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 로팅 2주 차: 놀이에 관하여

아이들과의 놀이에 대한 단상들

by 김은수

여름 방학 키드 로팅도 2주 차에 접어드니 슬슬 아이들도 심심하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이들의 '심심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해줄까?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텐데, 최근의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심심하다는 건 아이들 마음에 생기는 잔잔한 틈새다. 이 작은 틈새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가 말하는 '몰입 flow'의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다른 글에서 부모의 스캐폴딩 scaffolding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마 이런 순간이 부모의 스캐폴딩 기술이 필요한 때일 것이다. 아이가 심심해하는 순간 부모는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놀이를 제안할 수도 있지만 부모의 태도에서 불안감이 없어야 아이도 심심함을 불안하게 느끼지 않는다. 놀이에 있어서 부모가 행해야 하는 최초의 스캐폴딩은 아이에게 부모의 불안을 전달하지 않으면서 가볍게 아이의 무료함을 받아치는 기술일 것이다. '심심하다니 그것 참 멋지네!'라고 받아칠 수 있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첫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아이는 그저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책 읽을래'라고 말하며 책장 앞에 앉았다. 그러더니 오래도록 책 읽기에 몰입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옆에서 함께 책을 읽었을 뿐.


내가 놀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약간 뜨악한 표정이거나 의아하다는 얼굴로 질문을 퍼붓는다. 나는 놀이가 스스로 찾아서 행하는 기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굳이 부모가 함께 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오히려 부모가 개입하지 않는 놀이에서 아이들은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고 생각한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어른이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그레이 Peter Gray는 최근 폭증하는 청소년 우울증의 원인이 아이들이 어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 줄어든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논지의 글들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한데 작년 한 해 큰 히트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불안 세대>도 그중 하나다. 또한 실제로 자기 조절 self regulation 능력 발달에 부모의 개입 없이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도 많다. 심지어 아이들이 스스로 활동을 탐색하고 주도할 수 있는 비구조화된 자유 놀이를 통해 이후 생에서 자기 조절 능력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력, 인내심 등의 감정 조절에도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연구도 최근에 나오고 있다.


즉, 아이의 지루함에 늘 부모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법을 알고 있고 우리는 그런 아이들의 능력을 믿어주고 함께 ‘공존’할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집에서 키드 로팅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내가 아이들과 꼭 함께 놀지는 않기 때문이다. 형제끼리 잘 놀아서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형제 놀이는 사회적 놀이를 즐기는 둘째 아이에게는 좋지만 혼자 노는 걸 즐기는 솔로 플레이어 solo player 타입인 첫째 아이에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형제끼리 노는 시간도 있고 각자 노는 시간도 있다. 물론 나와 함께 하는 시간도 있지만 내가 하루 종일 아이들 옆을 지키며 놀이를 주도하거나 어울려 주지 않는다. 나 혼자 책도 읽고 간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아이들은 저 멀리서 자기만의 놀이를 하면서도 나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시간이 제법 많은 편이다.


나는 이런 시간을 갖기 위해 아이들의 놀이 초대에 "no"를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물론 차가운 어조로 "싫어"라고 하진 않는다. 다정한 거절을 연습하고 아이들에게도 거절당하는 연습을 시킨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는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지금은 엄마가 바쁘니까 30분 뒤에 놀아줄게"라는 말로 초대를 거절하거나, 혹은 "엄마가 지금은 글을 써야 해서 인형 놀이는 같이 할 수 없어. 하지만 네 곁에 있어 줄게"라고 말한다. 다정하게 거절하는 방식을 취하면 아이도 거부 반응이 크지 않고 또한 거절을 겪어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아이의 회복탄력성에 도움을 준다.


그럼 아이들과 상호 작용하는 기회가 적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지 않다. 아이들과의 상호 작용이 꼭 놀이하는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은 싫든 좋든 하루 종일 상호 작용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을 같이 한다는 건 그런 뜻이다. 부러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나누는 것이 많은 관계. 그것이 가족이다.


이 개념이 낯설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놀이의 영역을 넓게 보는 거다. 아이와 마주 앉아 인형 놀이하는 게 놀이의 다는 아닐 거라고 말이다. 아이 스스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기회가 된다면 그 어떤 것도 놀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와 빨래를 함께 개며 정리를 하는 행위도 놀이가 될 수 있고, 의미 없이 땅을 파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다. 놀이의 정의를 넓히면 아이와 잘 놀아주지 못했다는 부모의 죄책감에서 한결 쉽게 벗어날 수 있고 아이와 보내는 매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 요리하며 옆에 있는 아이와 수다 떠는 것도, 잠들기 전에 아이와 볼을 비비며 책을 읽는 시간도 모두 놀이의 시간이고 상호 작용의 순간들이다. 특별한 놀이 시간도 중요하지만 아이와 집에서 보내는 매 순간을 놀이처럼, 조금은 유머러스하고 장난스럽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이들과 논다는 건 힘들다. 내가 초보 부모였을 때도 애랑 노는 게 뭐가 힘드냐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미웠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내가 아이랑 노는 일로 앓는 소리를 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힘만 조금 빼면 할만해진다. 진짜 조금만 힘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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