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몸에도 새겨진다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67)
우리 몸에도 기억이 새겨진다. 쉽게 말해서 두뇌에 기록되는 정보들만이 아니라 근육 곳곳에도 기억이 생성된다는 얘기다. 보통은 운동선수나 헬스클럽에 열심히 다니는 몸매 좋은 근육질 남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 아는 얘기일 수 있다. 그들은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현상일 테니 말이다.
흥미롭게도 인간의 몸에 대한 연구가 계속 발전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은 두뇌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겨졌던 여러 가지 증상들도 실제로는 몸 자체, 그러니까 근육에 새겨진 기억들의 작용 때문에 일어난 경우들도 많다는 얘기다.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을 중단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해도, 정확하게는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에는 새겨진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몸에 새겨진 기억들을 생리학에서는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라고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생리학자 크리스티안 군데르센 박사는 쥐의 근육 실험을 통해 머슬 메모리의 실체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실험 쥐를 대상으로 뒷다리 근육을 3주간 운동시킨 후 근육 핵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2주 정도 후에 근육의 37%가 증가했고 9일 후부터는 사이즈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운동을 중단한 다음에 벌어진 현상이다. 근육 퇴화를 위해 운동이 중단된 3개월 뒤의 상태를 관찰했다. 쥐에게 3개월이란 기간은 인간에게는 10년 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강화된 근육 운동을 집중적으로 하다가 운동을 멈추고 10년 뒤의 상태를 관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과는 어땠을까? 관찰 결과 근육 사이즈는 40%가 감소했다. 10년이란 노화가 진행된 인간의 몸에 나타날 수 있는 변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근육 속에 간직되어 있는 핵의 수치였다. 여기서 핵이란 생명의 유지와 성장,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유전적 정보가 담겨 있는 물질의 기본 단위다. 단백질을 합성하고 이것을 근섬유로 전달해서 근력과 크기를 키우는데도 한 개 이상의 핵이 필요하다고 한다. 쥐의 실험 결과 근육 사이즈는 비록 40%나 줄어들었지만, 근육 속에 존재하는 핵의 수치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에도 두뇌의 기억처럼 뭔가 기록되는 장치들이 존재하는 의미다. 운동을 통해서 근육이 발달하고, 그 안에 핵이 증가하면 할수록 머슬 메모리도 강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적 정보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고유한 자기 발전의 근거이다. 이런 정보들이 사라지지 않고 근육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땀 흘렸던 고유한 정보들이 두뇌는 물론이고 그대로 우리 몸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위대한 가능성의 발견'이다. 자신이 노력해서 만든 생활의 습성, 목표를 지향하려는 욕망, 성취욕,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났던 배려심과 매너 등이 단지 두뇌만의 기능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 저장된 '머슬 메모리'들의 활동으로도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일상에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서 건물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뒤에 사람이 오고 있는 경우, 나는 자동적으로 그 사람이 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다. 이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거의 조건반사적인 반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행동이 두뇌의 판단에서 비롯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머슬 메모리를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그런 즉각적인 행동은 두뇌가 아니라 내 몸속, 구체적으로는 근육 속에 기록된 머슬 메모리가 작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성립한다. 다른 사람이 뒤에 오고 있는데 문을 잡아주지 않는 경우는 몸속에 그런 저장된 정보들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결국 남자의 매너는 머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 것들에 기초한다는 의미가 된다. 매너를 배우고, 스스로 키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머슬 메모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경험의 영역을 확장시키준다는 데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시선을 교정시켜주기도 한다.
예전 어떤 책에서 본 티베트 승려들의 수행법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티베트의 눈 덮인 산, 그 속에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수도원들이 하나 둘 자리 잡고 있다. 담황색 가사 차림으로 고행의 길을 가는 수도사들, 그들의 수행에 관한 책이었다. 그들은 몸을 혹사시켜 정신을 강화한다. 그것이 하늘에 충만한 정기를 자신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여긴다. 그 고행의 과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위대한 금욕주의자는 16에서 18살까지의 제자들을 이끌고 한밤중에 산속의 얼어붙은 호수로 간다. 그들은 옷을 벗고 얼음을 깬 다음 옷을 그 속에 넣어 얼리고 다시 입어, 입은 채 말린다. 그러고는 다시 적시어 또 한 번 체온으로 마르게 한다. 계속해서 그들은 일곱 번을 이렇게 한다. 그런 다음 아침 예불을 위해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은 4천5백 내지 5천4백 미터에 이르는 산꼭대기로 오른다."
저 대목을 읽으면서 온몸이 오싹하는 경험을 했다. 살을 에는 추운 겨울날, 얼음을 깨고 호수에 옷을 적시고 그 젖은 옷을 체온으로 말리는 과정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정말 내가 그 산속 눈보라 휘몰아치는 얼음 호수에 앉아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고 하니 그 고행의 정도가 평범한 인간인 나의 시선에는 얼마나 고통스럽게 느껴졌겠는가.
그런데 '머슬 메모리'에 관한 시각이 생긴 다음에는 그런 고통스러운 고행도 조금은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있다. 어쩌면 그 수행자들의 몸에는 고행조차도 수용할 수 있는 고유한 몸의 기억이 생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은 처음이 중요하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무리 어려운 고행일지라도 처음 시작하겠다는 마음먹기 하나만으로도 이미 수행은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라간 것일 수 있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해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누구에게나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바로 그 '시작'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몸에 새겨진 기억, 바로 그 '머슬 메모리'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현재를 극복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대표적이다. 자신의 한계, 단점, 모순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을 '머리'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정작 중요한 것은 몸에서 시작되고 있는데... 오늘 아침 나의 머슬이 꿈틀거린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출판사이면서 와인 바이기도 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