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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구속

매일 10분 동안 꾸준히 하기의 기적

자유란 무엇인가?


과연 사람들은 자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유인이란 단순히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바를 마음대로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고자 하는 바를 얻어내는 권리 또는 능력을 가진 자를 자유인이라고 하는가?


자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상태이다.


조선시대에 노비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노비는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조선시대를 자유시대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다.


어떤 면에서,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도 자유는 제한된다. 회사원이 진급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 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우리 사회에 아직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처럼 법적으로 신분이동이 완전히 차단되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자유대한민국이다. 최소한 가능성의 문이 열려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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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고자 하는 목표대상을 얻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단기적 쾌락이나 괴로움을 극복해야 한다. 다이어트가 그렇고 자격증 취득이 그렇다. 온몸을 근육으로 치장하고 싶다면, 수년간의 피나는 노력을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선택이라는 자유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고통 속에 가둬 넣는다. 두려움과 의심, 외로움을 극복해 가며 본능적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의지는 뇌의 기본작동기조에 반하는 행위다. 우리 뇌는 우리의 몸과 정신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있기 때문이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으며, 누우면 넷플이라도 보면서 과자를 입에 넣어줘야 만족스럽도록 뇌는 작동한다.


그래서, 뇌가 유혹하는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유는 철조망 건너편의 금덩어리 같은 존재다. 여기서 철조망은 휴전선을 의미한다. 넘어가려다가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최소한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은 가진 능력의 40%가 사용치의 한계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40%를 사용하는 것도 정말 죽을 둥 살 둥 살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40%를 넘어서서 60, 80%의 사용한도를 초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정도로 우리 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며 스스로를 밀어붙여야만 한다고 한다. 고통지수로 따지면 10이다. 1부터 10까지 중에 10. 마취를 하지 않고 외과수술을 받는 정도의 통증이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사실 공포와 고통은 뇌가 만들어내는 안전장치다. 말하자면 허상이다.


실제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반드시 실제상황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마치, 전자식 속도계와 같다. 조절하기에 따라서 시속 30을 60으로 표시할 수도 있다.


요즘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각종 안전장치들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런 장치들은 자동차의 능력치를 적정치로 제어하여 고장을 방지하고 사고를 예방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자동차의 능력치를 50% 정도의 선에서 저지한다. 안전을 위해서.


공포는 그렇다 치고 통증도? 그렇다. 통증도 그렇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통증은 환상통에 가깝다. 대부분은 통증부위의 신호가 뇌에 도달하기도 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그렇다.


고통과 공포는 그렇다 치고, 삶에는 많은 돌발상황이 늘 주기적으로 있다. 그래서 뭘 하려고만 하면 무슨 일이 끼어들어서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다. 물론 이 역시 환상이다. 우리 삶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정도의 일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우리의 뇌가 우리를 편하게 받들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이다.


이 정도 되면, 뇌는 간신이자 역적이다. 우리는 이 역적간신을 늘 끼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지력을 발휘해서 뭔가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흔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나를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못한다. 왜? 바로 우리의 적이 우릴 너무도 잘 아는 우리의 뇌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이 그렇게 흔한 것이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극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여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으로, 이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 뇌는 실제로 우리의 의지와 싸우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해내고자 한다면, 내 안에 거주하며 나를 방해하고 해코지 하면서 절친인 듯 친절한 이 사기꾼을 경계해야 한다. 단 일초도 눈을 떼지 않고, 이놈이 어떻게 움직이나 하고 끈질기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명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뭐 하나라도 꾸준히 하는 루틴도 필요하다. 이런 루틴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루틴을 이어가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면, 그리고 단 한 번도 마음에 들만큼 해낸 적이 없고, 전형적인 작심삼일 스타일이라면.


당장 오늘부터 무언가, 하기 귀찮은 일을 매일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게 10분 동안 명상일 수도 있고, 독서일 수도 있고, 팔 굽혀 펴기나 108배, 뭐든 좋다. 조건은, 당장,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이건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어야 한다.


그걸 일주일, 한 달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한 달, 일 년, 이년이 넘어가다 보면,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아!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가능하구나”라고


내가 그랬다. 나도 전형적인 작심삼일 스타일인데, 뭐든 삼일 이상 지속해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속력이 강한 사람축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유가 그런 루틴들 때문이었다.


나의 루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08배다. 나는 매일 저녁 20분 동안 절을 한다. 알람을 맞춰놓고 한다. 108배 세기가 귀찮아서다.


절하면서 가끔 창문을 닫기도 하고, 우편물을 받기도 하고, 이런저런 짤막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20분 종이 칠 때까지 무조건 절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 수년 전부터 매일,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고 있다.


그러자,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살을 빼려고 하자 살이 빠졌고, 운동을 하려고 하자 몸이 좋아진다. 평생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안되던 일들인데, 이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게 그냥 된다. 하기로 하면 그냥 된다. 신기하다.


그래서, 만약 당신도 나처럼 작심삼일인 이라면, 뭐라도 좋으니 10분 정도 걸리는 단순한 일을 하나 정해서 해보라는 거다. 영어책 읽기가 될 수도 있고, 책 읽기가 될 수도 있고, 일기 쓰기가 될 수도 있다. 그 종류는 상관없다.


그렇게 한 이년 정도만 지속하고 나면, 어느새 뭐든 하기로 한 일은 끈질기게 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stay har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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