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58)
요즘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어느 대기업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들었던 이야기 하나를 공개한다. 그의 이야기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어느 부서 아무개의 엄마인데요......'
이렇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자식의 상사에게 업무 중에 전화를 거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전화 내용은 회사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다. 전화를 걸어오는 대상은 절대다수가 어머니들이다. 그들의 불만과 푸념은 대충 이렇다.
'아니, 우리 아이가 왜 영업부에 가 있죠? 우리 아이는 그렇게 영업이나 하고 돌아다닐 아이가 아니에요. 기획실로 보내주세요!'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나는 예전에 '캥거루 맘'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사랑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왜 우리 사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 관대한가? 나의 호기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여성인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어머니와 딸의 관계라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모녀의 관계는 모자의 관계보다 훨씬 친밀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성인 어머니와 남성인 아들의 관계에서는 상호 간의 인지부조화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당연히 나중에 뒤통수를 맞는 건 역시 부모들이다. 그걸 알면서도 불나방이 불꽃을 좇아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날아드는 것과 같은 운명이다.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마초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믿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나이 오십을 넘긴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에 비친 내 몸부터 바라본다. 뱃살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 두 번 푸시업과 윗몸일으키기를 매일 반복하고 있는 덕에 그럭저럭 육체적으로도 남성성을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언제나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바라보면서 미소 짓고 싶다. 근육질로 탄탄한 몸매를 갖고 싶고, 팔뚝에는 전사의 문신이라도 새겨 넣고 싶다. 이미 내 헤어스타일, '모히칸'은 꽃무늬 머리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전사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 올드맨이 되어도 사자가 되는 꿈을 꾸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결국 나는 '남자 공부'를 더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다. 5년 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쓰면서 나는 우연히 문학적으로 명성을 떨친 남자 작가들의 연대기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 수가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남성 작가의 경우 아버지를 일찍 여의거나, 집안에서 거의 유명무실한 아버지를 둔 경우가 많았다.
교육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는 아들에게서 나타나는 상실감의 근원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심리적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서 창작에 몰두했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이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의 삶도 어쩌면 비슷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가정 내에서 아들은 크게 두 가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영웅의 상실과 아버지의 부재가 몰고 온 막중한 책임감으로부터 일탈하고 싶다는 욕망.
남자의 책으로 유명한 로버트 블라이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자신의 책 <무쇠 한스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아들에게 미치는 가장 나쁜 영향 중 하나로 이상의 상실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 배울 수 있는 존재, 귀감으로 삼을 만한 영웅과 신화가 사라져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귀감이 될 만한 공인을 찾지 못한 젊은이가 어떻게 자기 안에서 왕을 키우겠는가?
실제로 인류 문명 역사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언제나 공동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수천 년 전, 혹은 수 만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관계다. 수렵과 채집에서부터 농경사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아들은 늘 함께 일했다. 삶과 노동의 현장이 같았고, 그곳에서 그들은 끈끈한 인간애를 나눴다. 삶의 지혜가 전수되었던 곳도 책이 아니라 생생한 야성의 현장이었다. 때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냥감과 맞서 싸우면서 피를 철철 흘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라!
'미국에서도 1900년 무렵까지는 아버지의 약 90퍼센트가 여전히 농사일을 했다. 이런 사회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하루 내내 1년의 모든 계절 동안 지켜보았다. 아들이 더 이상 그것을 보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생길까?...아들이 아버지의 작업장을 보지 못하고 거기서 만드는 물건을 보지 못할 때, 아들은 과연 아버지를 영웅, 불의와 싸우는 투사, 성자, 백기사로 생각할 수 있을까?', 로버트 블라이 <무쇠 한스 이야기> 중에서
오디세우스는 목숨을 걸고 운명과 맞섰던 신화 속 영웅의 전형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그는 인생을 배웠다. 그가 배운 것은 결국 야성을 갖춘 남성에 대한 존재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가 모험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싸늘한 아내와 자식들의 첫인상 덕분에 그는 다시 20년 동안의 모험에 버금가는 두 번째 모험을 해야 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오디세우스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오디세우스, 즉 아버지의 부재를 보충하기 위해서 아테나 여신이 보여준 배려심 가득한 변신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자식 텔레마코스를 위해서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우스의 친구로 변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를 통해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부재를 어느 정도는 극복해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우리가 '멘토'(mentor)라 부르는 정신적 지도자, 조력자라는 개념은 텔레마코스를 지도하기 위해서 아테나 여신이 변신했던 오디세우스의 친구 이름이었다. 멘토가 '멘토'가 된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이 존재했다. 작은 가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빈틈에서부터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단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불신감이 아니라 사회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나이 든 세대들의 가치에 대한 반감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과 혁신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균형을 맞춰 굴러가야 하는 조직이나 사회에서 조화로운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단지 가정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삶의 지혜가 있었다. '고통 속에서 지혜를 얻다'(pathei mathos), 즉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더욱 성숙된 존재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진정한 '남자'로 키우려 했다.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을 향해서 '방패를 들고 당당히 돌아오라' 말할 수 있었던 어머니들의 자신감, 만약 '방패를 들 수 없거든, 방패 위에 실려서 돌아오라' 말할 수 있었던 처절한 숭고함, 바로 그것이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을 잉태했던 어머니들의 신념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부채질하는 사회, 남성성이 상실되어 가는 구조화된 모더니즘적 가치 체계, 그리고 생존과 직결된다 믿는 어머니들의 치열한 경쟁심, 도대체 어디서 '남자'가 제대로 설 자리가 있을까. 그것이 내가 '남자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출판사이면서 와인 바이기도 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