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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l 03. 2017

자각의 양질 전환 법칙

감동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51)


'자각의 양질 전환 법칙' 
감동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일 있을 강연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이번 강연의 부제를 뭘로 할까 고민하다
다음과 같이 정했다.

'This is a based on true story' 
'이것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임대표가 '좀 웃긴다'면서
한마디 거든다.


"무슨 강연 제목이 그래?
영화 자막 같기도 면서...어쨌든 재밌네..."


글쎄...

나는 왜 그랬을까?

이유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일단 나는 이번 강연에서 '고답적'인 내용은
최대한 빼려고 한다. 


여기서 '고답적'이란 속세에 초연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고상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아파하는 현실은 생생한 삶의 현실이
우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지, 관념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불의한 것과의 싸움이 아니다.

두 번째로는 문제의 해답 역시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번 강연이 아무래도 청년들의 미래와
고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중간에 
애상보다 많은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튜브에는 소위 유명 지식인, 작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청년들을 위해서 
이런저런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런 '고상한' 담론, 현실성 없는 뻔한 이야기들로
청년들의 고민이 해결될까?


물론 나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자기 스스로여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늘 달나라 이야기라
놀림을 받았던 것 같다. 


왜냐? 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짚고 가자. 
일단 적어도 근대 이후 서양철학은 
끊임없는 '자아'의 발견, 확립, 해체의 
과정을 겪었다. 


지금도 그 과정은 반복되고 있다.
나는 현대 사회가 누리고 있는 일시적인
풍요들은 모두 근대적 자아를 찾아내려고
애썼던 자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에서 철학의 역할은
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나라, 불우한 근대화를
극복하고 빠르게 현대화되기를 갈구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바로 이 철학의 부재가 
걸림돌이었다. 


철학의 부재는 인식과 윤리, 정의의 가치를 
제대로 확립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출
채비조차 하지 못한 채 현실 속으로 뛰쳐나가야 
하는 청년들을 양산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른이 되어 기성세대가 됐다. 


'자아'보다는 '타자'와의 대결에 몰두했던
세대들이다. 청년들, 어린이들이 자아존중감이
낮다고? 그건 어른들이 그렇게 자라 왔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웠고...


이런 휘청거림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남을 욕하면서 자신을 세우는 사람이 
진정한 자아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아존중감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의 적인
삶의 철학이 형성되어야 한다. 


내가 서촌의 골목길에서 느끼고 
나누고 실천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이런 일상의 작고 소소한 가치들을
함께 나누려는 정신이다.


철학이 일상의 작고 소소한 공간 속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이야기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결국 그래서 '스토리'가 필요하다.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
이 시간과 공간을 함께 누비고 다니는
피가 도는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모든 인간의 이야기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알겠지만
하나의 극적 구조를 지닌다. 
바로 '스토리'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모르는 것에서 
감동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코카콜라 병이 떨어진
아프리카 부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그에게 코카콜라 병은 우리가 마시는
그런 병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지닐지
모른다. 그것이 비나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코카콜라 병은
신성한 물건이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하지만 이런 사례는 우리 삶 곳곳에 
스며 있다.

인식의 파라독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모르고 있는 경우를
경험한 적 없는가? 


가슴이 뛰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감동을 받고 싶다면 먼저 '인식'의 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가서 땀흘려 세상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감동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코카콜라 병이 
아니다. 감동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오고
그 현실에 인간의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구체성을 배우지 않고서는 
나에게 감동이란 선물은 찾아오지 않는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국은 우리 인생의 의미는
이 세 가지 점으로 이어진 삼각형에서
무게중심을 찾는 일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에 대한 시선이다.


그걸 거둬야 한다. 
정작 중요한 '나'에 관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 베일을 걷고 진정한 '나'와 만나야 한다.

자각에도 양질전환의 법칙이 존재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물이 100도씨에서 끓으며 기화되듯이
자각에도 100도씨를 끓게 만들 힘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 힘과 에너지는 각자의 몫!
누가 줄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다.

자각의 양질전화 법칙, 
그것은 자연스런 논리의 순환이다.


내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각도 스스로의 힘으로 
각자의 에너지로...


바로 이것이 내일 강연이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This is a based on true story'
이제부터는 당신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쓸 차례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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