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 로팅 3주 차: 장난감과 비장난감

슴슴한 장난감

by 김은수

우리 집에는 장난감이 많다.

집안 전체가 아이들 장난감이고 놀이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려고 마음먹으면 어디서든 뭐 하나라도 꺼내온다. 그러고는 “우리 이건 칼이라고 하자”, “여기는 집이라고 하자” 하며 상상의 장난감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을 보면 인간은 뭐든 상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를 타고나는 듯하다.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에서는 인간의 이러한 상상력, 놀이의 힘이 바로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이 되게 한 본질로 본다. 놀이는 문화나 사상 이전에 있었으며 인류 진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마도 놀이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해 장난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얼마 전에 BODA 티브이에서 역사학자분들이 ‘잉여력이 문명을 만들었다 ‘는 말씀을 하시던데 격하게 공감했다).


헤더 몽고메리의 <유년기의 인류학>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서구 사회와 달리, 많은 문화권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144). 아이와 놀아주는 어른도 없다. 그런 경우는 보고된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Cross-cultural 연구에 의하면 오로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에서만 아이의 장난감과 물건들에 신경을 쓰고 아이와 상호 작용을 위한 놀이를 한다. 물론 놀이를 통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현대의 발달 심리학이 연구하는 내용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과의 놀이를 통해 분명히 얻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구 외 사회에서 아이들을 방치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나랑 놀자"라고 말하고 마주 앉아 놀지 않을 뿐, 어른을 모방하게 함으로써 (모델링하는 방식) 많은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런 모방-모델링은 따로 놀이 시간을 만들지 않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장난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 서구사회 문화권에서 장난감이 굳이 필요 없는 이유는 어른이 아이와 따로 놀이 시간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 시간을 못 만드는 걸수도 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그릇, 물컵, 옷걸이 같은 물건들이 장난감의 기능도 겸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장난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사방 도처에 널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분명 이들의 문화와는 다르고, 이미 많은 장난감과 아이템으로 가득한 공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공간을 비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큰 아이가 어릴 때는 지인들이 추천하는 장난감들을 사거나 선물 받아서 아이에게 주었다. 소리가 요란한 장난감도 있었고 빛이 반짝이는 장난감도 있었다. 아이는 특히 음악이 나오고 불 빛깔이 바뀌는 책을 참 좋아했었는데, 그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면 한참이고 나를 찾지도 않고 놀았었다. 그게 좋아서 아이에게 빛과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자주 사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안 그래도 상호작용이 힘들었던 첫째 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장난감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들어서 장난감에 많이 의존했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은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 장난감과 전집을 뒤지곤 했었다. 나의 불안과 죄책감을 달래느라 다른 데서 답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답은 그저 나와 아이 우리 둘 사이에 놓여있었는데도.


요즘 우리 아이들이 가장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변형 가능한 큰 블록 소파, 부드러운 스카프, 그리고 듀플로 같은 블록과 봉제 인형들이다. 블록, 천 다양한 크기의 용기와 같은 장난감을 ‘열린 장난감 open-ended toys’이라고 부르는데, 이 장난감으로 어떤 종류의 놀이든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또한 연필과 종이도 뭐든 그리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열린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집에 장난감이 여러 개일 필요가 없어진다. 블록, 천, 종이, 연필만 있으면 무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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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블록과 듀플로, 레고 그리고 스카프를 이용한 상상 놀이들


최근 알게 된 용어 중에 비장난감 untoy이라는 게 있는데, 이 말은 아동 심리학 학계에서 쓰이는 정식 용어는 아닌 듯하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의 독립 놀이 independent play를 돕기 위해 RIE (미국 유아동 교육계의 대모 마그다 거버 Magda Gerber가 제안한 육아법) 코치인 Janet Landsbury 블로그를 자주 보는데, 거기서 발견한 용어다. 나는 '언토이'라는 말이 놀이를 위해 그 용도를 바꾸면 뭐든 가능해진다는 무한성을 보여주는 단어라 자주 쓰고 있다. 장난감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엄마가 요리하는 부엌 한편에 앉아 빈 플라스틱 그릇과 스테인리스 용기, 국자 등으로 소꿉놀이 하며 놀던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언토이'라는 용어를 알자마자 내가 나도 모르게 엄마가 날 키운 방식으로 내 아이들을 키웠구나 생각하니 왠지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매일 밖에 나가서 산책하며 본 나뭇잎들과 그 움직이을 쫓던 아이의 눈, 그 눈을 보다가 떨어진 나뭇잎을 몇 개 주워주면 무조건 입에 넣으려고 해서 혼났던 기억들, 집에서 빨래를 개면 엉금엉금 기어와 빨래 바구니 속에 쏙 들어가 한참을 놀던 아이... 내 생각보다 '언토이'는 유년기를 풍성하게 해 준다.


물론 RIE에서 추천하는 장난감도 있다. 이 장난감들은 대부분 우리 집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아래 이미지를 보면 어떤 장난감들이 열린 장난감인지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Janet Lansbury Blog


'언토이'와 열린 장난감으로 자주 놀아본 아이들은 아무래도 바깥 어디를 가도 놀이에 대한 임기응변이 강하다 (encourages resourcefulness). 우리 아이들의 경우, 레스토랑을 가거나 비행기를 타도 태블릿이나 특별한 장난감을 가져가지 않는다. 물론 이제 아이들이 직접 외출 준비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외출용 가방에 따로 원하는 장난감을 넣는 경우는 예외다 (그런 경우라도 주로 챙기는 건 휴대용 체스판과 간단한 블록, 종이와 색연필, 스티커북, 책이 전부다). 특히 레스토랑은 아무것도 안 가져가서 잘 앉아 있다 오는데, 가끔 심심하면 볼펜으로 식탁에 미리 세팅된 휴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쌀보리 놀이를 하는 등 스스로 노는 법을 찾는다. 아직 4살인 둘째 아이는 이쑤시개나 수저 등으로 역할 놀이를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런 일상적인 물건을 장난감으로 활용하는 일이 익숙하다 보니 특별히 장난감을 더 요구하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각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고 아이들마다 기질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의 경우를 반드시 실천하시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번쯤 시도는 해볼 만하며, 특히 미디어 노출에서 아이를 떼어 놓고 싶은 분께는 꼭 추천드린다. 아이의 도파민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이런 '슴슴한' 장난감들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선물해 주면 아이들은 그보다 더 멋진 놀이를 나에게 보여주는 경우를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격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더욱 많아지는 게 이 세상을 위해 나아가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Janet Lansbury

https://www.janetlansbury.com/2013/11/7-gifts-that-encourage-child-directed-play/


참고 문헌:

- 하위징아, 요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이종인 옮김. 서울: 연암서가, 2018.

- Montgomery, Heather. 2008. An Introduction to Childhood: Anthropological Perspectives on Children’s Lives. Chichester, UK: Wiley-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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