무도 만나면서 함께 잘 놀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