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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l 04. 2017

미로를 닮은 미코노스의 골목길

‘하루키가 선택한 아름다운 에게 해의 작은 섬 ’

<월간 에세이>, 8월호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우천염천> 중에서



   여행을 하는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에게 여행의 즐거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막히게 우연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극적인 것들과의 만남일 것이다. 에게해의 작은 섬 미코노스(Mykonos)와의 만남이 그랬다. 에게 해에는 줄잡아 6천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들이다. 하도 섬들이 많아서 마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다 위에 섬들을 뿌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에게 해 한가운데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을 그리스 인들은 ‘키클라데스(Cyclades Islands)’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을 차지하는 델로스 섬 주변에 둥그렇게 원(cycle)을 그리듯 섬들이 모여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미노코스가 나에게 각별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연한 만남을 여행의 묘미라 칭송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던 섬이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미로와 같았던 골목길의 추억 때문이다. 하루키와 골목길은 나에게 묘한 뉘앙스를 지니며 어느 순간 하나로 모아지는 점이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고 돌아 어딘가에서 불쑥 작은 까페가 하나 튀어나오고, 그 까페 안에는 하루키가 대학 노트를 펼쳐놓고 볼펜을 꾹꾹 눌러가면서 소설 원고를 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이곳에 머문 것은 198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벌써 30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실제로 하루키에게 미코노스는 한계에 다다른 작가로서의 자신에게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섬이다. 위로가 되었고 조금은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되어주었던 섬이다. 당시로서는 낯설기만 한 미코노스라는 섬에 한 달 반이나 살면서 그리스인들의 여유와 에개 해의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우울한 애수나 과거지향적인 노스탤지어는 이런 미코노스라는 섬이 은연중에 안겨준 선물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인간과 그의 의식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고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하루키가 하루에도 여러 번 서성거렸을 미코노스의 골목길을 걸었다. 그가 지닌 낡은 구식 자동차 같은 감성에 매료된 나에게는 그의 흔적을 찾는 것 또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마치 그의 작품이 탄생한 흔적들을 찾아가는 묘한 재미까지 느껴진다. 미코노스의 골목길을 그렇게 걷다 보면 문뜩 뒤엉킨 실타래 속에 갇혀 있는 느낌도 든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미로 속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하지만 헤매는 순간도 감미로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미코노스가 아닐까. 무엇보다 이 작은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들의 색깔과 조화가 아름답다.



   원래 누군가 처음부터 이렇게 미로처럼 골목길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살면서 하나 둘 우연히 생겨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뭐가 됐든 미로처럼 생긴 그 작은 골목길들 사이에 들어서면 불안과 흥미가 교차한다. 골목길 저편으로 갑자기 요정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어느 곳으로 들어가도 왔던 길로 쉽게 빠져나올 것 같지 않다. 세 갈래, 네 갈래로 갈라진 골목길들이 쉼 없이 등장한다. 길이란 직선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무너뜨리는 곳도 있다. 흡사 뱀처럼 구부러지고 휘어진다. 길가에 늘어선 작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은 정신없이 골목길에 취한 관광객들의 마음을 홀리기라도 하듯이 진기한 물건들로 경쟁을 한다. 세상 모든 예쁜 잡동사니들을 다 끄집어내 늘어놓은 느낌도 든다. 이상한 나라, 혹은 동화의 세계에 온듯한 착각도 든다.


   하루키는 도대체 왜 이곳에서 <상실의 시대>를 집필하려 했을까?


   미코노스 섬을 방문하기 전부터 그것이 궁금했다. 섬나라에서 평생을 살던 사람이 다시 에게 해의 작은 섬으로 이동했다는 게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왠지 조금은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미노코스를 직접 가보기 전의 이야기다. 에게 해의 그리스 섬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무척이나 소박하고 자연적이다. 물론 여름 한 철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즌을 위해서 이곳저곳 꾸며낸 흔적도 느껴지지만 그런 인공미조차도 자연 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거친 바닷바람과 태양,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까지 미코노스에는 자연의 힘이 속살까지 느껴진다.


   에게 해의 석양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5시에서 7시에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말했던 시인도 있었다. 실제로 나는 그 시 한 편을 믿고 정확히 5시와 7시 사이에 에게 해를 건너 미코노스까지 오기도 했다. 때로는 이런 비이성적인 감성조차도 낭만이 되는 섬이 바로 미코노스가 아닐까. 신화가 지배하던 그 옛날부터 미코노스의 바람은 유명했다. 그래서 섬 곳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는 풍차가 세워져 있었다. 풍차를 돌려 곡식을 빻고 식량을 해결했던 섬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생활의 터전이었다. 이제는 5개의 풍차만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섬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골목길이 미로를 닮은 섬 미코노스. 서양에서 미로는 ‘라비린토스 Labyrinthos’라고 불렸다. 입구는 있지만 탈출구가 없는 미로 같은 감옥, 미궁을 뜻하는 단어다. 미노타우로스를 가뒀던 크노소스의 미궁이 가장 대표적인 라비린토스 중 하나다. 한때 프랑스 왕궁에서는 미로 형태의 정원을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그 미로 같은 정원 속에서 귀부인들은 남들의 시선을 피해가면서 낯선 남자와 정을 나누기도 했다. 수수께끼처럼 혼돈과 궁금증이 가득한 세상에서 올바른 이치를 탐구하겠다는 학자나 성직자들의 의지와 열정을 상징하는 도구로 라비린토스가 쓰인 적도 있다. 그래서 유럽의 오래된 대학이나 성당에는 미로의 상징물들이 아직도 존재하는 곳이 있다.

   라비린토스는 모양도 가지가지였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원형 미로도 있었고, 사각형 구조 속에 이리저리 길을 막고 복잡하게 탈출구를 감춰놓은 미로도 있었다. 형태가 뭐가 됐든 라비린토스는 은밀한 곳, 혹은 뭔가 소중한 것을 감춰놓은 장소를 의미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변하면서 성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존재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성스러움과 속된 것을 찾아 세상을 방랑했던 하루키에게도 어쩌면 미코노스의 골목길은 라비린토스가 아니었을까. 결국 미로 속에 무엇을 숨기느냐에 따라 미로는 보물 창고도 되고 때에 따라서는 지옥 같은 감옥도 될 수 있었다. 선택은 각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와인 바(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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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그리스를 만나다. 2016년 문화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선정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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