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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Aug 16. 2017

철학이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인지 혁명 시대에 철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65) 

'철학이 답을 해야 할 차례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강연 준비로
좀 부산하게 며칠을 보냈습니다. 
예전에 읽던 책도 다시 꺼내서 읽고,
자료들도 다시 확인하면서 강연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만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이 많은 것을 입증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세상의 신비가
밝혀질 것이다. 
모르는 것이 사라지는 세상인데
왜 나는 더 불안해지고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도 커지는 것일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두뇌에 관해서
과학이 손을 댈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죠. 
첫째, 두뇌를 열고 관찰하고 실험 결과를
기록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어느 누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두뇌를
오픈하는 것에 선뜻 나설 수 있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연히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인간의 두뇌를
겉이 아니라 속 깊숙이 들여다 보고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두뇌의 노화와 관련된
연구들은 보통 30년을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노화와 두뇌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표본을 정하고 관찰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표본이 되는 대상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과연 어느 누가 쉽사리 연구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 그것도 30,40년을 
한곳에 머물 수 있을까요.

이런 한계들이 극복되는 시점이 대략
6,70년대입니다. 
특히 미국의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요.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창의적인 가설을 세우는 작업이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의 의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인간의 의식에 변화가 생기면 
인간의 육체에도 변화가 일어날까?' 

그들은 이런 가설을 세우고 연관된
실험들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엘렌 랭어
교수 연구팀은 실제로 이런 가정 하에
환경의 변화가 노인들의 의식과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험했습니다. 

1979년 뉴햄프셔 피터버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진행된 이 실험에서 연구팀은
1959년의 상황으로 시간을 되돌려 놓고
그 속에서 노인들이 생활하게 만들었습니다.
20년이나 시계를 뒤로 돌려놓은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실험은 일명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놀라웠습니다. 

성숙된 노년기의 두뇌 활동에 대해서 

평생을 연구해 온 미국의 정신과 의사 

진 코헨은 나이가 들어도 인간의 두뇌는 

퇴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폈습니다.


그에 의하면 뇌는 

결코 단 한번만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그는 노년기 두뇌 발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뇌는 경험과 학습에 반응하면서, 

지속적으로 새롭게 발전한다. 

둘째,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인간의 

뇌세포는 계속 생성된다. 

셋째, 나이가 들수록 뇌의 감정회로는 

점점 성숙해지고 균형을 이룬다. 

넷째,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두뇌의 

좌.우반구를 더 균형 있게 사용한다.


특히 인간의 뇌세포가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증식하지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거부하고 평생 동안 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 부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과학계에서는 

뇌의 신경세포는 결코 재생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뇌세포는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낼 수 없고, 

뉴런이 재생되지 않는다면 

두뇌의 기능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죠.


그러나 새로운 실험과 연구결과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가정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 MIT 공대의 

조셉 알트만 박사 연구팀이 쥐의 뇌를 관찰한 

결과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히포캠퍼스라는 뇌의 영역은 

기억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인데, 

다 자란 어른 쥐들의 히포캠퍼스에서도 

새로운 세포가 형성되고 있음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이 나이든 쥐들의 뇌에서 발견한 현상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쥐의 DNA는 

인간의 DNA와 90퍼센트 이상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나이든 쥐들의 뇌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성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인간의 두뇌에서도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두뇌의 기초 단위가 되는 뉴런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연구, Neurogenesis, 
신경발생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뇌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아 볼 수 있는 뇌스캐너와 유전자 분석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단지 추측만 가능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죠.

실제로 정신분석으로 유명한 프로이트 같은
사람도 두뇌는 노화될 뿐 새롭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신경발생 연구를 통해서 두뇌 역시
인간의 다른 신체 부위와 마찬가지로 계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오늘날 100세 시대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이런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나아가면 심지어 '인지혁명'에 의해서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해온 인지 발달의 속도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가 복제되고, 
사이보그처럼 인간의 신체와 장기가
재생되어질 수 있는 조건이 곧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죠. 

과학자들은 이미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계가 실제로 실현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들 합니다. 

나의 두뇌가 복제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시대.
인간 존재가
originality와 replica(복제)로 나뉘는
세상 속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남은 것은 이제 그런 질문들에
철학이 답을 하는 것뿐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내부에
공허함이 더욱 쌓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 철학은 건강한가요? 

철학은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변화된 세상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체 이후에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철학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질문을 포기할 수 없는 게
철학의 운명이겠죠. 
근대 이후에 '개념'을 만들어낸 
사회가 세상을 선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인지 혁명의 
시대에는 어쩌면 철학적인 해답을
찾아낸 사회가 세상을 선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좀 역설적이지만 
만약 테크놀러지가 고도화되어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철학을 대신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철학이 자신의 고유한 질문을
기계에 빼앗기는 시대까지도 염두에 둔,
그런 질문까지도 포함해서 말이죠.

어쨌든 철학은 서둘러 그 답을
찾아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황혼 녘이
되어서야 날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건 때가 늦은 감이 있습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출판사이면서  와인 바이기도 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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