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가끔인 당신을 위한 등산화
숲체험교사 10년 이상, 등산 경력 40년이 다 되어가는 제 생각에 평범한 등산로에서 일 년에 한 번 숲에 갈까 말까 하는 일반인이 자연을 즐기기에, 등산화는 적절한 신발이 아닙니다. 등산화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등산화는 전문적인 등산을 위해 만들어진 신발 이랍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죠. 특히 바닥과 신발 전체가 두껍고 단단한 비브람 계열의 등산화는 바위가 많은 숲길을 오래 걷기 위해 만들어진 신발이죠. 그래서 등산화는 탱크에 가깝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그 안의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신발이 딱딱하면 오랜 시간 걸어도 발이 피곤하지 않고, 발가락을 보호해 주고 … 등의 등산화에 관련된 말들이 많이 흘러 다니더군요. 아마도 그런가 봅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거리산행에서 발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등산화가 발가락은 확실히 보호하겠지만, 대부분의 등산객들에게는 마치 축구하면서 갑옷을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그냥 설렁설렁, 동네 공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숲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등산화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지요.
생각해보세요. 중장갑을 온몸에 두르고 한바탕 축구를 한다면, 자잘한 타박상은 생기지 않을지 몰라도 온몸의 관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바닥이 돌덩이 같은 비블암계열의 중등산화는 지나치게 무겁습니다. 일반적인 운동화에 비해 2~3배는 더 무거운 느낌이라, 오래 걸으면 발목이 아릴 정도죠. 제 나이 오십이 넘고, 강도 높은 등산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비브람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되더군요.
예전, 80리터짜리 배낭에 밧줄을 그득 넣고 뛰어다니며 돌아다닐 때만 해도 등산화가 무겁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젠 일반인에 가까워진 것인가 봅니다. ^^
한여름 둘레길을 3~4시간 정도, 봄나들이에 가까운 하이킹을 하면서 탱크처럼 무겁고 단단한 신발을 신고 있으면 ~
덥고, 무겁고, 발목에 무리가 갑니다. 마치, 경차로 가볍게 다녀도 충분한 동내 마실을 거대한 랜드로버를 끌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기름만 많이 들고, 어디 주차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워낙 길이 잘 닦여있으니, 차에는 거의 손상이 없긴 하죠.
특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나 근력이 약하신 분들이라면, 무거운 등산화는 신발의 무게 때문에 넘어지기도 쉽습니다.
장갑차 같은 비블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고가 등산화가 두껍고 단단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꽤나 무겁고, 결과적으로 발바닥에 무게추를 하나씩 달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당연히 관절에 무리가 가죠. 중심 잡기가 힘들어서 낙상의 위험도 높아집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신발은 가벼울수록 몸에 무리가 덜 갑니다. 맨발에 가까울수록 좋죠.
마라톤화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장거리를 움직여야 한다면 신발은 최대한 가벼우면서 발바닥을 보호하고, 발에 착 붙어서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등산화를 신고 마라톤을 뛰면 어떻게 될까요? 발바닥, 발목, 무릎, 허리, 목까지 총체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발목이 부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등산을 자주 안 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중등산화를 신는 것 자체가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산에 자주 안 가니 신체발렌스도 불안하고, 근력도 모자라서 돌발적인 상황이나 가파른 길에서 불안하죠. 돌길에 익숙하지 않으니 중심 잡기는 더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철판을 깔아놓은 것 같은 비브람을 신고 걷는다면?
근력운동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휘발유를 등에 짊어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하는 최적의 하이킹신발은, 가벼운 운동화입니다. 마라톤화와 비슷하지만, 바닥은 조금 더 두껍고, 발 코가 너무 얇지 않은 신발, 보통 워킹화라고 하는 신발들이 이에 해당되겠죠. 그냥 동네에서 신으시는 집에 있는 운동화, 그게 딱입니다.
여름이면 샌들도 나쁘지 않지만, 발코가 잘 덮여있는 종류가 좋고, 언제든지 벗을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맨발 산행은 또 다른 묘미 이니까요.
