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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Aug 17. 2017

옛날 영화는 이래서 좋다

영화 <대장 부리바> (1962) 리뷰

(리뷰) '대장 부리바'
Taras Bulba (1962)


이 영화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영화를 누구와 봤고, 어떻게 극장까지
가게 됐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러브스토리와 전투 씬 등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적어도 15세 이상 관람가 정도는
되는 영화인데, 1962년도에 제작된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는 게 논리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남영동에 있던
금성극장이란 곳에서 봤던 것 같다.
미국 개봉이 1962년이니 
한국에는 아마도 몇 년 후에 개봉이
된 것 같다. 추측한다면 대략 1970년 
정도에 본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나에게 이 영화는 두 가지가
선명히 기억된다. 그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은빛 빛나는 갑옷을 입은
토니 커티스가 총에 맞아 죽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총을 쏜 사람은 아버지로 등장하는
율 브린너. 조국을 배신한 아들을
스스로 총을 쏴서 죽이는 장면이었다.
친족살해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수긍이 간다. 
때는 16세기, 오스만 투르크가 
유럽을 침공하고 기세를 떨치던 시절.
유럽 입장에서는 말을 타고 전쟁을 
벌이는 기마병 중심의 투르크 족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던 상황에서
우크라이타 지방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카자크 족이 등장한다. 
이들 역시 유목민답게 말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남자들은 마초 기질이 있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여자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전쟁터에서도 나약한
유럽인들보다 훨씬 용맹했다. 

터키어로 '자유인, 전사, 모험'을 뜻하는 
카자크는 말 그대로 거칠고 용감한 
사나이들을 상징한다. 

영화 상에서는 말 한마디 때문에
두 남자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고,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주먹질과 몸싸움으로
남성미를 과시한다. 

이런 전근대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 있다. 나에겐 두 가지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로는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크리스틴 카우프만의 청순한 
이미지를 꼽을 수 있다. 

왕년에 '로미와 줄리엣'에서 나왔던 
올리비아 허쉬가 울고 갈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지닌 배우였다. 

운명의 장난처럼 여주인공 크리스틴 카우프만은
이 영화를 찍다가 토니 커티스와
눈이 맞아 곧바로 결혼을 한다. 

이후에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배우로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워낙 청순한 미모를 잘 간직한 덕에
화장품 회사를 만들고 비즈니스 워먼으로
성공했다. 1999년에는 54살의 나이로
플레이보이 지의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단다. 

어쨌든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은
대여섯 살밖에 안 되는 나의 동심을 
남심으로 이끌어준 대상(?)이기도 했다. 
물론 근거는 없다. 
영화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그녀의 이미지가 전혀 기억에도 없었을
정도니까...

다만 영화를 다시 보는 순간 
뭔가 가슴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예쁜 배우가 왜 스크린에서
사라졌을까...?'

지극히 저널리스트적인 호기심이 컸다.
그래서 자료를 좀 더 찾아봤다.
앞서 말한 토니 커티스와 영화를 찍고 나서
곧바로 사랑에 빠졌고, 아이가 생겼고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겨서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한 것일 수도 있다. 
whatever...! 

그녀의 나이 18살 때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대단히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았던 여자다. 

당시 토니 커티스는 잘 나가는
세계적인 배우였고, 
아마 그런 남자의 구애를 거절하긴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18살에 배우 인생을 뒤로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토니 커티스는 당시 자넷 리의
남편이었다. 1962년 이혼을 한 것으로
나오니까, 영화 끝나고 곧바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셈이다. 
당시 전처인 자넷 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전설적인 영화
<싸이코>에서 그 유명한 욕실에서
희생자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기 두려운 영화가
<싸이코>이고, 그 영화 안에서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장면이 욕실에서의 
살해 장면이다. 


흑백 영화라서 선혈이 낭자한
붉은 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영화 떠올리면
오싹해진다. 

실제로 요즘 잔인한 영화들처럼
칼로 신체를 절단하는 장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몽따쥬만으로
관객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있으니
참 대단한 영화고 대단한 감독이다. 

토니 커티스와 자넷 리 사이에서는
제이미 리 커티스라는 딸이 태어났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여배우다.
<트루 라이즈>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부인 역으로 나온 바로 그 여배우다.

어쨌든...

복잡한 연애사는 언제나 재미가 있다. 
그렇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누구나 살아가는 법이니까. 
그가 스타이건 평범한 직장이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제목을 바로 잡고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대장 부리바>는 사실 틀렸다.
하도 오래 돼서 그냥 <대장 부리바>라고
시작을 했지만, 올레TV에서도 
그냥 그렇게 나온다. 

원래는 <타라스 불바>가 맞다.
왜냐하면 원작 <Taras Bulba>에서
'Taras'는 그냥 사람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Bulba'는 성이다. 

그런데 그게 <대장 부리바>가 된 것이다.
타라스는 대장이 아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계속 생겨날 수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5,60년대 영화들이
일본에서 건너 온 제목을 따라서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부리바' 역시 '불바'가 맞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걸 고쳐야 한다고
말을 했다. 이유는 원작이 되는 소설 
때문이다. 

<타라스 불바>는 러시아, 정확하게는
우크라이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이
쓴 작품이다. 

고골 역시 90년대까지는 고골리로
불려졌다. 그래서 나에게는 고골리가
더 편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마지막 i는 묵음으로 처리되는 규칙이
있단다. 그래서 고골리가 아니라 고골이다.
부리바도 불바가 맞고...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가리켜
'미증유의 위대한 열 권 중 하나'로
칭송하기도 했다. 

거친 남자들의 인생 역정과 사랑을 
멋지게 형상화한 까닭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나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비극의 원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나도 개인적으로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 어린 나이부터...

어쨌거나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였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수백만 명을 스크린에
그려내는 요즘 영화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장엄함이 있다. 
전쟁을 위해 각 족장들의 지휘 아래
대초원에 말을 타고 모여드는 카자크 기병대의
모습은 오직 옛날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웅장함을 선사한다. 
기교파 복서가 아니라 
그냥 정통파 복서의 스트레이트 
한 방을 맞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네마스코우프 대형 화면으로 봤다면
더 웅장했을 영화다. 
실제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TV로 보는 것과 영화관, 그것도 
70미리 필름 그대로 다 보여질 수 있는
옛날 대한극장 같은 곳에서 보는 것은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

아쉽게도 그런 건 이제 꿈나라에서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은빛으로 빛나는 토니 커티스의
갑옷에 콩알 만한 구멍이 뚫리면서
몸이 뒤로 쓰러지는 장면.

어린 나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너무 선명하다. TV에서는 그 번쩍이는
은빛 갑옷도 거무틱틱하기만 하다.  
제맛이 살아날 리가 없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가족과 민족까지
버렸던 남자의 죽은 몸 위에서 흐느끼는
여배우 크리스틴 카우프만의 눈물 젖은
눈동자에는 깊은 애수가 느껴진다.

남자들의 거친 세계,
비극의 전형, 올리비아 핫세도
울고 가게 만들 18살 청순한 미모를 
지닌 한 여배우의 명암까지
영화가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크리스틴 카우프만이
나왔다는 <바그다드 까페>도
나중에 시간 내서 다시 봐야겠다.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 궁금하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출판사이면서  와인 바이기도 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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