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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l 08. 2017

낭독의 힘

소리의 발견은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고도의 추상적 행위다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56)


'낭독은 낭독해본 사람만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


'낭독'이 은근한 인기를 끈지도

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쑥스럽다고, 어색하다고, 창피하다고,

여러 가지 변명을 해가면서 남들 앞에서

시 한 편, 책 한 구절 읽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낭독'을 하기 전과

한 다음, 즉 before와 after는 큰 차이를

가져오죠.


그건 뭐랄까...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직감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것에서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낭독' 속에는 각자 우리들이 추구하는

이상, 일상에서 바라는 것들이 언어라는

형태로 담기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입울 통해 소리의 형태로

외화되면서 당장 보이지 않는 소망들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낭독'의 효과와 힘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낭독을 하면 사려 깊게 되고, 임기응변에

대처할 수 있으며 언어생활도 윤택해질 수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통해 일본 사회는 낭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종의 '낭독 바람'이 일어나기도 했죠.


실제로 낭독하는 순간을 MRI로 촬영한

연구팀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 혈액의 공급이

활발해지고, 뇌신경세포의 70% 이상이 반응을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뇌가 낭독하는 순간

활발하게 반응했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가끔 경험하는 것이지만, 

영어로 된 책을 읽을 때 그냥 읽는 경우와

소리를 내서 읽는 경우가 다릅니다. 

문장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일부러 큰 소리를 내서 읽으면 

이해가 가지 않던 문장이 어느 순간에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언어를 통해서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것을

발설한다는 행위 자체가 학습량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많습니다. 


이것을 교육 방법론에서 '메타인지'라고 

하더군요. 인지를 초월한 인지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서 말을 하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극명하게 구분되고,

모른 것을 찾아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학습량이나 이해도 측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출처: 미국 NTL(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


뭐 저는 꼭 그런 학습량과 관련된

이야기 아니라도 '낭독'의 긍정적인

효과들을 많이 경험한 편입니다.

생활 속에서의 심리적 안정감이나

삶을 대하는 근원적인 자세 등에서

시 한 편, 문학의 좋은 한 구절을 

읊조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낭송의 밤' 행사는 저희가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시 낭송의 밤'을

조금 변형시킨 이벤트입니다. 

시라는 한정된 장르에 국한되지 말고

좀 더 범위를 넓혀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감각하는 다섯 가지 감각들 

중에서 소리를 이해하는 청각은 

다른 네 가지 감각보다 고도의 추상성이

발휘되는 행동입니다. 


맛, 냄새, 시각, 촉각과 청각을 잘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경치를 보고 감상을 

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이고

직감적인 파악입니다. 

순간적이고 전면적으로 일어나는 감각의

형태이죠. 


따듯한 물속에 들어갈 때의 포근함,

뜨거운 것에 손을 데었을 때 '앗 뜨거워'하고

소리치면서 손을 치우는 행위들을

순간적 감각의 반응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건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된장찌개의 맛을

하나하나 분절적으로 나눠서 맛보거나,

향수의 향기를 따로따로 맡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보다 감각이 발달한 동물들은

가능하겠죠. 


어쨌든 맛, 향기, 시각, 촉각 등의 

감각은 즉각적이고 전체적으로 감각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청각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웅장한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우리는 극장 한가운데에서

오페라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가 시작되고

잠시 후 주인공들의 아리아가 펼쳐집니다.

극장 안에는 온통 우리를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음악과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들려주는

음악이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분절된

음계가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하모니입니다.


쉽게 말해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하나의 음계는 하나의 소리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분절된 소리, 소리, 소리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하모니를 만들고

그걸 우리는 감상하고 있는 것이죠.


그림으로 치면, 소리라는 한 장의 그림이

마치 영화 속 장면들처럼 계속 이어지면서

활동사진, 즉 움직이는 장면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음악의 가장 밑바탕, 기초가 되는

그 분절적인 음계의 조합을 우리의 귀가

하나의 멜로디로 느끼고 감상을 한다는

듯입니다. 


청각이 고도의 추상적 행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때문에 아도르노 같은 사람은 미학 중에서

음악이 다른 어떤 장르의 예술들보다

상위의 개념이라 주장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소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 유치해 보이고

조금은 낯설다는 이유로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고도의 추상적 능력은 

방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깝지 않나요? 


'낭송의 밤'은 이런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남들 앞에서 말 한 번 하기가 부끄러워서

주저했던 분, 시 낭송이란 게 어색해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분들에게 적극 권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인생,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는 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PD)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와인 바(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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