하지만, 바닥이 너무 푹신한 신발은 오히려 발목에 과부하를 줄 수 있습니다. 땅을 디뎌도 바닥이 푹신하면 신발이 휘청거려서, 그 충격을 발목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등산샌들은 바닥만 딱딱한 재질로 덮여있고, 발이 닿는 부분은 부드러운 재질인 것이 많은데, 이런 신발은 또 그 사이에 뭐가 많이 껴서 안 좋더군요.
그래서, 한여름이라도 숲길을 몇 시간 걸으실 계획이라면, 가볍고 바닥이 어느 정도 단단한, 통풍 잘 되는 운동화가 좋습니다. 그냥 집에 있는 여름운동화 신고 산에 가시면 됩니다.
또 한 가지,
요즘 등산화 매장에 가보면 가벼운 등산화 들도 가끔 보입니다. 알록달록, 예쁘게 잘 만들어진 신발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이런 신발들 대부분이 암릉(릿지) 걷기를 위한 릿지화에 가까운 신발들입니다. 바닥이 암벽등반화 재질의 생고무라서 워킹화로는 부적합하죠.
릿지화는 바위에 쫙쫙 달라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 빼면, 일반 운동화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서 예쁘죠. 여성분들이 특히 좋아할 만합니다.
하지만, 릿지화는 바위접지력을 높이면서 바위 사이사이의 흙길도 걸을 수 있는 기능성에 포커스가 맞춰진 기능화입니다.
암릉에서는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멋진 신발이지만 하이킹신발로는 부적합하죠. 길 위의 돌멩이들에 너무 달라붙어서, 발바닥을 놓아주지 않으니, 자칫 발목을 삐끗하기 쉽답니다.
그래서 릿지화는 암벽화처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릿지(암릉) 구역을 만났을 때 꺼내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렇다면, 한겨울에는?
날이 춥다면, 좀 두툼하기만 하면 됩니다. 일반 털부츠도 나쁘지 않죠. 등산화는 아무리 두꺼워도 발이 시리지만, 털부츠, 특히 우레탄계열의 외피를 가진 털부츠는 방수, 보온성이 뛰어납니다. 한겨울에는 고어텍스고 뭐고 습기가 안 들어오고 내부온도가 안에 머무르는 신발이 제일 따듯하답니다.
이렇게 신발이 가볍고 쾌적하면, 훨씬 더 쾌적하고 안전하게 등산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볍고 편안하니까요. 거기에 등산스틱 1~2개 정도 준비하시면 더더욱 편하게 숲길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등산스틱 1개가 추가될 때마다 다리 하나가 더 늘어난다고 보시면 돼요. 조금 멍 때리며 걸어도 크게 문제없을 정도로 안전성이 올라갑니다.
물론, 눈이 가득 쌓이고 사방이 미끌거리는 한겨울의 산에 가신다면 아이젠을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중등산화가 필요합니다. 최소한 아이젠 장착이 가능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웬만한 겨울부츠나 운동화에도 장착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한겨울 눈 내린 숲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죠.
눈 내린 겨울산은 준 전문가들의 영역입니다. 만약 눈 덮인 설산 속에서 자연을 즐기실 계획이시라면, 반드시 겨울산 경험이 많은 준전문가 수준의 등산인들과 동행하시기를 권합니다. 겨울산은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제 생각에는, 만약 여러분이 백두대간 종주를 앞두고 계시거나, 눈 내린 한겨울에 가파른 돌길을 걸으실 계획이 아니시라면, 고가의 등산화는 신지 않으시는 것을 더 추천합니다.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 쾌적한 산행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동내 마실을 잠깐 다녀오더라도 나는 무조건 초대형, 험로용 지프나 랜드로버를 운전하고 싶으시다면, 문제 될 것은 역시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기분'이니까요.
패션 히피라는 말을 아시나요? 살아가는 방식은 평범한 일반인이지만, 히피의 스타일이 좋아서 히피처럼 하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패션 바이커도 있고, 패션 등산가도 있죠.
등반 경험은 별로 없고, 그나마 일 년에 한 번 산에 갈까 말까 하는 분이라도, 완전무장을 하실 수는 있습니다. 그냥 사고 싶은 마음과 돈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죠.
다만, 가로수길에 서있는 매끈한 험비처럼, 그냥 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