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 리뷰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59)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런 전쟁 영화는 처음 봤다.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답다. 장중하고 지적이고 치밀하다. 피 한 방울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도 긴장되고 잔인하며 장엄한 서사시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주목할 만한 주인공이 없어서, 피 튀기는 전투씬 하나 제대로 없어서, 과장된 극적 구성도 없어서, 영화는 대중성이 없다고들 한다. 한마디로 흥행에는 실패할 거란 얘기다. 그걸 알고 만든 영화인데 쪼잔하게 흥행성적표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스타급 주인공 하나 제대로 캐스팅하지 않았다. 가장 급이 나가는 배우는 톰 하디 정도인데 그도 스핏파이어 파일럿이라서 영화 내내 조종사 마스크를 끼고 있어 얼굴 몇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영화가 끝난다.
피 튀기는 전투씬 하나 없이 전쟁 영화에서 무슨 극적 갈등이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그건 애초부터 '당신들의 방식'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잔인했던 시절에 절대로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영화 내내 '도대체 왜 지금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나의 궁금증은 그것이었다. 불 켜진 극장을 나오면서 나의 머릿속에 맴도는 물음표들......
그 답을 찾는 과정 속에 영화를 만든 감독이 추구했던 희망의 푯대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낙관주의자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애써 희망의 근거를 찾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을 결코 포기 않았던 용기 있는 사람들의 영화. 나는 이런 영화가 좋다. 지금 우리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관이란 점에서도 마음에 든다. 이런 가치를 말하는 국내 감독이 없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940년 5월 10일 독일은 프랑스 국경 안으로 진격해 들어온다. 영국과 프랑스의 방어선은 예상을 깨고 아덴 숲 속을 뚫고 진격하는 독일의 기갑부대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불과 10여 일 만에 프랑스 북동부 지역들이 모조리 독일군 수중에 함락된다. 패주하는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덩케르크라고 하는 대서양 연안의 해안가 도시에 집결한다. 이미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깔레가
함락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전투에서는 전술이나 화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전사들의 사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연일 패주해야 했던 연합군들의 사기는 이미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 그렇게 덩케르크 해안가에 집결한 연합군 병사들이 40만 명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래서 재밌다. 갑자기 전진하던 독일군의 주력 기갑부대에 진격 정지 명령이 하달된다. 고지가 바로 코앞인데...... 명령을 내린 사람은 최고사령관 아돌프 히틀러. 야전 사령관들은 즉각 반대 의사를 담은 전문을 베를린으로 보낸다. 하지만 히틀러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훗날 역사가들은 만약 이때 히틀러가 공격 정지 명령을 철회하고 진격을 계속했다면 2차 대전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들 한다. 40만 명의 병력이 구석에 몰려 완전 궤멸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덩케르크'는 바로 이 역사적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기적 같이 해안가 40만 명의 군인들이 영국 본토로 구출되었던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삼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병력을 집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희망이 없는 절망의 순간에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었을까?
감독은 '해변'과 '바다'와 '하늘' 위에서 시간을 교묘히 재구성해서 숨 막혔던 전장의 현장을 기록한다. 40만 명이 오로지 탈출만이 살길이라 믿으며 자신들을 태울 보트가 오기를 산 송장처럼 기다리고 있는 저주받은 '해변'의 일주일을 축으로 해서 '바다'와 '하늘'에서의 서로 다른 시간들이 병렬적으로 교차된다. 흥미로운 것은 '해안'과 '바다'와 '하늘'에서의 시간이 각각 다르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해안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50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 속으로.
마치 타이머를 미리 재놓고 시계의 초침이째깍거리듯이 어느 한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 든다. 목표는 오직 하나다. 절망에 빠진 40만을 구출하라! 이 영화를 전쟁 영화의 명작에 올려놓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간의 재구성' 때문이다.
위기에 빠진 자국 군인들을 한 명이라도 구출시키기 위해 민간인들은 자신들의 배를 몰고 프랑스 해안가로 향한다. 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용감하게 노를 저어 나갔던 평범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하루가 주어져 있다.
참호 하나 제대로 없어 몸을 숨길 곳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는 덩케르크의 해안가에 독일의 주력 전폭기들이 연일 폭탄을 투하한다. 이런 무차별적인 해안가 폭격을 막아내기 위해 출격한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 파일럿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지 50분이다.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 바다에서의 하루, 해변가에서의 일주일과 교차된다.
마치 해안가 이름 없는 병사들의 일주일이 자기 나라 군인들을 구하기 위해 배를 몰고 도버해협을 건너온
평범한 영국인들의 하루와 맞먹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스핏파이어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주어진 50분은 가장 짧지만 극적이고 묵직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시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안과 바다, 그리고 하늘의 시간을 이렇게 재구성한 것이야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영화를 보통의 전쟁 영화 범주에서 벗어나게 한다. 영화 음악을 맡은 한스 짐머는 이런 감독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한 듯 시종일관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는 듯한 음향을 섞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런 긴장감은 다크나이트나 인셉션 등에서 이미 경험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삶이란 게 늘 이렇게 시간의 제약 속에 존재하며, 동시에 그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것이 인간의 의지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당시 이미 전투는 결판이 난 셈이었다. 2차 대전 당시 최고의 전투기 파일럿들에게 수여되는 에이스(Ace) 순위 목록을 보면, 1위부터 154위까지가 독일의 파일럿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당시 독일 공군의 주력기는 Bf109, 소위 메사슈미트라고 불리는 최정예 전투기다. 독일 최고의 항공 과학자 빌리 메서슈미트가 '작고 가볍고 단단하게'를 모토로 만든 이 전투기는 공중전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당할 자가 없었다.
845대의 메서슈미트를 포함해서 독일 공군은 숫적으로도 영국 공군을 압도했다. 2대 1의 숫적 열세 속에서 영국을 구한 전투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핏파이어'였다. 영화 '덩케르크'는 어찌 보면 스핏파이어에 대한 찬가라도 봐도 무방하다.50분밖에 날 수 없는 연료를 알면서도 조종사는 덩케르크 해안가를 떠나지 않는다. 그 무서운 전투기 메사슈미트가 오건 렌딩 기어 사이에 사이렌을 달아 '왜엥'하는 소리로 땅 위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고 갔던 급강하 폭격기 슈튜카가 오던 스핏파이어는 해안가를 떠나지 않는다. 오직 그들에게는 전우들이 있는 해안가를 지키겠다는 일념만이 있었다.
한마디로 영국을 구한 전투기가 바로 스핏파이어였다. 오죽했으면 처칠 수상이 전쟁 당시 스핏파이어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의를 표했을까.
"(영국 역사에서) 이토록 적은 수의 사람(파일럿들)에게 이토록 많은 수의 사람(영국시민들)이 신세를 진 적은 없었다."
실제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벌어진 일주일 동안 독일 측에서는 1,882기의 폭격기와 1,997기의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40만 명을 공중에서 궤멸시키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서 말이다. 이런 독일 공군에 맞서는 영국 공군 스핏파이어의 주력 부대는 도버 해협 근처에 주둔한 남부 방위군이 맡았다고 하는데 당시 그들의 출격 횟수는 놀랍게도 3,500회에 달한다.
당시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가 403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쉴 틈 없이 목숨을 건 비행이었다. 쉽게 말해서 하루 평균 500번의 출격을 403대의 스핏파이어가 담당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403대란 숫자는 영국 공군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스피파이어 전투기 숫자를 가리킨다. 영국 본토 공중전에 대비한 예비 전력을
감안한다면 대략 2,300대의 스핏파이어가 덩케르크의 해안가를 지켰다는 뜻인데.....출격하고 전투하고, 다시 복귀하고 곧바로 출격하지 않고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수치다.
정말 경이롭지 않은가! 어쩌면 전쟁의 역사는 이런 고결한 전사들의 자기희생 정신을 통해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 듯 영화 속에서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 연출의 수단으로 스핏파이어를 선택했다. 영화가 끊임없이 좌절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고 있는 결정적 부분이다.
누구나 시련이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위기와 시련을 통해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발전된 나라가 된다. '덩케르크'는 바로 최악의 시간을 돌파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힘들고 어려운 이 시기 속에서 나는 진정 희망의 푯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만약 당신도 당신 자신에게 희망의 근거에 대해서 묻고자 한다면 이 영화를 감상하길 바란다. 좌절이 됐건, 시련이 됐건, 고난이 됐건, 고통이 됐건, 아픔이 됐건, 그래서 뒤로 물러서야 했건, 포기하지 않는 자가 결국엔 승리한다.
'텅케르크' 철수 작전을 평가하는 처칠의 말은 그래서 가슴을 울린다.
"살아남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